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발레단의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2026년 2월 22일 광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3월 7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3월 12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다. 국립발레단 부예술감독을 역임한 故 문병남 M발레단 예술감독이 안무를 맡고, 현재 M발레단의 단장 양영은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2015년 초연된 이후 여러 번 재공연되며 수정과 개선 속에서 보완되어 창작 11주년을 맞아 새롭게 무대 위에 올랐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바탕으로 70분의 짧은 러닝타임 속에 안중근의 생애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안중근 의사가 세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였던 ‘동양 평화’와 대한 독립이 합치된 채 자연스럽게 작품을 이끄는 동력이 되는 구조 속에서, 이 작품은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을 앞둔 채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아내 김아려와의 혼인, 러시아 연해주에서의 의병 활동과 단지 동맹을 차례로 회고하고,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 이후 체포된 뒤 감옥에서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당당히 임하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말을 되새기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서는 차이코프스키와 생상, 파가니니의 클래식 음악과 이 작품을 이해 창작된 작곡가 김은지와 나실인의 음악이 교차적으로 사용되며 안무를 통해 표현되는 거대한 드라마를 지탱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혼례식 장면이나 의병 전투 이후 꿈 장면에서 등장하는 스펙타클을 위한 군무에는 전반적으로 고전적인 형식의 문법을 활용하여 마치 (<돈키호테> 2막의 꿈 장면(dream scene)이나 <지젤>, <백조의 호수>의 발레 블랑처럼) 고전 발레에서 묘사되는 환상의 공간들을 연상시키도록 구성하고, 안중근과 김아려의 파드되는 드라마 발레의 성격이 강한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이나 시를 안무로 만든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 수월경화> 같은 작품처럼 연기와 안무 양자의 측면에서 두 무용수의 파트너쉽이 강조된다. 이시다가 이끄는 일본군과 안중근이 이끄는 의병이 결투하는 장면은 같은 안무가의 작품인 국립발레단의 <왕자 호동>의 전투 및 무술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하면서,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역임한 故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스파르타쿠스>의 강력한 남성 군무의 에너지를 방불케 한다. 무대 연출은 상대적으로 간소한 무대 세트의 추상성을 유지하면서 영상이 표현될 수 있는 LED 화면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무대 바깥 공간으로 여겨졌던 오케스트라 피트를 개방해 더욱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을 구성한다. 뤼순 감옥이라는 공간 설명을 위해 자막이 활용되고,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을미사변 장면은 무대 화면에 영상으로 재현된다. 또한 안중근에게 보내는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와 안중근의 유언은 나레이션을 통한 음성 언어로 표현되며, 점차 발전하고 있는 무대 미학을 발레라는 형식에 맞게 연출의 보조 수단으로 받아들인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발레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요구되는 몇 겹의 과제들, 즉 안중근의 후반부 생애를 발레의 문법에 맞추어 담아내야 하고, 을미사변과 이토에 의해 체결된 을사늑약 같은 역사적 사건과 배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하면서 동시에 캐릭터 역시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는 복잡한 조건을 모두 고려하면서 최적의 상태로 창작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창작된 공연의 질적 측면을 평가할 때,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다른 장르의 공연과 달리 발레는 무용의 고유한 장르적 특성을 더욱 고려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감안한다면 서사와 서정, 안무와 음악이 전반적으로 잘 조화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이야기에서 안중근은 평범한 청년의 모습으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주체이며, 이는 뮤지컬 <영웅>이나 영화 <하얼빈> 등에서도 동일하게 주목하고 있는 측면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평등하고 자주적인 공존을 꿈꾸었던 안중근 의사의 철학적, 정치적 사유는 대한 독립이라는 당면한 과제를 만나 이토를 저격하는 하얼빈 거사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겪는 인간적인 고뇌와 고민이 그를 위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같은 소재와 주제를 가진 뮤지컬 <영웅>에 비해서 여성 캐릭터들, 즉 조마리아와 김아려, 그리고 사쿠라가 전체 작품을 기준으로 차지하는 분량의 비율이 더 높지만, 뮤지컬 <영웅>의 명성황후의 궁녀 출신 스파이 설희와 안중근을 짝사랑하는 중국인 소녀 링링 같은 여성 캐릭터에 비해 다소 전형적으로 조형된 경향이 있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와 김아려는 안중근을 모성과 사랑으로 ‘품어주는’ 존재이자 거사와 죽음을 앞둔 그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영웅>에서 게이샤의 등장이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게이샤로 위장한 설희의 스파이 활동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이토와 이시다의 애첩으로 남는 사쿠라는 ‘내면’이 삭제된 채 평면적인 인물로 남는다.
