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냄새와 흥정하는 목소리가 오가는 시장 골목, 그 한복판에 자리한 작은 동네 책방에서 인간 예술의 존망을 묻는 서늘한 질문이 던져졌다. 인공지능(AI)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창작자'의 자리를 노리는 지금, 과연 고통과 상실을 모르는 기계의 결과물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난 6월 14일, 도봉구 백운시장의 자생적 독립서점 '생활용품'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을 통해 이 시대의 가장 날 선 화두를 파헤치는 뜻밖의 지적 향연이 펼쳐졌다.
강연은 미학사에서 AI 시대의 예술까지 이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아도르노까지, 미학의 계보를 따라가며 예술이 무엇인지 물었고, 아도르노의 부정성 미학을 통해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을 분석했다. 한국 문학에서는 한강, 김수영, 이청준의 작품이 아도르노 미학의 관점에서 논의되었다.
이 글은 강연의 내용을 정리하고 문병호 교수의 강연이 다루었던 담론들을 재구성한다. 백운시장이라는 현장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미학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AI 시대에 예술이 직면한 문제들을 어떻게 성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1. 미학은 어떻게 예술을 사유해왔는가
문병호 교수는 미학의 시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모방'으로 정의했다. 예술작품은 현실을 모방하지만,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보편적 진실을 드러낸다.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일으켜 카타르시스를 이루며, 이를 통해 인격과 미덕을 성취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장르, 문체, 운율, 선율, 플롯의 개념을 정립하고, 내용과 형식을 분리했다. 시학은 철학·윤리학과 접점을 형성하며 학문으로 정초되었다.
근대에 들어서야 예술과 아름다움을 다루는 독립적 학문이 등장했다. 바움가르텐은 『미학』에서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으로서 미학을 창안했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인식론을 이어받아, 이성적 인식이 아닌 감성적 인식을 낮은 단계의 인식으로 파악했다. 혼연한 인식, 즉 개별 요소들이 서로 구분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분리되어 열거될 수 없는 인식을 다뤘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취미판단을 '이해 관심 없는 자유로운 흡족'으로 정의했다. 아름다운 것은 목적이 없으면서도 합목적적인 형상을 지니며, 주관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요구한다. 칸트는 공통감, 즉 감성을 위한 능력과 원리, 규칙, 이념, 규범을 상정했다.칸트는 이러한 공통감을 통해 인간에게 보편적인 도덕이 존재함을 논증하고자 했다. 즉, 예술은 개인의 도덕심 함양에 이롭다는 것이다. 이후 예술과 도덕을 연결시키는 철학자들은 칸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헤겔은 예술을 절대정신의 변증법적 운동 속에서 파악했다. 그에게 예술은 이념이 감각적으로 현현하는 것이다. 예술미는 구체적 이념과 진정한 형상의 결합이며, 자연미보다 우월하다. 헤겔은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예술형식으로 예술미의 전개를 설명했다. 예술의 목적은 정취 일깨우기, 조야성 지양, 도덕적 완성이다. 예술은 세계인식·세계해석·세계해명·세계변혁의 능력을 지닌다.
벤야민에 이르러 본격적인 현대 미학이 시작된다. 그는 『독일 비애극의 원천』에서 예술작품은 역사를 따라간다는 특성, 즉 역사를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특성을 포착한다. 이러한 특성을 벤야민은 알레고리라고 일컫는다. 차후 그는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집필함으로서 자신의 예술철학을 발전시킨다. 벤야민에 따르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은, 프랑스 파리에서 자본주의가 절정에 이름에 따라, 추함과 충격을 통해 개별 인간이 받는 고통을 묘사한다. 예술의 알레고리, 추함과 충격의 사용은 모두 근대예술과 현대미술을 가로지르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벤야민이 본격적인 현대 미학을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뉴는 벤야민은 이전 예술철학자들과 달리 작품이 개별인간이 겪는 고통을 다뤄야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문제삼기도 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그는 사진과 영화가 예술작품을 복제하는 현상을 분석했다. 원본의 유일무이성, 즉 '아우라'가 붕괴되면서 예술작품의 가치가 숭배가치에서 전시가치로 전환된다. 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벤야민 미학의 핵심은 알레고리에 있습니다. 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발표하며 타락한 세계에서 피어나는 미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악, 즉 타락과 관능과 도시의 병리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길어 올렸습니다. 인간의 내면적 어둠, 도시적 감성, 현대적 우울과 퇴폐, 아름다움과 추함의 결합을 형상화했습니다. 악과 꽃의 역설적 결합은 현대적 미학과 시인의 고뇌를 함축합니다. 벤야민은 알레고리의 미학적이고 역사철학적 프리즘으로 보들레르 시학을 분석했고, 『악의 꽃』에서 알레고리가 조직되는 방식을 통해 근대 도시 파리의 병리를 읽어냈습니다. 보들레르는 현대 예술에 충격과 추함이 특징적임을 최초로 인식했습니다."

