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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미술의 '순수함'은 어디 있는가 -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도서]

순수함에 갇히지 않고 미술을 읽는 법

by 손가인 에디터
2026.09.2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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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종종 어떤 예술을 ‘순수하다’고 부른다. 장르문학과 대비되는 순문학,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과 다른 순수미술, 대중음악이 아닌 순수음악. 그러나 그 순수성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고 설명되는가?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는 예술, 그중에서도 미술의 순수성을 향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책의 제목은 그 자체로 책의 주장이다.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당연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이유 없이 제시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21세기 미술 시장의 변화에 주목한다. 미술은 이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험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으며,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 기술은 미술 시장의 판도를 적극적으로 뒤집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사회적인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 작품의 가치와 가격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미술을 상품이나 투자 자산으로 보는 현실의 태도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기보다, 그러한 시각이 형성되어온 과정에 주목한다.

       

      2장에서 저자는 르네상스기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설명한다. 이는 “고전 미술은 처음부터 상업적”이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책은 단순히 미술의 색감과 구조 등의 내재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읽어낼 필요성을 제시한다. ‘시대의 눈’으로 미술 작품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순수성과 상업성의 불일치는 작품이 탄생하고 거래되고 수집된 모든 시기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상호작용한다. 이어지는 3장은 “상품으로 거래되기 시작한 미술”과 “시대가 작품의 값을 매긴다”는 현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것은 4장이었다. 전공 수업이었던 ‘공공역사와 문화유산’ 강의에서 뮤지엄에 대한 수업을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강의에서 다루었던 영국박물관이 등장하여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반가움을 느꼈다. 다만 전공에서 다루었던 것이 박물관과 공공성에 가깝다면 이 책에서는 뮤지엄의 ‘컬렉션’과 창립에 조금 더 무게를 둔 듯하다. 영국 박물관이 가진 컬렉션과 책이 소개하고자 하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면, 국가를 대표하는 뮤지엄의 수집과 전시, 보존에도 시대를 보는 눈이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수집은 뮤지엄이라는 강력한 주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 역시 미술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이며, 그러한 미술 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미술 시장의 자리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5장에서는 영국의 유명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비롯하여 역사적으로 미술 시장에 큰 획을 그은 컬렉터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미술이 자본화되는 과정을 통해 21세기 미술 시장의 역동성과 상업성을 이야기한다. 결국 미술은 작품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을 만들고, 사고, 수집하고, 전시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둘러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미술이 된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예술의 ‘순수성’이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대중문화와 대비하여 연상하곤 하는 고고한 ‘순수함’은 애초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의 미술도, 오늘날의 미술도 그것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시대와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세상에 순수한 예술이란,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예술일 뿐인지도 모른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술에서 상업성을 떼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미술을 바라볼 때 무엇을 함께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작품 하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고 소비된 시대와 사람들까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미술을 ‘순수한 것’으로 바라보는 순간 오히려 미술을 둘러싼 수많은 맥락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미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둘러싼 시대까지 함께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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