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우리는 밤이 되면 잠에 들고,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뜬다. 그 사이의 시간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이어가지만, 사실 그 사이에서 우리의 의식은 완전히 끊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잠들기 전의 나와, 잠에서 깨어난 나는 정말 동일한 존재일까.

   

 

잠과영혼_표지_평면.jpg

 

 

그렉 이건은 현대 하드 SF를 대표하는 작가로,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를 결합해 인간에 대해 탐구해 온 인물이다.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단순한 공상이나 서사적 재미를 넘어,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질문을 던진다.


하드 SF는 일반적으로 과학적 정확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중시하는 장르로 정의된다. 그러나 그렉 이건의 작품에서 이 장르는 단순한 기술적 정밀함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과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기존의 전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의식은 어디까지 연속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조건에서 유지되는가. 그의 소설은 이 질문들을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 하나하나 보인다.


출판사 허블에서 출간된 소설집 『잠과 영혼』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작품집이다. 수록된 중·단편들은 인간 존재를 서로 다른 축에서 밀어붙이며,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정체성의 기반을 흔든다. 그중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과 표제작 「잠과 영혼」은 각각 생존과 의식이라는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인간을 탐구하며, 결국 ‘인간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생존이라는 냉혹한 수식, 그 끝에 남는 인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물리적 세계의 극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달에 고립된 주인공 아이샤는 궤도 계산, 중력의 변화, 대기 밀도와 같은 조건 속에서 생존을 이어가야 한다.  인물은 제한된 자원과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계산하고 선택해야 한다. 어떤 판단은 곧 생존으로 이어지고, 어떤 판단은 죽음으로 직결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생존을 철저히 ‘판단의 문제’로 끌어내린다는 데 있다. 감정이나 직관은 보조적인 요소에 가깝고,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 더 높은 생존 가능성을 가지는가에 대한 계산이다.


아이샤는 상황을 낭만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변수와 위험을 고려하며,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반복적으로 갱신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더 이상 안정된 존재가 아니라, 조건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냉정한 계산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관계와 책임이다. 아이샤는 혼자가 아니라 젖먹이 딸 누리와 함께 있으며, 자신의 선택이 타인의 삶까지 결정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한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단순한 생존 서사를 넘어선다. 생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포함한 선택의 문제로 확장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관계를 유지하고, 의미를 만들어낸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갱신하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에 가깝다.


 

누리가 기쁜 듯이 옹알거리기 시작했다. 아이샤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아이샤는 잠시 흐느꼈다. 지아니를 떠올리며, 칭이를 떠올리며, 참담하게 변했을지도 모를 지구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윽고 아이샤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딸을 향해 나직하게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서로 눈을 마주 볼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매일 밤 사라지고, 아침마다 다시 이어지는 ‘나’


 

반면 「잠과 영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해체한다. 이 작품에서 문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의식의 연속성이다. 19세기 미국 평행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그것은 의식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이며, 나아가 ‘영혼의 부재’로 해석된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인물은 여전히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설정은 곧바로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동일한 ‘나’를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억이 이어져 있기 때문인지, 신체가 동일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의식이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작품은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그 기준들이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낸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사회적 시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 자신 또한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의식이 완전히 끊겼던 그 시간 이후의 자신이 이전과 동일한 존재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다. 기억은 이어져 있지만, 그 사이의 공백은 어떤 방식으로도 경험되지 않는다. 이 공백은 단순한 시간의 누락이 아니라, 존재의 연속성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균열로 작용한다. “영혼이란 단지 몸이 깨어 있을 때 느끼는 감각에 불과하다”라는 작품 속 문장처럼, 잠드는 순간 영혼은 사라지고, 우리는 기억만을 이어받은 새로운 주체로 깨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이 더욱 인상적인 이유는, ‘잠’이라는 상태를 일방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인물은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을 느낀다. 의식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는 고통과 현실에서 벗어난 또 다른 가능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멈췄고, 그런 다음 다시 시작했다. ‘그’라는 집이 침묵해 있는 동안, 그의 기억과 성격을 구성하는 가구와 물건들은 먼지막이 커버에 덮인 채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두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피부 아래에 보관되어 있었다. 영혼이란 단지 몸이 깨어 있을 때 몸이 느끼는 감각에 불과했다. 그가 잠들면 영혼은 사라진다. 그가 죽은 뒤에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 「잠과 영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과 「잠과 영혼」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탐구한다. 하나는 생존이라는 외부 조건 속에서 인간을 시험하고, 다른 하나는 의식이라는 내부 조건을 무너뜨리며 존재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두 작품은 결국 같은 지점에 도달한다.


인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생존의 조건이 바뀌면 인간의 선택이 달라지고, 의식의 조건이 흔들리면 인간의 정체성 또한 흔들린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단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조건 위에서 임시로 유지되는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매일 잠들고, 다시 깨어난다. 그 사이에서 의식은 완전히 끊어지지만,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같은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과연 얼마나 확실한 것일까. 의식이 끊긴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매번 새롭게 구성된 존재를, 단지 동일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디까지 같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가.


그 질문은 책을 덮은 이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도, 다음에 잠들기 전까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 것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