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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이런 것도 사랑일까? -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리부트’ [공연]

사랑 X 같네. 하지만 X은 좋은 거야.

by 이진 에디터
2026.09.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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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혐오의 역사는 오래도록 정교하게 이어져 왔다. 인류와 언어가 탄생한 시점부터 발생한 여성 혐오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게임이자 스포츠다. 온갖 멸칭과 비하하는 언어를 만들어가며 여성을 적극적으로 혐오하는 건 주로 남성들이지만, 여성이 같은 여성을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것 또한 매우 흔하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래된 관용어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2026년 9월 16일 소극장 산울림에서 개막해 10월 4일에 막을 내리는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리부트>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존재했고, 오늘날 대한민국까지 아우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올림포스 12신들에 속한 세 여신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삶과 사랑, 상처, 권력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토론을 듣고 있으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여성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한 폭력과 혐오는 오늘날 대한민국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여신들의 토론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현대적인 의상과 무대를 배경으로 오가는 신화 이야기와 신들의 이름, 심각한 사안을 다루면서도 허를 찌르는 유머와 자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동시대성에 있다.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강남역 살인 사건을 비롯한 각종 여성 혐오 범죄 사건들과 미투(Me-too) 운동을 거쳐온 10년간 동시대 정서를 반영, 매 시즌 발전하고 진화했다. 10주년을 맞은 2026년엔 이전 시즌들엔 없었던 ‘리부트’란 단어를 제목에 붙이며 더 큰 변화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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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 입문극’이란 말로도 설명되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리부트>는 2016년 초연된 연극이다. 작품은 헤라를 연기하는 배우이자 극작가인 한송희가 집필했다. 한송희는 많은 여신 중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를 선택한 이유를 ‘가장 다른 세 여신이 누굴까를 생각하다 이들을 선택했다’라고 작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초연 후 10년이 흐르며 세 여신이 가진 욕망과 모순이 짙어졌다’라며 이번 시즌 감상 포인트를 설명했다.


      창작집단 LAS 소속의 한송희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을 두 여성의 사랑 이야기로 재해석한 <줄리엣과 줄리엣>을 집필하기도 했다. 해당 작품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와 마찬가지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고전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했단 호평 속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는 남성들을 사랑했지만 남성들 때문에 고통받기도 했다. 본래 결혼할 의사가 없었던 헤라는 제우스와 결혼하며 그의 바람기와 폭력성으로 인해 질투의 여신이 됐다. 헤라는 결혼 전엔 대지의 여신이었고, 올림포스 12신 여신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신들의 여왕이자 결혼과 가정의 여신이다. 제우스가 만나는 여자들을 괴롭히는 걸 단순히 질투심 때문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헤라의 욕망 밑바닥엔 한때는 사랑했던 남편에 대한 애증, 망가진 가정이라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신념도 함께 깔린 것이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욕망의 여신이기도 하다. 늘 사랑에 진심이고, 욕망을 적극적으로 갈구하는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와 사랑 없는 강제 결혼을 당한다. 그는 사랑했던 아레스에게 이별 후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새로운 사랑인 아도니스마저 아레스에 의해 잃게 된다. 명백한 범죄 피해자임에도 이전에 여러 남자를 자유롭게 만나온 것 때문에 자기 검열을 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피해자는 온전히 깨끗하고 무결해야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는 어느 시대에서나 유효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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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운동과 사냥에만 미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 인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연애·사랑을 거부하는 그에게도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가 있었다. 남자 형제 아폴론의 속임수와 계략에 넘어가, 자신 손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죽이게 된 아르테미스는 그날 이후 새로운 사랑을 하지 않았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숨긴 채, 날카로운 가시를 세워 또다시 상처받지 않으려 자신을 지키는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작품엔 오늘날에도 존재하는 여성 혐오 범죄(데이트 폭력, 보복 살해, 관음과 스토킹, 불법 촬영)들과 함께 여러 형태의 비열하고 이기적인 남성들도 등장한다. 외도, 폭력 등으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남성들뿐 아니라 교묘한 가스라이팅을 비롯하여 비겁한 계략, 소위 ‘정치질’로 여성의 사회적 입지와 멘탈을 흔드는 남성들은 현실에도 많다.


      극은 그럼에도 남성을 한 번쯤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성 정체성을 가진 세 여신을 등장시키며, 그들이 빠진 딜레마 또한 보여준다. 세 여신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는 삶에는 완벽한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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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구나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다. 헤라처럼 사랑과 관계가 끝난 걸 알면서도 남은 미련을 부질없이 붙잡기도 하며, 아프로디테처럼 자유롭고 거리낄 것 없는 연애를 꿈꿔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깊이 상처받으면 아르테미스처럼 마음의 문을 닫으며, 원치 않는 성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처단하고 싶단 잔인한 생각을 품어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 여신 중 누구에게도 함부로 손가락질할 수 없다. 아프로디테의 말처럼, 이 또한 사랑이다. 그건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것, 수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세상의 추한 본질과 맞서 싸우며 그럼에도 사랑하길 멈추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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