2. 부정성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벤야민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핵심 인물이다. 『미학 이론』, 『부정 변증법』, 『계몽의 변증법』 등을 저술했으며, 예술이 세계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지닌다고 보았다. 문병호 교수는 아도르노의 미학을 통해 현대 예술의 본질을 파악했다.
아도르노 미학의 핵심은 부정성이다. 부정성은 세계가 화해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을 표현한다. 예술은 부정되어온 세계의 고통을 형상화하며, 그 형상 자체가 세계에 대한 비판이 된다 이러한 세계비판은 예술이 무의식적 역사 서술이 가능하기에, 즉 개념 없이 역사를 인식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 이러한 역사 인식을 통해 밝혀지는 것은 부정되어온 세계의 고통이다. 세계에의 고통(Weltschmerz)은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와 사회에 의한 인간지배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이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이러한 고통의 모방, 즉 미메시스이다. 예술은 모방을 통해 개념 없이, 즉 언어라기보단 그림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수수께끼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것이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이다. 보들레르는 프랑스 파리의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인간에게까지 확장되고 심화된 사물화에 대한 미메시스를, 베케트는 관리된 세계에 대한 미메시스를 보여준다.
예술의 수수께끼적 성격, 이 성격이 갖고 있는 암호를 풀어내는 것이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이다.무의식적 역사 서술은 개념 없이 역사를 인식하는 예술의 능력이다. 예술은 학문처럼 개념과 체계를 사용하지 않지만, 비개념적 형상 언어를 통해 역사를 인식한다. 세계에의 고통(Weltschmerz)은 인간에 의한 자연지배와 사회에 의한 인간지배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이다. 미메시스는 경직된 것·소외된 것에 대한 미메시스로서 현대 예술의 특징이다. 보들레르는 사물화에 대한 미메시스를, 베케트는 관리된 세계에 대한 미메시스를 보여준다.

전술했듯 예술적 인식은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인식이다. 예술은 판단이 없는 종합을 이루며, 동일한 것과 동일하지 않은 것의 동일성을 실현한다. 객체의 우위가 실현된 관할처로서의 예술은 사회적 전체 주체로서의 예술적 주체를 형성한다. 예술은 경험세계에 카테고리적으로 각인된 규정들을 부정하지만, 경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예술 자체의 실체 속에 지니고 있다.
문병호 교수는 카프카와 베케트를 예로 들었다. 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카프카의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거대한 해충으로 변한 채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외판원으로 일했지만, 가족은 그의 변신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며 결국 그를 방치합니다. 『심판』에서 요제프 K는 이유도 모른 채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결국 처형당합니다. 법의 불가해성, 비가시적 폭력이 개인을 짓누릅니다. 『성』에서 K는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성을 향해 걸어갑니다. 목적 없는 추구, 부조리한 세계가 형상화됩니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립니다. 의미의 부재, 언어의 해체가 드러납니다. 『끝놀이』에서 나그와 넬은 쓰레기통 속에 갇혀 고통받습니다. 영점에서의 존재, 감금된 고통이 형상화됩니다."
문병호 교수는 세계에의 고통에 대한 빼어난 미메시스로서, 보르헤스와 마르케스 등 남미 문학을 예로 들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식민지 경험, 독재 정권, 사회적 불평등, 정치적 억압 등 역사적 고통이 깊다. 이러한 고통은 개인에 대한 고통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고통을 보여 세계를 비판하고, 역사를 비판한 것이 바로 보르헤스와 마르케스등의 남미 작가들이라는 것이다. 문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과 『알레프』는 미로, 무한, 시간의 역설을 다룹니다. 언어와 사유의 한계, 인식의 패러다임 전회가 드러납니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부엔디아 가족은 세대를 거듭하며 동일한 운명을 반복합니다. 마술적 리얼리즘은 라틴아메리카의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3. 한국 문학은 어떻게 고통을 형상화했는가
문병호 교수는 아도르노 미학의 개념, 즉 부정성과 알레고리와 무의식적 역사 서술이 한국 문학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된다고 설명했다. 한국 문학은 식민지 경험과 군사독재와 사회적 억압 등 역사적 고통이 깊으며, 이 고통이 문학에 형상화되었다. 김수영과 이청준과 한강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도르노 미학의 개념들을 예시한다. 김수영은 알레고리를 통해 군사정권에 저항했고, 이청준은 구원의식과 비판미학을 통해 한국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고, 한강은 고통과 부정성을 통해 폭력과 트라우마를 형상화했다.
김수영 시의 알레고리적 미의식과 역사의식에 대한 학술 연구가 다수 존재한다. 폐허와 구원, 폐허의 인식을 통한 구원에 대한 희망이 알레고리로 해석된다. 『풀』은 군사정권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며, 약자의 끈질긴 생명력을 형상화한다. 바람은 독재정권을, 풀은 민중을 상징한다. 『거대한 뿌리』는 억압 속의 저항과 보이지 않는 변화를 다룬다. 거대한 뿌리는 혁명의 잠재력을 알레고리적으로 표현한다.

