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30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작품이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각본과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화려한 영상과 기술을 사용해도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다면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이>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왜 지금까지 사람들의 공감과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오디세이>가 담고 있는 것은 신과 괴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복수, 죄책감, 생존에 대한 본능이다. 시대와 장소가 달라도 인간이 가진 욕망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양의 오래된 이야기가 동양권에 사는 나에게도 낯설지 않았고, 결국 나 역시 그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영웅의 승리 뒤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승리를 이끈 영웅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를 단순히 위대한 영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윤리를 짓밟기도 했다. 누구보다 제우스의 법을 이야기하고 타인의 친절과 보살핌을 원했던 사람이 정작 전쟁에서는 그 법을 어겼다.
특히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를 공격하는 장면이 그렇다. 자기 부하가 처참하게 잡아먹힌 것에 대한 복수였다. 당한 만큼 돌려준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신의 아들이었고, 오디세이의 복수는 포세이돈의 분노를 불러왔다. 그 결과 2년이면 돌아갈 수 있었던 거리를 20년이나 걸려 고향에 도착하게 된다.
자신이 한 행동의 대가를 결국 자신이 치른 셈이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빼앗은 것은 언젠가 또 다른 공격과 복수로 돌아온다. 내가 저지른 일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세운 성은 영원할 수 있을까
전쟁은 흔히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지키며 승리를 쟁취하는 위대한 역사처럼 기록된다. 하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상대 진영에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는 일은 인간의 역사에서 너무나 반복됐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사람들은 무슨 죄가 있었을까.
전쟁을 결정한 것은 왕과 권력자였지만 그 대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치른다. 특히 여성은 전쟁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강간과 약탈, 살인이 일상화된 전쟁터에서 여성의 목숨은 너무나 쉽게 짓밟힌다. 무인도에서 사람들에게 마법이 걸린 음식을 먹이고 남성들을 짐승으로 변하게 만든 여성 키르케의 이야기도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오히려 병사들은 그녀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강간당하고 죽임당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흔히 악역이나 괴물처럼 바라보는 인물에게도 그 나름의 생존 이유가 있었을 수 있다.
20년 동안 왕국을 지킨 사람은 누구였을까

오디세이를 기다린 페넬로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남편을 기다리는 왕비가 아니었다. 오디세이가 전쟁터로 떠난 뒤 20년 동안 이타카 왕국을 지켜야 했다. 아들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토로하는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20년 동안 여왕으로 살아온 자신이 겪은 경험과 과정은 아직 어린 아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험난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여성은 왕이 되면 안 되는가.
오디세이가 없는 20년 동안 왕국을 지켜온 사람 역시 페넬로페였다. 그런데도 역사는 오디세이를 영웅으로 기억하고, 페넬로페는 오디세이를 기다린 아내로 기억한다. 20년 동안 왕국을 지킨 그녀의 노고를 누가 제대로 헤아렸을까.
저승에서 다시 만난 전사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저승이었다.
동물의 피를 제물로 바치자 오디세이와 함께 전쟁에 나섰다가 죽은 전사들의 망령이 나타난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병사가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내고 오디세이를 향해 다가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엄청난 압박감과 죄책감, 책임감이 느껴졌다. 죽은 병사들이 오디세이에게 말을 걸고 무엇인가를 따지는 장면보다 그 수많은 망령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모습 자체가 강렬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기록으로 남으면 하나의 숫자가 된다. 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에는 누군가의 삶이 있었다. 그 심리적인 무게를 영상 언어로 표현했다.
이야기는 약 3000년 전, 영화는 지금 만들어졌다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영화적 언어가 필요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 전체를 35mm 필름으로 촬영했고, CG에 의존하기보다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장면은 최대한 실사로 촬영하려 했다. 거대한 트로이 목마와 외눈박이의 모습,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장면까지 ‘이게 진짜라고?’ 싶었던 장면들이 실제 촬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무겁고 시끄러운 카메라를 들고 바다와 전쟁터를 누비며 자신의 소신을 담아낸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관객은 극장에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영화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을 일반 관객인 나는 즐겁게 감상했다.
OST도 인상 깊었다. 특히 오디세이가 활을 ‘딩’ 하고 튕길 때 나는 소리가 이상하게 계속 귀에 남았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마치 세이렌의 노래처럼 느껴졌다. 한 번 듣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다시 듣고 싶게 만드는 소리였다.
결국 전쟁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오디세이>를 보고 나서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왜 전쟁해야 하는가.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인가. 더 강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인가. 왕국을 굳건하게 지키기 위해서인가.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는다.
누군가의 피눈물 위에 세운 드높은 성은 언제까지나 유지될 수 있을까.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디세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20년 동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인간이기도 하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영화가 말하는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형태이고, 그 욕심의 대가는 누군가가 치르게 된다.
약 30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화 속 인물의 이야기를 보고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욕망하고, 사랑하고, 복수하고, 실수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인간.
영화 <오디세이>는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