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불가능한 삶을 산 자의 기록 : 2026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로즈' [영화]

영화 <로즈> (마르쿠스 슐라인처,2026) 리뷰

by 정희정 에디터
2026.11.02 17:02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1785216601.jpg

       

       

      ROSE

      마르쿠스 슐라인처 Markus SCHLEINZER

       

      제76회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 은곰상 : 주연상 (산드라 휠러)

      심리/미스터리/서스펜스/스릴러 | 여성 | 인권/노동/사회 

      Austria/Germany | 2026 | 94min | DCP | B&W

       


      산드라 휠러에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주연상을 안긴 <로즈>는 자유를 위해 남장여자의 삶을 택한 한 인물의 비극을 그린, 기이하고 아름다운 흑백 영화다. 30년 전쟁이 끝난 17세기 독일의 개신교 마을. 버려진 농장의 상속자라 주장하는 군인 로즈가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은 여러모로 수상쩍은 이방인 로즈를 경계하고 의심하는데, 아무래도 그가 남자 행세를 하는 여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로즈의 삶은 거짓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과 다름없다. 하지만 그의 삶이 거짓이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로즈의 죄는 신을 모독한 것인가 남자를 모욕한 것인가. 로즈는 사회가 부여한 고정된 성 역할에 자신을 가둘 마음이 없다. “바지를 입은 자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얻고 싶어 여성에게 허락된 삶의 경계를 넘어선다. <로즈>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자로 살 수 없었던 한 인간의 이야기다.

       

      2026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이주현 프로그래머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ROSE.

      : 이건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짜 이름으로 남성처럼 행동하며 수많은 악행과 범죄를 저지른 토지 및 인물 사기꾼의 진실한 기록이다.

       

       


      변화는 한쪽에서만 진행되지 않는다



      30년 전쟁을 겪은 17세기 독일의 외딴 개신교 마을에 얼굴에 큰 흉터가 있는 군인이 찾아온다. 오래 방치된 농장의 상속자라며 증명 서류를 내미는 남자. 그는 이곳에서 땅을 일구며 정착하려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와 함께 축배를 들지는 않아도 그의 돈은 기꺼이 받는다. 그는 일꾼들을 고용해 집과 농장을 복구하고, 이웃의 가축을 보호하며, 사람을 공격한 곰까지 죽인다. 경계받던 이방인은 어느새 마을을 구한 신처럼 추앙받고, 규율을 넘나드는 일도 어느 정도 허용되는 자리에 선다. 그는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법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를 향한 감탄에는 남자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산드라 휠러는 그 틈새를 연기한다. 단단한 자세와 절제된 말투에서 농장주의 권위와, 오랫동안 자신을 감추고 살아온 긴장이 함께 스며 나온다.

       

      그, 로즈는 얼굴에 흉터를 남긴 탄환을 늘 목에 걸고 다니며 이따금 입에 넣는다. 탄환은 전쟁에서 살아남았다는 증거이자 로즈에게 닿았던 폭력의 형상이다. 탄환이 부딪혔을 때 변한 것은 로즈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탄환 역시 원래의 형태를 잃었다.


       

       

      변화는 큰 사건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사건에서도 변화는 일어난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거나, 벌 한 마리에 쏘이는 일로도.

       

      농장의 규모를 키우고 잉여와 이윤을 남기는 일에 소질을 보인 로즈는 개울이 흐르는 이웃 땅을 얻기 위해 그 주인의 맏딸 수잔나와 결혼한다. 여성에게 주어진 삶을 벗어나려 했던 로즈가 이제는 남편이 되어 다른 여성의 삶을 토지 거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위장이 축적을 가능하게 했다. 축적은 위장을 유지해야 할 이유를 늘린다. 지킬 것이 많아질수록 로즈는 자신이 얻은 것들에 붙들린다.



      "필요한 게 있다면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숨길 줄 알아야 한다. 욕망과 탐욕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기만 한다. 탐욕은 탐욕 그 자체를 정당화하며 목표도, 절제도, 한계도 없다."
       


      수잔나의 순결을 보존하겠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피하던 로즈는 장인의 요구에 결국 몸에 착용하는 도구를 이용해 관계를 맺는다. 변화는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수잔나의 배에 나비가 날아들었고, 수잔나는 임신을 확신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예상보다 이른 때였다.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로즈에게는 의문이 남았지만, 아이의 존재만으로 로즈의 남성성과 가정은 사회적 보증을 얻게 되니 어찌 됐든 다행인 일이었다.


      날아든 나비가 아이를 가져다주었다면, 벌침 하나로 로즈가 지켜온 것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총탄도 견뎌낸 로즈가 벌에 쏘여 쓰러진다. 그를 돌보던 수잔나와 하녀에게 로즈가 숨겨온 몸의 비밀이 드러난다. 몸을 살리려 옷을 벗겼는데, 그 몸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될 위험이 닥친다.


      수잔나도 로즈의 비밀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로즈를 설명하려면 아이에 대한 설명이 동시에 필요했다. 약점을 감싸는 것은 결국 다른 약점이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진다. 결혼을 결정하는 거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수잔나에게 앞으로의 생활을 결정할 힘이 생겼다. 로즈는 자신의 생을 모두 털어놓으며 이상하게도 기분 좋은 해방감을 맛본다. 누군가의 권력으로 성립했던 기울어진 관계가 벌침 하나로 수평이 되었다.