물론 이 작품은 발레이기 때문에, ‘성녀와 창녀 이분법’을 연상시키는 여성의 두 분류는 강력한 캐릭터성으로 치환되어 속세와 단절된 순수한 환상의 공간과 향락이 흘러 넘치는 화려한 타락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이를 통해 을사늑약 이후 일제강점기를 표현하는 역사적 배경을 해설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그렇기에 발레라는 형식과 러닝타임, 창작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는 단순히 (캐릭터의) ‘소모’라고 쉽게 결론지을 수 없지만, 전형성을 적당히 뒤틀면서 입체성과 새로운 해석을 만들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아름다운 볼거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좋은 예시를 들어보자면,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심청>에서 심청과 대비할 수 있는 ‘악녀’의 이미지를 가졌기에 쉽게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치환할 수 있는 ‘뺑덕 어미’를 삭제하는 도전을 하며 심청의 이야기를 일종의 모험담으로 각색한 이유가 있다. 창작 발레 작품에는 여전히 수정과 보완의 여지가 남아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최신의 담론을 반영하며 개선될 이 작품을 기대해본다.

전반적으로 기초적인 자본이 부족한 한국 발레 생태계에서는 ‘메이저’에 속하는 양대 발레단(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이 아닌 다른 민간 발레단에서 질적 수준을 담보하는 작품을 새롭게 창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안정적인 경영과 행정을 위해서라면 주로 해외 라이선스 버전으로 안무된 고전 발레 레퍼토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며, 소규모의 민간 발레단에서 창작 발레 작품이 무사히 초연을 올린다 하더라도 재공연을 이어가는 것은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2015년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제작지원에 선정되어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이후 디벨롭을 거쳐서 장기 레퍼토리화에 성공한 이 작품의 탄생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한국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한 창작 발레 작품은 서사가 있는 안무의 경우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춘향>, <코리아 이모션>의 단편 작품들, 그리고 국립발레단의 <호이 랑>, <허난설헌 수월경화>, 그리고 오랫동안 공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왕자 호동>이 있다. 이때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은 국립발레단에서 <왕자 호동>을 안무했던 故 문병남 예술감독의 작품으로, 한국 발레가 그동안 ‘한국적인 것’이라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발레의 문법과 조화시키기 위해 쌓아 왔던 자원의 토대 위에서 창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역대 캐스팅을 살펴보면, 2021년 공연에서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 발레리노가 객원으로 안중근을 맡았던 것, 그리고 2019년 국립발레단에서 퇴단한 김지영 발레리나가 김아려를 맡았던 것처럼 타 발레단의 무용수나 은퇴한 무용수, 그리고 신예 무용수들이 이 작품에 참여하면서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캐스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올해의 경우 안중근을 맡은 박관우 발레리노는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을 거친 무용수이며, 김아려 역의 염다연 발레리나는 얼마 전 로잔 콩쿠르에서 2등을 수상한 무용수로서, 학생임에도 작년 코리아발레스타즈에서 올린 전막 발레 <지젤>의 주역을 경험해 본 그의 이력이 어린 나이임에도 또래에 비해 더욱 깊은 연기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안중근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빌런인 이시다 역의 윤별 발레리노와 게이샤 사쿠라 역의 진유정 발레리나가 표현하는 ‘악한 모습’은 매력적으로 묘사되며 작품에 활기와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상대적으로 안무의 비중보다 연기의 비중이 강한 조마리아 역의 김순정 교수,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 역의 정영재 발레리노는 모두 국립발레단에서 퇴단한 뒤 교수와 발레 마스터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무용수 출신이다. 발레 공연에서 안무가 요구되지 않는 역할의 경우도 실제 무용수로서 무대에 섰다는 경력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부여하기 때문에 오랜만에 (갈라 공연이 아닌) 무대 위에서 한 사람의 캐릭터로 마주한 그들의 존재감은 반갑게 느껴졌다. 발레를 꾸준히 봐 왔던 한 사람으로서, 이 작품의 장기 레퍼토리화를 통한 성공이 한국 창작 발레의 우수 사례이자 롤모델이 되어 한국 발레계에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을 가져오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