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정오의 처형

글 입력 2022.02.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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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타적인 사람이다.


누군가 나의 공간에 허락없이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때마다 나는 불같이 치솟는 나의 공격성을 마주한다. 이성을 고의적으로 놓친 채 패악을 부린다. 마구 소리를 지르고 근육을 떨어댄다. 그렇게 한참을 폭발하듯 화를 토설하고 나면 시원함이 아닌 패배감과 수치심만이 폐허처럼 남아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뱉어 놓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이 그제서야 부끄러워진다. 삭이는 법이라곤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인내와 승화의 미덕에 대해 배운 적 없다는 듯이 굴어 놓고 울음이 잦아들고 나면 그제서야 나를 둘러싼 정적과 침음의 공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침략자 앞에서 대놓고 혐오를 표출할 만큼 대담한 것도 아니다. 나를 용인해줄 수 있는 이들 앞에서만 성을 지독하게 내는 교활함이 몸에 깊게 배어 있어서, 칼날을 들이미는 것은 오히려 아군 쪽이다. 실패를 두고 대신들을 몰아세우는-영원히 군림하는 중세의 태양왕처럼, 그들을 가차없이 힐난한다. 입에선 화살이 쏟아지고 손가락은 창끝이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왕이 아니고 그들 또한 나의 부하가 아니거니와, 오히려 내가 그들의 양분에 기생하고 있는 꼴에 더 가깝다. 불합리함을 바로잡으려 모의하는 것이 반란인데, 나는 폭정을 위해 부박하게 나선다. 윤리와 미덕을 논하던 몸에서 정반대의 폭력을 쏟아낸다. 사랑은 추락하고 떳떳하지 못한 분노만이 남는다. 인류가 겪어온 오랜 역사 중 가장 버릇없고 건방진 쿠데타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인간은 두 얼굴을 가진 신이 된다. 그러나 이 쿠데타는 영원히 실패로 남는다. 겉으론 이겼다 해도, 패배의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언제나 나다.


고대 로마시대에 존재했던 정오의 처형을 떠올린다. 검투사 시합 이전 시행되었던 처형의 종류는 세 가지다. Damnatio ad gladium, damnatio ad flammas, damnatio ad bestias. 칼에 의한 죽음, 불에 의한 죽음, 그리고 야수에 의한 죽음이다. 나는 찌르고, 태우며, 물어 뜯는다. 세 가지를 동시에 자행하고 있었음이 명백해진다. 폭력은 상대를 떠나 부메랑처럼 날아와 내면의 자아를 광폭하게 덮친다. 충동이 낳은 탄환은 평화를 파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모지에서 글을 생산하게 한다. 자아에 대한 경멸은 십중팔구 음울한 고백을 추동한다.


때문에 나는 그 때 글을 썼다. 오늘도 동일한 이유로 글을 쓴다. 날짜를 모르는 어느 날에도 또 펜을 잡거나 자판을 두들길 것이다. 나는 마치

 

 

시인의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소음이 흘러나오는 이층 복도 끝 잠긴 방

 

날카롭던 끝이 부러진 연필

  

가장 무도회 바닥에 떨어진 조악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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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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