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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리의 이미지는 정말 우리의 것일까? [도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읽고 AI 시대를 '다른 방식으로 보기'

by 김수민 에디터
2026.09.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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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고 사진을 찍는다. 그림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미술 시간에 본인이 그려 완성한 그림 한 장 정도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미지는 정말 우리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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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존 버거 유명한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을 읽게 되었다. 버거가 제안하는 ‘다르게 바라보는 법’을 따라가며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한층 낯설어지는 경험을 했다.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몰라도 디자인을 전공하는 나에게 ‘보는 것’은 늘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버거의 문장은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2026년. 버거가 ‘다르게 보는 법’을 제안하고부터 5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이정표로 삼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AI 시대 속 이미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적어보고자 한다.

       

       

       

      1_ 복제 이전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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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Ways of seeing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선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럼 복제 기술 이전의 이미지는 어떠했을까. 과거에 이미지를 만드는 주체는 직접 붓을 들어 그리는 사람이었다. 이미지를 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미지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선에서 '전통적'으로 느껴지는 그 시절에는 이미지가 온전히 화가 자신의 것이었을까?

       

      과연 그 시절에는 이미지의 영광이 온전히 그 이미지 자체에서 나왔을까?

       

      책에 따르면 미술작품을 바라볼 땐 ‘미, 진실, 문명, 사회적 지위 등등’과 같은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미지의 영광이란, 사실 이미지 자체보다 권위 있는 귀족의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 권위 있는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이미지가 생산되는 방식은 계속해서 큰 변화를 겪지만 이미지의 권위란 사실 이미지 ‘바깥’에서 나온다는 이 큰 형태만큼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2_ 복제의 이미지


       

      카메라와 인쇄 기술의 발전은 제작 방식의 변화 외에도 많은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미지가 시공간을 초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 수많은 간판과 광고들이 우리를 반겨주며, 휴대전화의 전원을 키는 것만으로 잠금화면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미술관에 직접 찾아가 이미지를 감상한다는 장소와 시간에서 벗어나 '이미지가 우리에게 온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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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에서 원본 이미지의 의미가 어떻게 파괴되며 재생산되고 다양화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미지가 우리에게 온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SNS를 즐겨한다면 한 번쯤은 ‘페페’라는 개구리 캐릭터와 마주친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페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이미지를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원작 만화에서의 페페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페페는 기분을 나타내는 ‘짤’이다. 그저 슬픈 눈의 개구리 캐릭터가 미국에선 트럼프, 우리나라에선 디시인사이드, 홍콩에선 민주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페페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게 된 이유는 우리가 페페의 이미지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어떻게든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복제 시대에서는 원작의 고유한 의미를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다.


      이미지의 의미가 다양해지며 ‘메시지’와 같은 역할을 할수록 원본 이미지는 거들 뿐 ‘우리가 이미지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가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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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원본 이미지는 더 이상 권위가 없는 걸까? 하지만 여기에 반전이 있다. 만약 당장 내일 모나리자 원본이 한국에 상륙한다고 상상해보자. 오픈런을 하여 캐치테이블을 걸어도 하루 안에 볼 수나 있을까 모르겠다. 구글에 검색만 해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원본을 보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책에서만 봤던 그 모나리자, 수많은 예술가가 패러디했던 그 모나리자, 루브르에서 도둑맞았던 그 모나리자이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를 둘러싼 사실과 수없이 복제된 모나리자들은 오히려 원작을 신비롭게 만들어준다. 복제의 시대에도 원작의 권위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권위를 더해준다.


      원작이 여전히 권위가 있다는 사실은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의 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사람들은 고흐나 모네의 그림을 크게 확대한 스크린 위에서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애쓴다. 그림을 스크린에 쏘는 것만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에는 ‘고흐’와 '모네'라는 이름이 있다. 고흐의 원작이 그동안 쌓아온 명성이 있기에 그 전시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전에 ‘미술 좀 즐기는 고상한 사람’이라는 권위를 위해선 그 원작 앞에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현재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의 관객들은 자신만의 목적에 맞게 고흐의 그림을 배경으로 삼고, 잘라내고, 변형하며, 원작을 보러 갔다는 우월감과 엇비슷하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3_ AI 시대의 이미지



      우리는 이제 소위 ‘딸깍’으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프롬프트 몇 자로 이미지를 만들 수 있게 되며 만드는 이의 폭은 넓어지고 만드는 과정은 단순해졌다. 역설적으로 생산과정이 단순해질수록 이미지를 둘러싼 힘의 구조는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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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AI 이미지 생성은 ‘원본 – 복제’라는 시스템을 무너뜨린다. AI는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의 프롬프트에 통계적으로 가장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AI라는 수화기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굳이 원본 이미지의 존재를 몰라도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나도 모르게 표절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원작자도 생산자도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원본과 복제가 1:1 대응을 했던 과거와 달리 ‘복제’라고 부를 수 없는 제3의 무언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동의 없이 지구 어딘가에서 내 창작물이 표절되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표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 AI를 통한 이미지 생성이 꽤 공포스럽게 다가올지 모른다.


      여기엔 저작권 문제도 얽혀있다. 대형 AI 회사와 이미지 회사가 이미지 학습에 대한 계약을 맺는 사이에 개인 창작자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창작자가 크레딧을 원한다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겠지만 학습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창작자의 경우는 골치아프다. 내 창작물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경우, 이를 개인이 막기는 매우 어렵고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사실은 언제든 AI에게 학습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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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핫한 키워드를 몇 개 뽑자면 ‘취향’일 것이다. 비주류를 자처하기도 하며 나만의 취향을 말하는 팟캐스트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취향’은 정말 우리가 고른 거라고 말 할 수 있을까.


      핀터레스트를 무한 스크롤 하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제시한 이미지들 사이에서 내 취향이 갇혀있지는 않은가?’ 내가 미니멀한 포스터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 핀터레스트가 정의한 ‘미니멀함’을 나에게 임의로 가르쳐주고 그걸 내 취향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가까울 수 있다. 대형 회사에서 제시한 이미지와 기준 안에서 취향이 귀결되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자유의 폭을 넓어졌지만,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하고 통제하는 힘은 여전히 한 쪽에 집중되어 있다. 즉,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힘은 분산되었지만. 그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유통하고 가치를 판단하는 힘을 가진 주체들에게로 이동한 것처럼 보인다.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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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이미지는 정말 우리의 것일까?


      이 질문을 따라 이미지의 권위와 힘이 어디서 왔는지 되짚어 보면 답은 한 번도 시원하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기 힘들다. 내가 만든 이미지도 내가 보는 이미지도 온전히 나의 선택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이미지 앞에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를 의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이미지를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왜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가?

      이 이미지는 어떻게 나에게 왔는가?

      누가 이것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이미지를 만드는게 쉬워질수록 결국 창작자의 ‘스타일과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고 믿는다.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선 위에서 제기한 물음표들을 파고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계속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나에게 새기는 다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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