       

      로즈는 수잔나에게 제 일생을 이야기하면서도 본명은 비밀로 남겨두었다. 수잔나가 실수로 그 이름을 불러버릴지 모른다는 한 줌의 두려움이 만든 침묵이었다. 로즈에게 자유란 그런 것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나서는 얻을 수 없었고, 바지를 입으면 얻을 수 있었지만 다리만이 아니라 자신을 그 안에 전부 감추어야 지켜낼 수 있는 것. 한 번 입은 바지는 벗기도 쉽지 않았다. 벗는 일에는 목숨이 걸려 있었다. 타인에 의해 벗겨지는 일도, 자신이 그 자유를 포기하는 일도 그녀에게는 모두 죽음과 같았다.

       

       

       

      변화는 입에서 열리고 죽음으로 닫힌다


       

      로즈의 몸을 본 사람은 수잔나만이 아니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존재하고, 존재하는 순간 현실이 된다. 하녀가 본 것은 말이 되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건너가고, 입을 거칠 때마다 진실에 가까워져 간다.



      내가 일군 일자리와 부, 당신들에게 돌아간 이익까지 모두 거짓인가.
       

      지금 딛고 선 이 땅은, 당신의 왼쪽 팔은 진짜인가.

       

       

      공동체가 다시 증명을 요구하자 로즈는 목소리를 높여 되묻는다. 질문은 정확하다. 땅은 그대로 있고, 그 땅에서 난 이익은 이미 마을의 몫으로 나뉘었으니 달라진 것은 몸에 관한 진술 하나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진술에 집착한다. 그 집요함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처음부터 로즈와 축배를 든 적이 없는 이들이니, 믿음을 배신당한 분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방인이 땅을 넓히고 사람을 부리며 자신들 위에 서는 동안, 그들은 그 아래서 제 몫을 받아 왔다. 그런 이를 끌어내릴 명분이 마침내 손에 들어왔다. 여자의 자리가 묻지 않아도 정해져 있는 곳에서 여자가 공동체 위에 군림하고 전체를 속였다는,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운 명분이었다.

       

      로즈도, 카메라도 몸을 확인하려는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에도 그녀의 맨몸은 누구의 눈앞에도 허락되지 않았다. 로즈의 삶을 지켜보았다는 이유로 관객에게 그 몸까지 들춰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말은 변명으로 흐려지고, 어떤 말은 판결이 되어 낙인으로 남는다.

       

      대답하는 자의 말에는 증거를 요구하면서, 질문하는 자의 입은 어째서 의심하지 않는가.

       

      제 몸이 명하는 삶을 거슬렀고, 멋대로 자신을 창조했으며, 현실과 필연과 법에 저항했다는 죄목들이 그녀를 에워싼다. 공동체는 그녀가 불가능한 삶을 좇았다고 판결한다. 살아 있는 반례를 앞에 두고도 법정은 불가능을 말한다. 그 말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로즈가 사라져야 한다.

       

      로즈는 남자가 되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바지를 입으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었기에 입었을 뿐이다. 그런 삶을 누가 허락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신이 허락했다고 답한다.


      신의 존재는 모호하지만 신을 대신해 말하는 사람들의 확신은 명료하다. 여성으로 태어나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을 배신한 일이라면, 그 판단이 신의 뜻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신은 이 법정에서 모습을 드러내거나 직접 말한 적이 없다. 하녀의 말이 보지 못한 몸에 대한 확신을 만들었듯, 신을 대신한 말은 그 몸을 처벌할 권한까지 만들어낸다. 로즈에게는 자신을 허락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누가 허락했는지는 질문받지 않는다.


      *

       

      '정화'

      죽어야 할 사람을 정하고, 죽이는 자의 손에 묻을 피까지 미리 씻어내는 단어였다.

       

      수잔나는 익사형을, 로즈는 참수형을 선고받는다. 그들의 죽음에는 '정화'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두 사람은 무엇을 더럽혔고, 그 죽음으로 세상은 무엇을 씻어내려 하는가.


      재판 과정에서 로즈가 네 남자에게 성폭력을 당해 임신한 사실이 드러나고, 처형은 출산 이후로 미뤄진다. 자기 몸으로 살아갈 방식을 스스로 정한 사람은 죽이고, 강제로 잉태된 아이의 삶은 보존한다. 로즈는 그 기다림 동안 자신의 생애를 글로 기록한다. 타인의 손에서 불가능했던 삶으로 분류되기 전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제 손으로 적어두기 위해. 로즈는 처형의 예행연습도 요구한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흘러갈지 알기라도 원했던 걸까. 그러나 죽음마저 연습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칼질이 지나고서야 로즈는 죽는다.

       

      이제 우리의 앞에는 그녀를 사기꾼으로 적은 기록과 그녀가 스스로 적은 기록이 있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온 게 아니라 스스로를 상상하고 만들어낸 것뿐이다. 그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나는 할 만큼 했다."



      ※ 이 글은 씨네랩 기자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정희정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Opinion] 진실의 구조: 추락의 해부(2023) [영화]
      2. 02 [Opinion] NCT WISH: 모서리 가득한 세상에 다정함의 화살을 쏘아 올리다 [음악]
      3. 03 [Opinion]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되는 죽음 [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