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작품들은 각각 그 안에 하나의 세상을 가지고 있다. 그 세상 안에는 이야기의 배경이 될 시간과 공간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이 있을 것이다.
예술 작품은 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로 풀어간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이야기의 중심은 시몽 랭브르라는 청년, 정확히는 그 청년의 심장이다.
극은 해가 뜨기 직전의 아침 파도 위를 서핑하며 자신의 뛰는 심장을 느끼는 시몽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서핑 후 집에 돌아가던 시몽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을 다른 이에게 기증하기까지의 약 24시간의 과정이 극의 주축이 된다.
시몽은 더 이상 누군가의 말에 반응할 수 없지만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죽음과 삶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몽의 상태, 그리고 극의 시작에서 파도와 함께 세차게 요동치던 모습을 떠올리면 심장은 하나의 삶을 상징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시몽의 삶뿐만이 아니라, 심장은 각각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이들이 얽히는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시몽의 장기 기증을 놓고 고민하는 가족들이 있으며, 기증에 참여하는 의료진들, 그리고 그 심장을 이식받을 사람도 있다.
극은 심장을 이식받기까지의 급박하게 흘러가는 사건을 말하는 동시에, 잠시 사건의 진행을 멈추고 각 인물이 살아온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인물의 삶에 어떤 큰 사건이 있었는지, 어제 이 인물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세세하게 들려준다.
시몽의 심장은 이들의 삶이 얽히게 되는 중심인 동시에, 이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해 오던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여전히 뛰고 있는 시몽의 심장을 바라보며 인물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다른 이의 장기가 자신의 신체를 대체했을 때 그 몸을 온전한 자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시몽의 육체가 기증되어 흩어지게 된다면 그의 존재는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와 같은 질문들이 계속해서 제시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비선형적이고 여러 갈래로 뻗어가는 이야기들은 시몽의 심장에서 모두 교차하게 된다. 그리고 원작 소설과 달리, 연극에서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혼자서 맡아 연기하는 '서술자', 배우가 있다. 배우는 1인 16역을 소화해 내며, 다른 소품의 도움 없이 연기만으로 여러 인물을 표현한다. 그렇게 여러 배역을 소화해 내는 배우의 모습은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이 중첩되는 지점이 된다.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시몽 랭브르의 심장과 삶이 연극에서는 배우의 몸을 통해 하나의 형태를 띠고, 그런 배우의 몸은 작품 속 세상을 상징하게 된다.

그렇게 삶을 표현하는 서술자는 연극의 마지막에는 이 생명력을 관객에게 넘긴다. 연극의 초반 제시되었던, 파도를 타는 시몽의 뛰는 심장. 그 심장이 어땠을지를 거센 파도 소리를 들으며 관객이 직접 상상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관객에게 뛰는 삶을 넘겨주며 연극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