참 곱다. 산뜻한 연둣빛의 양장 책을 들고 있으니 꼭 꽃과 나비가 수놓아진 고운 손수건을 건네받은 기분이다. 가지런히 접힌 그것을 조급하게 확 펼치면 귀한 무언가가 금방 달아날 것만 같은 느낌에 책 표지를 소중히 열어 보았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누군가의 오래된 기쁨.
꽤 오랜 시간을 먹고 자란 인생의 낙과 위로들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대상들이 맑고 선한 수채화의 모습을 하고 더없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걸 눈으로 담는 동안 나는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뒤덮였다. ‘정화’에 가까운 것이었다.
유독 더 와 닿는 그림과 그 아래에 적힌 글귀를 만난 순간에는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게 된다. 자신을 지탱해준 문장을 가슴에 품고서 일상이 건네는 소소한 기쁨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타샤. 그를 통해 나의 기쁨을 들여다본다.
어떤 말을 곱씹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지, 무슨 장면을 떠올릴 때 희망이 샘솟는지, 무엇을 할 때 영원토록 살고 싶어지는지.
정화의 힘이 있는 <타샤의 기쁨>

연둣빛 옷으로 갈아 입은 <타샤의 기쁨>이 개정 2판으로 새롭게 돌아왔다.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특유의 화풍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 이번 개정 2판에는 롯데뮤지엄 전시 <스틸, 타샤 튜더>에서 선보였던 타샤의 원화 작품들과 함께 그에게 영감을 안겨 주었던 글귀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타샤는 살다가 기쁜 순간이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그림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기쁨은 산골의 드넓은 정원이자 그 정원을 가꾸는 것이었고, 동물을 키우는 일이었고,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에게 마음을 쏟는 것이었다. 그는 주로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속에서 기쁨과 평화를 찾는 듯했다. 자연 속 작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작품으로 삼고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아끼는 순간 곁에는 그를 지탱해준 또 다른 작가들의 문장이 적혀 있다. 위로의 글귀는 타샤가 그린 세상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 깨끗하고 환하게 만든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마다 배어 있는 순수한 기운을, 맑은 생명력을 증폭시킨다.
<타샤의 기쁨>에는 그러한 정화의 힘이 있다.
맑고 순수한 타샤의 세상


<타샤의 기쁨>에는 안온한 정서가 담겨 있다. 꽃과 나무, 호숫가와 무지개와 같이 계절감이 느껴지는 목가적 풍경은 마음에 편안함을 안기고, 동물과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티없이 순수해서 맑은 동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지나간 유년기를 추억하는 것만 같아 먹먹한 기분이 든다.
달과 개울가와 꽃과 새와 염소와 토끼와 닭 그림을 정말 오랜만에 본다. 책 자체로도, 그림 자체로도 말이다.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 이상 평상시의 독서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쉽게 만나기가 어렵다. 타샤가 평생에 걸쳐 애정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생경해지는 데가 있다.
피곤하고 어지러운 감정들이 날뛰다가 영롱한 유리구슬 앞에서 순해지는 느낌이다.
그의 지팡이가 되어준 문장들

창작을 오래 지속해 나가는 창작자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어렵게 얻은 창작물 하나는 지난한 버팀을 연장한 끝에 태어나는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창작자가 평소에 무얼 하며 버티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무려 100여 권에 달하는 그림책에 삽화를 남기고 두 번의 칼데콧 상(The Caldecott Medal,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랜돌프 칼데콧에게서 따온 상 이름으로 1938년부터 시작한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아동 문학상. 미국에서 매년 전년도에 출간된 아동 대상의 그림책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만든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타샤 튜더에게도 그 점이 궁금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과 화초를 돌보며 자급자족의 삶을 꾸린 그는 자신에게 희망을 가져다준 글귀들을 지팡이 삼아 걸었을 테다. 부지런히 모은 작가들의 문장은 타샤의 창작 욕구와 함께 삶의 의지까지 북돋웠을 것이다. 그 또한 다른 작품에서 위안 받은 힘으로 창작을 지속했다는 사실이 왜 이리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타샤가 기댄 문장들에 내가 기대고 있다. 우리는 서로 영감을 받고 돕는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나의 기쁨은 어디에서 오는가

기쁨. 희망. 행복. 이런 단어를 말하다 보면 괜히 거창한 느낌이 난다. 충분히 소박해도 괜찮은데 무언가 원대한 포부를 실현시켜야만 도달할 수 있는 붕 뜬 감정처럼 느껴진다. 그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하겠지만 아마 나는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계속 헤맬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타샤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자연을 꽤나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나무 터널 속을 걸으며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내가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다. 벤치에 앉아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면 보이지 않던 평화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타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내면의 평화는 사실 쉬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저 내가 편히 마음을 내어주기만 한다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도처에 널려 있음을.
바야흐로 초록의 계절이다. 순수함으로 물들기 좋은 5월의 중순, 일상에서 날 기쁘게 해주는 일을 찾아 나서기에도 좋은 날. 모쪼록 각자의 심신 정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타샤의 기쁨>과 함께해도 좋을 것 같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