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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북은 ‘기억하라’(Memento)는 말처럼 흩어지는 생각·감정·순간을 질문과 나만의 답으로 붙잡고 기록하는, ‘나의 기억 아카이브’다.


처음 책을 만나고 나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공책 하나만큼의 두께와 강렬한 표지색, 그에 걸맞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대한 폰트 크기의 메멘토라는 제목. 그리고 그와 극명히 대비될 만큼 상당 부분의 여백, 무(無)로 채워진 가벼운 속지까지. 이렇게나 속이 빈 책은 처음 만나봐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옛날 어린아이 때 즐겨보던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에피소드의 클리셰 같았다. 엄청난 힘을 가진 고대의 무기를 선사받았지만, 막상 그 무기 자체에는 괴력이 없고, 주인공이 앞으로 기진맥진하게 수련하며 힘을 채워가야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내용 말이다. 왠지 이 메멘토 북 또한 내게는 그런 고대의 무기, 신성한 고서와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메멘토 북의 이용수칙을 읽어 내려갔다.


 

마음이 가는 질문부터 시작하세요.

차례대로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답을 미뤄도 괜찮습니다. 고민되는 질문은 나중에 다시 돌아와도 됩니다.

 

 

빈칸을 겁내지 마세요.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답을 적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질문은 오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직 정답은 내 안에 있습니다.

이 책에 담긴 질문에는 맞고 틀림이 없습니다. 내가 적어 내려간 문장 하나하나가 곧 나만의 정답이 됩니다.

 

 

호오... 그렇단 말이지. 속이 훤히 빈 속지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아까는 제대로 보지 못했던 질문들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곧 확실히 알게 되었다. 너무나 자명하게도 이 책의 저자는 나이며, 나의 생각과 잡념과 감정, 그리고 찰나의 순간의 기록들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그러자 처음 느꼈던 당혹감은 이내 사라지고 끝도 없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연재하며 나의 일상과 감정들을 ‘자동기록’ 하고 있지만, 아무리 솔직해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을 때가 있다. 사람은 본인의 일기장에서도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데 오죽할까. 그런 태생적 아쉬움을 메멘토 북이 채워준다. 정답 없는 수많은 질문과 그 아래 여백을 보고 있으면 역설적이게도 충만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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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당신은 과거로 돌아가 실수 한 가지를 지우기를 택할 것인가, 아님 차라리 미래의 일 한 가지를 알기를 원하는가? 또, 많은 사람에게 적당히 사랑받는 삶과 한 사람에게 깊이 사랑받는 삶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챗 지피티 혹은 제미나이에게 묻고 물어 가정된 상황 내에서 합리적인 답변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나만이 할 수 있다. AI인 그들은 과거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불투명한 미래가 죽도록 궁금한 이는 아무리 과거의 실수가 후회되더라도 미래의 일을 알길 택할 것이고, 한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사랑받아봤어도 그것이 끝났을 때의 무한한 공허를 느낀 이라면 적당히 여럿에게 사랑받는 삶이 더 낫다고 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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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재정비하기에 좋은 질문들도 빼곡하다. 나는 ‘언제 처음으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나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생각보다 그런 순간이 많지 않은 것 같아 망설였다. 그러다 하나씩 생각이 나서 꾸역꾸역 적다가, 적고 보니 나름 ‘어른’같은 순간이 꽤 있다는 사실에 약간은 뿌듯했다.


‘아이와 어른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나는 ‘아이일 때는 꿈을 꾸고 , 어른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이 아이와 어른을 구분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어른이 된 지금 내가 꿨던 수많은 설레는 꿈들이 있었음을 다시금 느꼈고, 그걸 조금씩 하루하루 실현해 나가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유명 베스트셀러 책의 요지와 핵심문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그뿐인가. 다른 사람들의 자세한 일상과 생생한 감정들까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속독하고 있다.


그런 글들은 때로는 나의 마음을 참 잘 어루만져 준다. 때로는 번뜩이는 영감과 약간의 설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저장해 둔 감명 깊은 글 한 문단보다도, 나의 마음 깊은 곳 숨어있는 생각 토막들이 더 빛날 때가 있다.


완벽한 답을 찾아 GPT를 매질하는, 견고한 네모박스를 탈피해 가장 자유로운 마음으로 나만의 문답을 기록해 보자. 답변 길이도, 방향성과 어투도 상관없는 진심 어린 답변은 결국 나의 삶을 기어코 바꿔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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