이청준은 1960년대부터 아도르노 비판미학과 교합하는 소설들을 썼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한센인촌을 한국 사회의 축소판으로 그려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 권력에 의한 억압을 형상화하며 5·16 군사정권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담았다. 소록도 80년사의 원생들의 삶은 한국 민중들의 고난을 대변한다. 『서편제』는 판소리를 소재로 전통과 근대의 갈등을 다뤘다. 아버지가 "좋은 소리"를 위해 의붓딸 송화의 눈을 멀게 하는 비극을 통해 예술을 위한 희생과 폭력, 전통의 상실을 그려냈다.
1970년대 폭력과 억압의 세계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총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잃어 버린 말을 찾는' 탐구였다. 『벌레이야기』는 아들의 유괴 살해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용서와 치유의 문제를 탐구했다. 개인적 비극을 통해 역사적 트라우마를 알레고리적으로 형상화했다. "값싼 은총"에 대한 비판은 극한 고통 앞에서 용서가 가능한가라는 아도르노적 부정성과 연결된다.
한강의 작품 세계는 폭력에 대한 일관된 문제의식으로 연결된다. 『채식주의자』는 가부장제 폭력에 대한 저항을 다룬다. 채식주의자가 된 영혜는 식물되기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 영혜의 몸은 남성 중심의 폭력에 노출되며, 그녀의 거부는 사회적 규범에 대한 부정성이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증언한다. 학생 시민군 동호의 시선으로 본 5·18의 고통이 형상화된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가 이 작품의 성격을 보여준다.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소년이 온다』로 이어지며 폭력에 대해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4. 인공지능 시대에 남겨진 문제들
문병호 교수는 AI가 ChatGPT를 기점으로 LLM, 에이전트 AI, 휴머노이드를 거쳐 AGI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유하고 판단하며 추론하는 존재처럼 기능한다. 개념을 만들고 가치를 가늠하며, 시를 쓰고 곡을 짓고 그림을 그리는 데까지 나아간다. 인간을 대신해 여러 일을 수행하는 그 영향력은 경제와 산업을 넘어 교육, 행정, 법률, 언론, 군사로 번지고, 다시 예술과 정치, 종교, 스포츠로까지 확장된다. 인간의 삶이 본래 세계의 구조에 종속되는 것이라면, 그 세계가 AI에 의해 관리되고 재편되는 지금 우리는 인간 중심의 사회와 이별하는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여기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AI가 인류의 언어를 학습하고 구사한다는 사실 자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학문과 사유, 예술과 제도가 딛고 선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AI가 언어를 장악한다는 것은 곧 지식을 생산하고 해석하는 영역에 발을 들인다는 뜻이며, 여기서 인간은 '학문의 종말'이라는 공포와 마주한다. 오랫동안 인간만의 고유한 창조적 활동으로 여겨져 온 학문과 예술, 바로 그 영역을 AI가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예술의 영역이다. 예술은 창의적 활동의 결과이며 그 창조자는 인간이라는 전제 위에서 이해되어 왔는데, AI가 작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이 전제가 흔들린다. 인간이 위대한 작품들을 모방하라고 AI에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자기 창작물이라 주장할 때, 창작의 주체가 작업을 지시한 인간인지 실제로 형상을 만들어낸 AI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기술이 작품을 복제하던 시대를 넘어 기술이 스스로 작품을 생산하는 시대로 들어선 만큼,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와 원본성의 개념 역시 다시 검토될 수밖에 없다.
AI에게 감정과 가치 관념이, 나아가 역사 인식이 있는가 하는 물음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는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사랑, 증오와 용서, 화해와 구원, 연대 같은 감정을 통해 예술을 창조해왔고, 작품에는 예술가 개인의 감정뿐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경험이 함께 형상화된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예술이 "무의식적 역사 서술"이라면, AI가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결국 AI가 사회적 현실을 예술적 가상(假像)으로 인식하고 구성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AI가 만들어낸 것을 과연 예술이라 부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예술의 창조자와 해석자는 누구인지 하는 물음이다. 현대 예술이 충격과 추함, 그로테스크와 소외, 낯설게 하기와 부조리, 불협화음을 통해 인간의 지각과 인식의 틀을 거듭 전복해왔다면, 과연 AI도 그러한 창조적 전복에 가닿을 수 있는가. 문병호 교수는 이 물음들이 끝내 인간 예술의 고유함이 무엇인지를,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이해해왔는지를 다시 묻는 자리로 이어진다고 언급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편, 이번 강연이 진행된 '생활용품'은 쌍문동 백운시장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마을 책방으로, 주민이 기증한 책을 이웃에게 저렴하게 공급하는 자생적 모델로 외부 자본 없이 자리를 잡았다.
개점 이후 북토크, 문학 독서모임, 인문학 강연, 지역 청년 굿즈 제작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빠르게 성과를 축적했다. 이 과정에서 재단법인 평산책방,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의 지원을 받으며 사업을 키워 왔다.
특히 모든 프로그램들은 외부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시장 상인들이 직접 참여한 문화기획 워크숍에서 자생적으로 도출된 것으로, 지역 상인과 청년·예술가·대학생이 협업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