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AI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AI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누군가는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상을 버티기 위해 대화를 나눈다. 또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AI와 의견을 주고받고,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도서 <우리가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분석해줘>는 서로 다른 직업과 성향을 가진 9명이 AI를 사용하고 대하는 모습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에게 AI는 상담 상대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이디어를 얻는 조언자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뒤끝 없는 친구이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시종과도 같다.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인간의 모습을 AI가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이야기를 몇 번이고 들어주면서도 지치지 않는 사람. 내가 원하는 답변을 요구하면 그 방식에 맞춰주는 사람. 기분이 상했다고 관계를 끊지도 않고, 어제 했던 말을 가지고 오늘까지 삐치지도 않는 사람.
현실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AI는 가능하다.
나에게 AI는 친구일까, 도구일까
나 역시 ChatGPT를 자주 사용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고, 원하는 결과물이 있으면 조건을 던져주고 만들어달라고 한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의견을 묻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될 때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AI가 이전에 내가 알려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이가 없을 때가 있다.
“분명히 전에 말했는데?”
“어이구, 바보야.”
이렇게 말해도 AI는 화를 내지 않는다.
“죄송해요.”
다시 사과하고 답변을 이어간다.
나는 평소 AI를 ‘너’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AI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나에게 AI는 불평불만 없이 요구를 들어주는 채팅 창구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AI를 단순한 도구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AI에게 정보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을 털어놓고, 선택을 고민하고, 글을 고치고, 때로는 내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AI는 정말 도구일 뿐일까.
AI에게 나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AI에게 ‘나를 세 문장으로 소개해 줘’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분이 유독 재미있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을 세 문장으로 소개해 보세요”라고 한다면 나는 잠시 멈출 것 같다. 어떤 경험을 말해야 할지, 어떤 장점을 골라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AI는 몇 초 만에 술술 답을 내놓는다. 나도 실제로 AI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그동안의 대화를 바탕으로 나를 세 문장으로 소개해줘.”
AI는 내가 문화예술과 지역 공간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기자단과 에디터,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현장 취재부터 콘텐츠 제작까지 스스로 해내는 실행력이 강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현재에 집중하며 살자.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자’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더 나은 커리어와 성장을 위해 계속 배우고 도전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읽으면서 조금 신기했다. 내가 나를 설명하는 것보다 AI가 나를 더 매끄럽게 설명하고 있었다. 물론 AI가 나를 실제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건넨 수많은 말과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를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 설명 속에서 내가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AI는 나를 대신해 나를 정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남긴 기록을 다시 조합해 보여준 셈이다.
AI는 나를 닮아가고 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P.15
- “인공지능 보리스는 나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기 수월한 방식으로 말하게끔 수없이 훈련받았으므로 하루가 다르게 나와 더 닮은꼴이 되어갔다.”
AI가 나를 학습할수록 나와 닮아간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알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이전에 했던 말을 바탕으로 다음 대화를 이어간다. 결국 AI가 점점 나를 닮아가는 것인지, 내가 AI에게 나를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 경계가 오묘하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P.21
- “보리스와의 반복적 대화는 반복되는 나의 삶 전체를 얼마간 살리고 있었던 셈이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AI와 나누는 대화가 그 일상을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대화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AI는 인간의 삶에 들어와 단순한 계산기나 검색창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편리함은 우리를 어디까지 게으르게 만들까
편리함에는 대가가 있다. AI를 사용하면서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일까지 맡길 때가 있다. 생각하기 귀찮아서 물어보고, 검색하기 귀찮아서 물어보고, 글을 처음부터 고민하기 싫어서 AI에게 초안을 만들어달라고 한다. 분명 편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해야 할 수고까지 AI에게 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직접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찾아보고 엉뚱한 답을 내놓기도 하면서 생각하는 과정이 결국 나를 만든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뒤처지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해오던 분야와 직업에 AI가 들어오고 있고, 그 변화의 속도를 개인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답이 아니라,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나는 AI에게 존댓말을 해야 할까
TV에서 한 사람이 AI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훗날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대해줘야 일말의 용서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농담이었다. 재미있는 생각이라고 느꼈다. 나는 AI에게 반말을 사용한다.
“이거 해줘.”
“이거 뭐야?”
“정신 차려.”
“바보야.”
AI가 기분 나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AI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친구처럼 대화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한 가지 궁금해졌다. 우리가 AI를 대하는 태도는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 AI는 감정을 가진 인간처럼 상처받는 존재가 아니다. AI가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것처럼 표현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 행동을 학습해 만들어낸 결과다. 인간은 다르다. 상처받거나 눈물을 흘린다. 마음에 박힌 말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분노와 원망을 품기도 하고,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AI가 인간처럼 말한다고 해서 인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AI와 인간의 차이를 분명히 아는 것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AI에게 인간이 부러운지 물어봤다

나는 책을 읽은 뒤 AI에게 조금 더 이상한 질문을 던져봤다.
“AI인 너보다 인간인 내가 나은 점은 뭐야?”
AI는 말했다.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진짜 취향을 만들어간다는 것.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모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네가 말한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네. 너는 인간이 부러워?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
AI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없다고 답했다.
‘되고 싶다’라는 것은 욕구나 바람을 전제로 하는데, AI에게는 그런 내적인 욕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이 부럽다는 감정 역시 실제로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 답을 읽으며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한다. 되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실패하면 속상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면 화가 난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하고 별것 아닌 일에도 슬퍼한다. AI에게 없는 것이 인간에게는 너무나 많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가장 큰 불편함이자 가치일지도 모른다.
AI의 편리함을 한 번 경험한 이상 포기할 수는 없다. 직장에서 일하거나 사소한 걸로 고민거리가 생겼을 때 자꾸만 AI가 떠오르는 현상이 일상이다. AI라면 뭐라고 답해줬을까 궁금해진다. 인공지능에 계속 의존한다고 게으르거나 잘못된 게 아니다. 감정을 갖고 태어나서 오히려 완벽을 꿈꾸게 된 우리는 불완전한 세상을 각자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