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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난 23일, 잠실에 다녀왔다. 영화 <시라트>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성탄절과 연말을 앞둔 백화점은 화려하게 반짝거렸고, 마침 저녁 시간이었던 탓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영화관에서는 달콤한 팝콘 냄새와 함께 신나고, 화려하고, 극적인 영화들이 제각기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탓일까. <시라트>의 충격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짧은 시놉시스만 읽었을 뿐, 한동안 이래저래 바빠 예고편조차 보지 못한 탓에 영화의 전개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지금부터 가히 '폭발적이던' 영화 전개를 따라가며 작품이 남긴 흔적을 찾아가보고자 한다. 해당 리뷰에 첨부한 사진은 포스터와 예고편 캡쳐본이다.

 

다만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해당 리뷰를 읽지 않기를 권한다. 스포일러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해당 작품은 정말 예고편도 보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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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레이브 파티, 전쟁의 발발


 

먼저 영화는 수많은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레이브 파티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 딸을 찾아 헤메는 루이스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눈에 띈다. 파티를 방문한 목적 자체도 이질적인 데다가 파티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어린 아들 에스테반까지 동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창 춤을 추고 루이스는 전단을 돌리던 그때, 군인들이 나타나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킨다. 참가자들은 반발하지만 군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파티를 중단한다.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통제 하에 피신하는 와중에도 루이스의 속은 복잡하다. 이번에야말로 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딸이 모로코의 레이브 파티에 참석할 것이라 알고 있는 루이스에게, 사막 너머에서 열릴 또다른 레이브 파티는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던 중 앞서 가던 자드 일행이 군인들의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이탈을 시도한다. 루이스 역시 에스테반의 재촉에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 도망치고, 여기서부터 그들의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 전쟁통에 사막을 건너 다음 레이브 파티에 가기 위한 여정의 서막이다.

 

 

 

자유와 방랑, 그리고 사막


 

사실 자드 일행은 첫인상부터 강렬하기 그지없는 이들이다. 스모키한 화장과 자유분방한 언행, 군인을 속여 피난길에서 이탈하는 대범함은 물론 마약을 하는 듯한 언급까지. 거기다 팔을 잃은 사람과 의족을 한 사람까지 있어 그들의 사연이 더욱 궁금해진다. 서로를 형제라 부르는 그들은 웃고 떠들며 삭막한 사막을 건넌다. 물과 연료조차 여유롭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 장애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고, 전쟁과 정치인을 비판하고, 때로는 위험한 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 여정은 여행과 같다.


영화 내내 불어오는 사막의 모랫바람은 그들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자드 일행은 '이런 차로는 사막을 버틸 수 없다'는 만류에도 고집스럽게 따라온 루이스와 에스테반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함께한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사막을 건너면서 루이스 역시 점점 더 마음의 문을 연다.


전쟁 상황과 대비되는 광할한 사막의 대자연은 다른 사람들과 유리된 피난처, 진정한 삶의 공간처럼 형상화된다. 가끔 군인들을 피해가는 것을 제외하면, 실제로 그들은 전쟁을 거의 실감하지 않은 채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3차 세계대전이 터진 건가' 싶지만 밖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이 택한 삶의 과제는 전쟁이나 피난이 아닌, 사막에서 함께 하루를 보내는 것 뿐이다. 언뜻 평온해 보이지만 이들의 일상은 그리 오래지 못해 깨지고 만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절벽을 지나던 중 그들은 위기를 맞이한다. 자드 일행의 차 바퀴가 진창에 잘못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차를 수리하고, 밀고 당기며 안간힘을 쓴다. 정성이 통했는지 차 바퀴가 진창에서 빠져나오고 그들이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비극은 그렇게 일어난다. 루이스의 차가 서서히 밀려나더니 절벽에서 굴러떨어지고 만 것이다. 차에는 아들 에스테반과 반려견 피파가 타고 있었다. 자드 일행은 달려가려는 루이스를 만류하고, 도움을 청하러 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겨우 만난 현지인에게마저 외면당한 그들에겐 더는 방법이 없다. '여긴 먼지밖에 없'는 사막이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아이를 구하지 못한 어른들에게 사막은 더이상 피난처도 삶의 공간도 아니다. 이때부터 사막이라는 공간은 본격적으로 황량한 죽음의 땅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음악의 울림


 

결국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 스피커를 설치하고 마약을 우린 것으로 추정되는 물을 나누어 마신다. 쿵쿵대며 박동하는 소리는 (다소 세속적이지만) 왜 이 영화가 칸영화제 '사운드트랙상'을 받았는지 알게 해준다. 시사회가 진행된 광음시네마에서는 스피커가 울릴 때마다 그 진동이 좌석까지 생생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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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음악은 죽음을 목격한 이들에게 삶의 감각을 선사한다. 더는 삶의 공간이 아닐 것 같았던 사막은 다시 한순간에 가장 격렬한 몸부림의 배경이 된다. '딸을 찾기 위해' 레이브파티를 찾았던 루이스는 이제 '아들을 잃은 채' 음악의 한가운데 서있다. 그는 눈을 감고 음악의 울림을 느끼고, 자드 일행은 그들만의 레이브파티를 통해 루이스를 위로하려 한다.

 

 


삶과 죽음, 칼날보다 날카로운 '시라트'


 

하지만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레이브 파티를 열었던 이곳이 다름아닌 지뢰밭이었기 때문이다. 폭발이 그들을 덮치고, 일행은 순식간에 형제이자 동료를 잃는다. 전쟁과는 격리된 듯 보였던 사막에서도 전쟁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에서 목격한 가족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그들은 이 지뢰밭에서 살아나갈 방도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이제 그들에게 생존이 달린 목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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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가 없는 길을 찾기 위해 차를 움직였지만 그마저도 터져버리고 물은 이제 다 떨어져간다. 그 상황에서 루이스는 돌연 일어나 성큼성큼 걷기 시작한다.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고 걸음을 옮긴 결과 그는 안전한 암석 지대에 도달한다. 남은 일행들은 루이스의 걸음을 따라간다면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마지막 희망마저 철저하게 파괴한다.


앞서 말했듯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죽음은 인간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일행 중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가진 이는 죽고, 기대를 버린 채 걸음을 옮긴 사람은 살아남는다. 영화 제목인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를 뜻하는 이슬람 단어로,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다'고 한다. 지뢰밭을 건너는 그들의 생명 또한 장담할 수 없는 시라트 위에 놓인다. 시놉시스는 이를 '신의 심판대'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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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자주 신의 심판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운명은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는다. 에스테반은 누나를 찾아나선 소년에 불과했고, 자드 일행 역시 과거사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아이의 죽음에 슬퍼할 줄 아는 인간적인 사람들임은 확실했다. 그러나 이들은 시라트에서 구원받지 못한다.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두려워하고 괴로워하지만 그 가늘고 날카로운 심판은 인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운명의 방향은 결국 전혀 바라지도 예상치도 못하는 방향으로 향하며, 피난길에서 이탈했던 그들이 결국 가족의 죽음을 겪은 이후 피난 기차에 올라타있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시라트>에서 영화가 그려낸 운명의 비극성과 무차별성은 사막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울리는 둔중한 사운드과 어우러져 배가된다. 취향이라 하기는 어려운 영화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낯선 요소들을 통해 이질적인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생사의 경계가 펼쳐지는 사막의 대자연과 음파를 통해 전해지는 울림이 생생하여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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