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에 끔찍한 소음공해를 만들던 남자 세입자가 나가고 한 몇 개월 전에 부부가 이사왔다. 집주인한테 듣기로는 신혼부부라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싸웠다. 빈약한 벽의 두께 덕에 어떤 것으로 싸우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대부분이 여자 쪽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남자가 그럼 어떡하냐며 되받아치는 소리였다. 여자는 대부분 혼자 집에 있는 것 같았는데 누군가와 통화할 때도 남편과 이야기할 때도 매사 신경질적인 말투와 높게 뻗친 목소리 톤으로 대화했다. 나와 동생, 그리고 그 부부가 거의 일상 소음을 나누면서 살았던 그 집에서 나는 내 삶은 그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가끔 궁금했다.
북마크란 내가 지금 당장 볼 것은 아니지만 언젠간 다시 꺼내 보고 싶은 것, 혹은 내가 나중에도 보고 싶을 만큼 감명 받은 것을 저장하기 위해서 쓰고 있는 기능인데 결국은 북마크에 적체된 정보들이 너무 많아 그 중에서도 또 가장 상위에 두고 싶은 별도의 북마크가 필요해졌다. 북마크의 맨 아래 층에 있는 북마크들이 갑자기 필요할 상황에 대비해 안에 든 내용을 쭉 모아 우선적으로 봐야할 것들을 일기장에 적었다. 북마크의 북마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곧 그만뒀다. 여전히 나는 북마크 맨 하단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
엄마아빠 생일에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려고 카메라를 켰는데 켜진 채로 멈추고 말았다. 고장이면 어떡하지 하고 급하게 카메라용 배터리를 주문했다. 고장날 거면 말이라도 하고 고장날 것이지 하는 마음으로 배터리가 오기까지 기다렸다. 배터리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위잉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며칠 뒤 방 전등이 나갔다. 형광등은 깜빡깜빡하다 픽 꺼지고는 다신 켜지지 않는 것으로 끝인데 LED 등은 순식간에 방안을 테크노 클럽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영상 통화 중이던 황소씨가 갑자기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며 웃었다. 엄청난 속도로 깜빡이는 불빛 때문에 한동안 눈 앞이 어른거렸다. 끝은 대체로 예고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어제 집에 돌아가는 길에 횡단보도 초록불이 들어왔는데도 움직이지 않던 한 여자를 봤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여자는 공들여서 발끝을 횡단보도가 시작하는 연석에 맞춘 다음에서야 걷기 시작했다. 초록불이 깜빡깜빡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때 여자는 마침내 신호등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신은 뭘 기다리고 있었나요.
출장 덕분에 오랜만에 초등학교를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뭐든 낮고 동그란 모서리를 갖고 있구나. 참 뭐든지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공간이구나. 일정의 끄트머리쯤에 서울에서 제주도로 전학 온 한 학생의 인터뷰를 했다. 서울에 두고 온 친구가 너무 보고 싶다고 사랑한단 말을 서슴없이 뱉는 것을 듣고 가슴이 뜨끔해졌다.
고양이 집회에 참가하고 싶은 너구리 영상을 가끔 본다. 동물에도 표정이 있어. 그렇구나.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잊어버린다.
겨울이 되면 동네에 찹쌀떡과 망개떡을 파는 아저씨가 가끔 온다. 아저씨는 여름에 어떤 일을 하고 지낼까. 겨울에 찹쌀떡, 망개떡을 외치던 아저씨는 어디로 갈까.
작년에 언젠간 이야기해야지 하고 묻어놓고서 결국 이야기가 되지 못한 것들을 찾았다. 멀지 않은 시간의 기억이어서 그 때 어떤 생각으로 이 말들을 썼는지는 기억이 난다. 내내 다리를 내려놓았더니 다리가 붓는 거 같아서 천장과 발바닥이 마주 보도록 했다. 시원하게 피가 쏟아지는 기분이 든다. 발끝에 감각이 없을 때쯤 무릎을 그러안았다. 무릎과 머리를 맞대고 잊었던 이야기를 오래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생각한다. 생각이 끝나면 다시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