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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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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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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추락사로 한순간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유명 작가 ‘산드라’.

유일한 목격자는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과 안내견뿐.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우발적 자살 혹은 의도된 살인?

사건의 전말을 해부해 가는 제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Synopsis

 

 

“저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어요.”

“그 문제가 아니에요. (…)

뭐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제는 남들의 시선으로 자신을 볼 줄 알아야 해요.”

 

눈 덮인 산장, 남편 사무엘이 추락해 사망한다. 자살과 타살, 그 어느 쪽으로도 확언할 수 없는 여지만을 남겨둔 채 죽은 자는 깊은 침묵에 잠긴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은 저마다의 입술을 떼어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심증과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말이 되는 물증들이 교차하는 법정. 사람들은 모여 앉아 죽음을 추측하고 남겨진 자들을 신문한다.

 

어느덧 진실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졌다. 진실을 알려줄 유일한 이는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자들이 더 ‘그럴듯한 이야기’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곧 사실로 굳어지는 시간이 이어진다.

 

 

 

사건의 진실보다 중요한 자극적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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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망 원인은 중요하지 않고, 유명 작가가 남편을 죽였다는 그 설정 자체가 어느 교수의 자살보단 훨씬 더 흥미진진하니까요."


법정은 진실을 되찾는 공간이 아닌, 타인의 삶을 소비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한 무대에 가까워진다. 추락의 원인은 흐려지고, 대신 아내 산드라의 성격과 욕망, 부부의 숨겨진 갈등만이 구경거리처럼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누군가는 그녀에게서 살인의 가능성을, 누군가는 남편에게서 절망의 흔적을 찾는다. 실체는 드러나지 않는데, 사람들의 짐작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검사는 산드라를 향해 집요하게 동기를 캐묻는다. 남편의 우울, 아내의 성공, 양성애, 과거의 외도, 아들의 사고, 미완의 원고, 집을 찾았던 인터뷰이까지. 서로 다른 결을 띠고 있던 정황들이 어느새 한 방향으로 묶인다. 정신과 의사는 남편의 이야기에 기대어 산드라라는 사람을 함부로 정의하고, 전문가들은 핏자국의 형태와 추락의 각도를 두고 기어이 타살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법정 안의 사람들은 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각자의 망막과 고막으로 걸러내며, 자신이 먼저 세운 가설에 맞춰 사건을 정리해 간다. 보이지 않는 틈은 불안과 혼란을 낳고, 그것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눈앞의 상황을 설명해 줄 이유를 붙잡도록 하며 진실을 어떻게든 조립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러한 구조를 연출로도 보여준다. 결정적 순간은 화면 밖에 두고, 녹음된 말다툼과 눈 위의 흔적, 엇갈리는 증언을 더듬으며 판단하게 만든다. 보는 일도, 듣는 일도 완전하지 않다. 그 틈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고 있었을까, 보지 못한 장면의 빈자리를 저마다의 편견과 상상으로 채우고 있을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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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대한 공백 앞에서 가장 위태롭게 흔들리는 존재는 아들 다니엘이다. 시각적 제약으로 인해 자신이 감각한 것들조차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던 다니엘은 수많은 어른들의 날 선 목소리 속에서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간다. 부모의 불화와 외도 등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들이 오가는 법정에서, 혼란에 빠진 소년에게 법원 조사관 마르지는 말한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해서 도저히 안 되겠을 때는, 그냥 결정할 수밖에 없어. 한쪽이 아닌 다른 쪽을 택해야 의심을 떨쳐낼 수 있으니까.”

 

"믿음을 지어내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렇지."

 

"그러면 저는 지금 확신이 없으니 확실한 척을 해야 하나요?"

 

"그건 아냐. 나는 결정하라고 했어. 그 둘은 다른 거야."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면 정황을 봐야 해요. 이 재판처럼요. 아무리 찾아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 ‘어떻게’가 아닌 ‘왜’에 의문을 품어야죠.”


이후 다니엘은 결단한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마음의 무게중심을 한쪽으로 옮기는 일은, 단지 확실한 척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을 '진실을 찾았다'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결정'에 불과하다. 내가 믿고자 하는 사람의 편으로, 내가 모은 정보의 조각들을 기울이는 행위인 것이다.

 

다니엘의 이 선택은 판결을 넘어선 하나의 윤리적 선언이 된다. 사랑과 상실, 두려움과 책임 사이에서 소년이 간신히 내려놓은 결심이다. 믿음은 섣부른 판단을 미뤄두고, 거꾸로 판단은 종종 믿음인 척하며 스스로를 변명한다. <추락의 해부>는 이 위태로운 경계 위에서 믿음과 확신, 판단과 진실이라는 단어들이 어떻게 서로의 자리를 뺏고, 침범하고, 엮이는지를 파고든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판단하지 않아요."



믿음 앞에 선 사람은 판단과 멀어지고, 확신은 필연적으로 오류를 동반하며 진실을 교란한다. 인간은 그 혼란 속에서 안정을 찾고자 하며, 결국 자신이 정착하기로 '결정'한 믿음의 자리가 곧 그 사람의 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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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재판을 통해 끊임없이 밀려나는 진짜 진실과, 새롭게 지어지는 진실의 탈을 쓴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인간의 취약성을 목도한다.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이 자신의 삶을 은밀하게 녹여내는 '작가'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검사는 그녀의 소설에서 현실의 동기를 억지로 읽어내고, 그녀가 쓴 문장을 범행의 예고편처럼 다룬다. 그 순간 소설과 진술, 고백과 증거의 경계는 무참히 뒤엉킨다. 하지만 영화는 그 소설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섞여 있는지, 검사의 추측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끝내 알려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우리는 진실 속에 산다고 믿지만, 세계를 인식하는 뇌는 결국 우리 자신의 두개골 안에 갇혀 있다. 우리는 철저히 우리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정의 내린다. 그 과정에서 진실은 종종 잘리고, 비틀리며,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것을 감히 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겪은 바를 털어놓는 순간, 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내가 내뱉은 말은 곧 나의 진실이 된다. 그것이 활자로 묶이면 소설이 되고, 법정에서 발음되면 진술이자 증거가 된다.


진실은 누구에게도 온전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믿음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심이 되는 이 굴곡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저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악착같이 삶을 이어가며 기어코 이야기를 해내야만 한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그 서늘하고도 적나라한 삶의 속성을 우리의 눈앞에 떨어뜨려 놓았다.

 

진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야기가 진실의 얼굴로 서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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