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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한국 록의 60년을 다시 듣는 일

- 『로크 200』이 필요한 지금


 

명반을 말할 때 우리는 단순히 좋은 곡이 많이 담긴 음반을 떠올리지 않는다. 명반의 진짜 기준은 앨범이라는 형식 전체가 만들어내는 유기성에 있다. 첫 트랙을 재생하는 순간의 공기와 마지막 트랙이 끝나고 남는 여운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시대의 감정과 창작자의 결심이 고스란히 응축된 앨범을 보통 우리는 '명반'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앨범은 개별 트랙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그 앨범만 가진 온도나 결로서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특정 시기마다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는 명반·명곡 프로젝트가 등장해 왔다. 1998년 잡지 '서브'에서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부터 멜론×서울신문의 'K-POP 100대 명곡'처럼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조망한 기획도 있었다. 또한 작년에는 EBS 스페이스 공감 20주년을 맞아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을 발표했다. 이런 리스트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음악계가 한 번 숨을 고르고 뒤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생길 때 등장했다. 음반 시장의 변화나 세대교체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 '정리형 프로젝트'가 한 번씩 등장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함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한국 록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홍대 클럽 무대에서,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서,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서 밴드가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실리카겔·잔나비·새소년 같은 젊은 밴드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장을 채우고, 밴드 음악 중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등장했으며, 대형 페스티벌 라인업도 재편되고 있다. 단순히 유행이 반복된 것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 디지털 기반으로 제작 환경이 확장되면서 밴드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정체성과 실험을 이어왔고, 이 흐름이 2020년대 중반 들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감각 위에서 록이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는 지금, 음악 시장의 흐름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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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기에 NOVVAVE(노웨이브)가 출간한 『로크 200』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1964년 애드 훠의 「비 속의 여인」부터 2023년 실리카겔의 「POWER ANDRE 99」까지, 60년의 한국 록 명반을 하나의 서사로 엮은 대규모 기록 프로젝트다. 음악평론가·뮤지션·라디오 PD 등 총 33인의 전문가가 참여해 200장을 선정했고, 리뷰 또한 직접 집필했다.


참여 필진의 면면을 보면 이 책이 어떤 시선으로 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김학선·서정민갑·정민재·배순탁·이경준 같은 이름들은 오랜 기간 한국 음악을 기록해 온 필진이다. 동시에 델리스파이스 윤준호, 로큰롤라디오 김내현처럼 현장에서 연주해 온 뮤지션들도 함께했다. 이 구성은 곧 창작자와 비평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겹치는 지점을 만든다.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의 음악인을 통해 과거 음반의 위치를 새롭게 읽어내는 해석도 함께 담아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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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산울림의 김창완,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다크 미러 오브 트래지디, 잔나비, 공중도둑, 이승열, 실리카겔, 남상아까지, 서로 다른 세대의 록 뮤지션들이 직접 들려주는 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와 현재 씬의 중심에 선 창작자들이 한 권 안에서 이어지는 구조는 한국 록의 계보를 생생하게 체감하게 만든다. 인터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한국 록을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고,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었으며, 지금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시대는 바뀌어도 그 안의 감정과 고민의 결은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 록은 시대마다 결이 달랐고, 방식도 달랐지만, 그 안에는 늘 한국적 감정의 흔들림과 직설이 존재했다. 산울림의 실험성과 과감함, 들국화의 서정성, 90년대 인디의 거침없는 솔직함, 2000년대 모던록의 정제된 감성, 2010년대 이후의 밴드들이 만들어가는 경계 없는 사운드까지. 『로크 200』은 이 흐름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료이자, 지금 우리가 듣는 '한국 록'이 어떤 시간 위에서 만들어져 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안내서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이어졌다. 명반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기록했는가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런 기록은 전문가의 시선 안에서도, 개별 청자의 경험 안에서도 똑같이 태어난다는 것. 각자의 '좋아하는 앨범'이 개인의 기억을 이끄는 작은 명반이 되는 순간처럼, 음악은 결국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지금, 너라면 어떤 한국 록 음악을 추천하고 싶어?" 각자의 취향은 다르지만, 추천의 이유에는 늘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이 조금씩 담겨 있다. 정규 앨범뿐 아니라 EP나 싱글이 섞여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오래 남는 음악이라면 그것 또한 충분히 기록하고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금 듣기 좋은 한국 록의 공기를 담아 보고자 했다.


*


우리가 지금 듣는 한국 록

(가수 - 앨범명 - 발매년도 순서 / 앨범명 표기: 「 」 — EP·싱글 포함)


학창 시절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던 사람이 듣는 록 — 검정치마 「THIRSTY」 (2019)

•Track List: 틀린질문 · Lester Burnham · 섬 (Queen of Diamonds) · 상수역 · 광견일기 · Bollywood · 빨간나를 · Put Me On Drugs · 하와이 검은 모래 · 맑고 묽게 · 그늘은 그림자로 · 피와 갈증 (King of Hurts)

삶의 희로애락과 사랑의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낸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차갑고 건조한 질감 속에 분명히 담겨있는 따스함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앨범. 시간이 지나도 쉽게 휘발되지 않는 감정의 결이 이 음반의 가장 큰 힘이 아닐까.


돌고 돌아 음악 취향이 같아진 사람이 듣는 록 — 부활 「기억상실」 (1993)

•Track List: 소나기 · 흑백영화 · 기억상실 · 8.1.1 (연주곡) · 사랑할수록 · 별 (연주곡) · 흐린 비가 내리며는 · 그리움 그리운 그림

먼저 떠나간 멤버의 데모 보컬이 남아 있어 기록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앨범이다. 동시에 구성과 사운드 완성도도 뛰어나 한국 록 발라드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개인적 기억과 음악적 미학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작품이다.


