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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예술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는가. 우리는 종종 눈앞에 있는 완성된 결 과물에만 눈을 빼앗기기 쉽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일』은 그 반대편에서 출발한다. 다듬어지기 전의 흔들리는 선, 자리를 찾지 못한 단어, 형태를 갖추지 않은 생각의 조각들. 이 책은 바로 그런 시작점에 주목하며, 창작의 과정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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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회에 가면 작가들의 아이디어 노트를 보는 걸 좋아한다. 완성된 작품도 좋지만, 그것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마치 남몰래 작가의 비밀 일기장을 엿보는 일 같아서다. 낙서 같은 메모, 정리되지 않은 구상, 언뜻 보기엔 무의미한 선들이 모여 어떻게 작품이 되는지 늘 궁금해 꼭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것을 찾아다닌다. 아마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애덤 모스도 같은 마음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거로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 애덤 모스는 40년 가까이 《뉴욕》,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에서 편집장으로 일한 언론인이자, 은퇴 후 전업 화가로 활동하며 창작의 여정을 스스로 살아낸 사람이다. 그는 기자로서, 예술가로서, “무엇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를 궁금해했다. 『예술이라는 일』은 바로 그 호기심에서 출발한 책이다. 그는 회화, 문학, 음악, 연극, 건축, 심지어 요리에 이르기까지,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48명의 예술가를 찾아가 인터뷰하며, 창작의 모태를 탐색한다. 책은 에세이이자 일종의 구술 기록이며, 각 예술가의 말이 인터뷰 형식 그대로 생생하게 담겨 있어 독자가 현장의 대화를 엿듣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일, 『예술이라는 일』은 그 호기심의 답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예술은 종종 신의 영감이나 천재성의 산물로 포장되어 왔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건 훨씬 더 고된 현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본문에서 창작이 ‘기적’처럼 느껴질 수 있음에도, 그것을 설명하려 할 때마다 스스로 그 단어를 밀쳐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창작이란 단번에 오는 계시가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는 판단과 실험, 그리고 끈질긴 견딤의 연속이라는 점을 더더욱 주목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등장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중 두 사람을 가볍게 소개해 줄까 한다. 한 명은 ‘아이들 방식’을 창작 철학으로 삼는 만화가이고, 다른 한 명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영화 『틱틱붐!』에도 등장하는 뮤지컬계의 전설적인 작곡가다.

 

 

 

라즈 채스트: ‘아이들 방식’으로 그려낸 세계


 

창작의 시작이란 늘 어지럽다. 그리고 어떤 예술가는 그 어지러움을 고스란히 껴안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라즈 채스트는 그런 사람이다. 40년 넘게 《뉴요커》에 만화를 기고해 온 그녀는 뉴욕 교외에 있는 집에서 인터뷰어를 맞으며, 구석구석 자신만의 세계로 가득 찬 공간을 보여준다. 벽에는 자신이 그린 만화들과 동료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고, 작업실 한편에는 사용하지 않은 만화 아이디어들이 종잇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그녀는 그런 아이디어들을 따로 모아두는 ‘상자’를 갖고 있다. “콘시어지”, “해킹”, “행복 담당 최고임원” 같은 말이 적힌 종이쪽지들. 대체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싶은 단어들이지만, 그 조각들이 그녀의 만화가 된다. 어느 날은 열차 안에서 본 광고 하나가 영감이 되어 “너의 새 안경을 축하해” 같은 기묘한 축하 케이크를 그려낸다. 또 다른 날은 십 대 아들이 “엄마, 그만해요”라고 말한 순간에서 만화 한 컷이 탄생한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아이들 방식”이라 부른다.

 

“나는 아이들처럼 그리는 걸 진짜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의 자유로운 낙서처럼, 그녀는 만화를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 정제되지 않은 그림체, 단순하고 과장된 표정, 우스꽝스러운 대사. 그것들은 세상의 복잡한 감정을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낸다. 놀라운 점은, 그 유쾌함이 단순한 웃음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화 속 허를 찌르는 장면들은 관찰자의 시선에서 비롯되며, 삶의 기이한 리듬을 포착한다. 채스트는 “좋은 아이디어가 통과되지 않더라도 여러 번 다시 보내본다”라고 말한다. 거절당한 원고는 끝이 아니라, 다시 웃어볼 기회일 뿐이다.


그녀의 창작은 흩어졌던 생각들을 조각조각 모아 “지금-여기”의 감정으로 엮어내는 마법과도 같다. 무엇이 예술이 되는가를 묻는 이 책에서, 라즈 채스트는 ‘유머’라는 예민한 감각을 예술의 이름으로 제안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아이처럼 바라보려는 의지가 있다.

 

 


스티븐 손드하임: 정밀함 속에 감정을 숨긴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은 음악을 퍼즐로 여겼다. 하지만 그가 짜놓은 퍼즐은 단지 기교의 산물로 끝나지 않았다. 손드하임의 음악은 놀라운 정밀함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아래에 두려움과 갈망, 긴장과 유머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예술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꺼내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컴퍼니』 속 대표곡 〈오늘 결혼할 거예요〉는 그 예다. 히스테리에 빠진 주인공의 머릿속 독백을 리듬으로 표현한 이 곡은, 철저한 구조 속에서도 불안과 혼란의 감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는 가사 한 줄 한 줄을 마치 랩 가사의 라임을 맞추듯 강세와 발음까지 계산하며 완성했다. 그 과정은 마치 음악을 통해 수학 문제를 푸는 것과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드하임의 음악은 건조하지 않고 따스함과 촉촉함을 품고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작업의 밑바탕으로 두고, ‘혼돈에서 질서를 짜내려는’ 욕망을 작품으로 풀어냈다.

 

손드하임은 창작의 윤리를 고수하되, 자기 작품이 재해석되는 과정을 사랑했다. 그는 말했다. “극은 끊임없이 새롭게 상연될 수 있어야 한다.”라고. 그의 음악은 재해석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지녔고, 그 속에 숨겨진 감정의 진동은 여전히 강렬하다. 『예술이라는 일』은 손드하임이라는 이름을 통해, 창작이 어떻게 감정을 구조로 번역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예술은, 그렇게 계속되는 일

 

책에는 앞서 살펴본 라즈 채스트와 스티븐 손드하임 외에도, 창작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소설가 마이클 커닝햄은 수십 개의 초안을 통해 언어의 구조를 실험하고, 음악가 모지스 섬니는 내면의 갈등을 사운드로 풀어낸다. 시각 예술가 바버라 크루거, 조각가 케빈 비크너, 무용가 카민 드라스보이스, 셰프 크리스 셰퍼드까지. 어떤 이는 규율 속에서, 어떤 이는 직감과 즉흥 속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일』은 예술가들의 완성된 면모가 아니라, 스케치와 실패, 자잘한 아이디어와 끈질긴 반복을 통해 예술이 ‘되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예술가의 책상 곁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무언가를 아직 시작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사람에게도, 예술이라는 일은 그렇게, 오늘도 계속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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