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Review] 내가 사랑하는 얼굴을 한 괴물 - 영화 레위기

사랑이 곧 공포가 되는 역설

by 권수현 에디터
2026.10.26 14:00
이 브라우저에서 최근 읽은 글입니다.
      이전에 읽던 글입니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낯선 얼굴로 찾아오지 않는다.

       

      <레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비틀린 신앙이 지배하는 외딴 마을. 금기를 어긴 나임과 라이언은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구원 치유 의식'을 치르고, 그날 이후 두 소년의 억눌린 욕망과 두려움은 서로의 얼굴을 한 괴물로 나타난다. 호주 신예 아드리안 키아렐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졌으며,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았다. 88분간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러한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포스터.jpg

       

       

       

      죄는 몸에 새겨지고, 벌은 몸으로 온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악령이 두 소년을 벌하는 방식이었다. 구원자는 라이터의 불을 매개로 악령을 불러들였지만, 악령은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벌을 내렸다. 라이언은 목사의 아들 헌터와 입을 맞추며 순간의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인물로, 칠죄종에 빗대자면 '색욕'에 해당한다. 반면 나임은 그 장면을 지켜보다 질투에 사로잡혀 어른들에게 두 사람의 일을 알린다. 나임에게는 '질투'라는 죄가 따라붙는다.

       

      그래서일까. 라이언을 덮친 악령은 허리와 목처럼 욕망과 맞닿은 신체 부위를 할퀴고, 나임에게 붙은 악령은 고자질의 도구가 된 혀와 목을 노린다. 죄가 머문 자리에 벌이 찾아오는 셈이다. 이러한 설정은 인간의 죄와 율법, 형벌을 다루는 성경 레위기의 내용과 영화의 제목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악령들이 물건을 집어 던지며 소년들을 공격하는 장면 역시 동성 간 성행위를 사형으로 다스렸던 레위기의 율법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에서 빌려온 동물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동물 이미지 역시 우연은 아니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성경과 레위기에서 많은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밝히며, 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염소와 뱀을 직접 언급했다. 또한 영화의 전반부를 질투와 배신을 다룬 오래된 우화처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각 동물의 의미를 감독이 공식적으로 풀이한 것은 아니기에, 성경 속 맥락과 평단 및 관객의 해석을 바탕으로 그 상징을 읽어보았다.

       

      먼저 염소다. 레위기 16장의 속죄일 의식에서 두 마리 염소 중 한 마리는 백성의 죄를 짊어진 채 광야로 내쫓긴다. 레위기 17장 7절은 '염소 귀신'에게 제사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한편 염소는 서양의 전통적인 도상에서 색욕의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나는 공동체의 죄를 아이들의 몸에 씌운 뒤 마을 밖으로 몰아내려는 '치유 의식'에서 속죄 염소의 의식을 떠올렸다. 라이언을 덮친 악령 역시 색욕을 상징하는 염소의 이미지와 연결해 읽을 수 있었다.

       

      다음은 뱀과 개구리다. 뱀은 창세기에서 유혹과 죄를 상징하는 존재다. 영화 초반,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 장면을 마주한 나임은 두려워하지만 라이언은 웃으며 지켜본다. 짧은 장면이지만 욕망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가 선명하게 대비된다. 나아가 이 장면은 훗날 악령이 나임의 입과 목을 노리는 순간을 예고하는 복선으로도 읽힌다.

       

      개구리 역시 성경에서 불길한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집트에 내린 재앙으로 등장하며, 요한계시록 16장 13절에서는 더러운 영을 연상시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레위기가 개구리를 직접 '더러운 동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이러한 성경적 연상을 빌려 개구리를 부정함과 낙인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활용한 듯하다. 라이언이 끼고 있던 뱀 모양 반지를 나임이 끼게 되는 장면도 눈여겨볼 만하다. 라이언의 욕망을 두려워하고 밀어내던 나임이 결국 그 욕망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신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제목의 의미를 직접 설명하는 장면을 넣으려다가 설교조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덜어냈다고 한다. 모든 의미를 말로 풀어놓는 대신 이미지로 남겨둔 덕분에, 관객은 흩어진 힌트를 하나씩 주워 맞추며 영화의 상징을 읽어가는 재미를 얻는다.

       

       

      03.jpg

       

       

       

      사랑이 곧 공포가 되는 역설

       

      악령은 단 한 번도 전형적인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뿐이다. 그런데도 관객은 그 얼굴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같은 얼굴에서 애틋함을 느끼며 두 소년의 사랑을 응원하게 된다.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수 없게 된 소년들이 서로를 의심하는 과정은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 스크린 속 인물들이 겪는 혼란이 어느새 관객 자신의 감정이 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취약한 지점일 수 있다는 것.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이라는 장치로 이 역설을 완성한다. 서로를 밀어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선택마저 결국 상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공포는 어딘가 슬프기까지 하다.

       

       

       

      신앙이라는 이름의 폭력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마을이라는 배경도 영화의 설득력을 더한다. 동성애가 어째서 이토록 악령과 연결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영화는 신앙에 사로잡힌 가족과 종교 하나로 굴러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내세워 그 기괴한 현실을 설명한다. 특히 나임의 엄마 알린을 연기한 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사랑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할 때 얼마나 서늘한 폭력과 통제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종교가 개입하는 순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일들은 일어난다.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욕망을 죄로 규정하고, 그 죄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으로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 말이다. 이 영화가 끝내 응시하는 것은 퀴어가 아니라, 그들을 괴물로 만든 시선이다.

       

       

      02.jpg

       

       


      끝내 서로를 믿는다는 것

       

      결말에서 나임은 자신의 악령이 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공장으로 악령을 유인해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나는 그 순간 악령이 마침내 죽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어폰을 나눠 낀 진짜 두 사람이 버스에 몸을 누인 순간, 나임의 눈에 차창 밖에 서 있는 라이언의 모습이 다시 비친다.

       

      감독은 호러 영화에서 마지막 순간 괴물이 다시 등장하는 익숙한 관습을 빌려, 소년들이 겪은 상처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 환영은 악령이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장애물이 사라진 뒤에도 상처는 남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악령을 불태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가족과 사회의 시선처럼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나임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눈을 감는다. 어떤 불길이 닥치더라도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선택처럼 보였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사랑을 갉아먹는다면, 끝까지 서로를 믿는 것만이 그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영화는 이 메시지를 퀴어 호러라는 장르 안에서 선명하게 완성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한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그 사람이 진짜라고 끝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괴물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는 불길이라면, 나는 저들처럼 기꺼이 그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권수현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Review] 연재 20주년이 되어도 여전히 사랑받는 만화, 전시로 돌아오다 - 강철의 연금술사전
      2. 02 [Review] 다정함이 다 이겨 - 화이트 버드
      3. 03 [Review] 앤서니 브라운 展 -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책이 되다 [전시]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