따스하고 평안한 분위기의 사람이 듣는 록 — The Poles 「The High Tide Club」 (2022)

•Track List: space · Rollover · Find Me! · Goin’ High · High Tide · Good Morning Sunshine (2022 Remastered) · Strawberry Moon · Sun Shower · Don’t Be Afraid · space (acoustic ver.)

새벽 공기 같은 투명한 감각이 서사를 이루는 앨범. 데뷔 첫 정규앨범임에도 밴드의 색과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 더 폴스가 가진 감수성과 방향성을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


록 외골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듣는 록 — 서태지 「Atomos」 (2009)

•Track List: MOAI · HUMAN DREAM · T’IKT’AK · BERMUDA [Triangle] · JULIET · COMA · REPLICA · 아침의 눈 · MOAI [RMX] · T’IKT’AK [RMX] · BERMUDA [RMX] · COMA [NATURE]

시간이 지나도 앨범 Atomos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로봇과 AI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지금, '나와' 기술 발전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때 들으면 더욱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앨범이다. 그때의 상상과 지금의 현실 사이에서, 음악이 건네는 미래의 감각이 한층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페스티벌로 계절을 느끼는 사람이 듣는 록 — 잔나비 「Monkey Hotel」 (2016)

•Track List: Goodnight ·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 Dandelion · O.WHEN · Call Me Now · 굴다리 · Sister’s Barbershop · Most Ordinary Existence · 너에게만 보이는 나 · MONKEY HOTEL(Finale)

팀 이름 '잔나비(원숭이)'의 세계관과 정체성을 완전히 입체화한 콘셉트 앨범. 멤버들이 스스로 '몽키 호텔'의 원숭이가 된 듯 몰입해 완성한 음악 세계가 돋보인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고, 공연장에서 이 앨범의 곡들이 나올 때마다 현장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의 첫 코드가 울릴 때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하는 순간을 보면, 명반이란 결국 집단의 기억 속에서 완성된다는 걸 느낀다.


밴드를 사랑하는 20대 후반이 듣는 록 — DAY6 「Shoot Me : Youth Part 1」 (2018) (EP)

•Track List: WARNING! · Shoot Me · Somehow · Feeling Good · Talking To · Still

데이식스의 가장 뜨겁고 강렬한 록 에너지와 특유의 감성이 균형 있게 담긴 앨범이다. 'Shoot Me'와 'Warning'의 폭발적 트랙 뒤에 이어지는 록 발라드의 흐름은 밴드가 가진 스펙트럼을 넓게 보여준다고. 청춘의 뜨거움과 서정성을 동시에 품은 앨범. K-POP 아이돌 밴드라는 형식 안에서도 록의 본질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청춘을 누구보다 잘 즐기는 사람이 듣는 록 — 하현상 「Calibrate」 (2020) (EP)

•Track List: 하이웨이 · 등대 · 파랑 골목 · 죽은 새 · 데려가 줘 · 어떤 이의 편지 

청춘의 불안, 위태함, 텅 빈 마음을 하현상만의 섬세한 언어로 담아낸 앨범이다. '등대'를 포함한 모든 트랙이 서로의 감정을 밀어 올리며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소년의 록'을 말할 때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앨범이며, 어떤 음악은 특정 나이에만 쓸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만들 수 없는 감정의 기록이 앨범 속에 담겨있다.


좋아하는 것과 늘 함께하는 사람이 듣는 록 — LUCY 「열」 (2022) (EP)

•Track List: 뜨거 · 아지랑이 · Magic · 내버려

여름의 뜨거움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록밴드다운 방식으로 압축한 EP. 네 곡뿐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와 정서의 밀도는 크다. 공연에서 이 앨범의 곡들이 터질 때의 열기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특히 '히어로'의 첫 비트가 떨어지는 순간, 관객들이 일제히 몸을 흔드는 광경은 잊기 힘들다.


공연장에서 늘 볼 수 있는 열정적인 사람이 듣는 록 — Dragon Pony 「POP UP」 (2024) (EP)

•Track List: POP UP · 모스부호 · 꼬리를 먹는 뱀 · Traffic Jam · Pity Punk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청춘의 거칠고 솔직한 열기가 생생하게 담긴 드래곤 포니의 POP UP. '꼬리를 먹는 뱀' 과 같은 트랙에서는 젊은 세대 특유의 직관적이고 비판적인 시선도 드러난다. 앞으로의 음악적 행보가 더 기대되는 팀의 시작점을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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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받으면서 느낀 건, 음악은 결국 누군가와 나누는 순간 완성된다는 점이다. 『로크 200』이 60년의 한국 록을 기록한 이유는 지금 우리가 듣는 음악이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1980년대 산울림을 들으며 느꼈던 놀라움과, 2020년대 실리카겔을 들으며 느끼는 전율은 시대가 달라도 본질적으로 닮았다. 세대를 잇는 데는 음악만 한 게 없다.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음악을 들었지만, 그때 우리가 느낀 감정—설렘, 외로움, 분노, 위로—은 결국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


과거가 있었기에 현재가 있고, 누군가가 열심히 발매한 노래가 있었기에 우리의 플레이리스트가 완성된다. 그렇게 한국 록은 세대를 가로지르며 이어져 왔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당신이 지금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은 한국 록 한 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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