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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안과 결핍, 그리고 실수를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 연극 ‘플리백’ [공연]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처럼.

by 윤재현 에디터
2026.08.07 10:17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플리백〉은 1인 블랙코미디 여성극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이후 2016년 BBC와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동명의 TV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연극과 드라마 모두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아 여러 시상식에서 수상했다.

 

배우이자 작가인 피비 월러브리지는 이 작품을 통해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드라마 〈킬링 이브〉의 작가로도 성공을 거두며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는 창작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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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국 초연은 6월 19일부터 9월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되며,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 세 배우가 각기 다른 해석으로 플리백을 연기하며 관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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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안정형', '불안형', '도파민 중독'과 같은 심리학에서 사용될 법한 용어가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는 현대인들이 안정적인 삶과 관계를 갈망하는 동시에, 불안정한 심리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플리백은 현대인이 겪는 불안정한 심리와 관계의 결핍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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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작품 내내 플리백 (Fleabag)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플리백'은 '지저분한 사람', '문제투성이', 혹은 '누추한 곳'을 뜻하는 단어로, 주인공이 결핍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작품 속 플리백은 애정결핍과 집착, 성적 충동, 회피와 방어기제, 우울감 등 복합적인 감정과 심리적 상처를 지닌 인물로 그려진다.

 

연극은 한 여성이 면접장에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는 다른 지원자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이며 등장하고, 이러한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을 갖게 만든다. 그렇게 플리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왜 이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관객들에게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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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은 친구 부와 함께 기니피그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홀로 카페를 운영하게 된 플리백은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않았음에도 5,000파운드를 마련하지 못해 폐업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오랜 연인이었던 헨리와도 사랑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로 이별했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아버지와도 점점 멀어졌다. 언니를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아끼지만 형부 마틴과의 갈등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 역시 편안하지 않다. 이처럼 플리백은 삶의 거의 모든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지 못한 채, 가벼운만남이나 성적인 관계를 통해 상대가 자신을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연히 만난 '쥐를 닮은 남자'와의 관계 역시 진정한 사랑이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관계와 표현에 서툰 플리백에게도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친구이자 카페 공동 운영자였던 부와 늘 같은 시간에 카페를 찾던 단골손님 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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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는 플리백이 무심코 건넨 선물이었던 기니피그 힐러리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겼고,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처럼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불안정하고 공허한 플리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렇기에 부의 죽음은 플리백에게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죄책감과 그리움, 후회가 뒤섞인 깊은상처로 남는다.

 

조 역시 단순한 단골손님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물이다. 플리백은 겉으로는 그를 귀찮은 손님처럼 대하지만, 평소보다 늦게 오거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면 은연중에 걱정한다. 카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조를 만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그 관계를 붙잡고 싶은 마음에 서툴고 잘못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이는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는 그런 플리백의 모습마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가장 믿고 아껴주던 친구를 잃고, 부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기니피그 힐러리마저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 부와 함께했던 카페까지 사라지면서 플리백은 자신이 의지하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게 된다.

 

이처럼 연이어 찾아온 상실은 그녀의 죄책감과 불안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결국 억눌러 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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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플리백은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사람은 언제든 자신을 배신하거나 떠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농담으로 얼버무리거나 관계를 회피하고, 성적인 관계를 통해 공허함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여기에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부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는 죄책감은 그녀의 정서적 불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음을 연극 후반부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면접관이 플리백에게 보인 태도는 그녀의 사연을 접한 뒤 달라졌고, 플리백은 그러한 변화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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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결말은 사람을 단편적인 모습이나 한 번의 실수만으로 쉽게 판단하는 사회를 비판하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평소 타인의 일부 행동만 보고 그 사람을 쉽게 정의하려 하지만, 그 행동 뒤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처와 사연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주었다.

 

이처럼 연극 〈플리백〉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관계의 결핍, 잘못된 선택이 남긴 상처와 죄책감, 그리고 웃음과 쾌락 뒤에 감춰진 외로움과 우울 등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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