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머문 5일 동안 날씨가 정말 좋았다.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바닐라 라테를 먹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해가 기울어가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고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 누워 곯아떨어져 보니 날씨 좋은 뉴욕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무사히 해내서 다행이지 싶다. 운이 좋다고는 생각했지만, 날씨 요정 타이틀에 약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리 놀랍진 않았다.
완벽한 날씨를 즐겼으니 마지막 날에는 비가 왔으면 했다. 흐린 날씨의 뉴욕이 낭만의 정수라고 생각했달까. 내내 날씨가 선선했으니 하루 정도는 해가 잠시 쉬러 가고 안개와 구름을 분간하기 어려운 날씨면 더할 나위 없을 거로 생각하던 와중, 일기예보에 비 표시가 떠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빈티지로 장만한 부츠를 신으면 딱 맞는 아웃핏을 생각해 놓았지만 벌써 부츠를 상하게 할 순 없어서 챙겨온 운동화를 신고 거추장스러운 가방 따위는 챙기지 않고 바지 주머니 곳곳에 물건을 정신없이 넣은 채로 우산 없이 맨몸으로 길을 나섰다. 우산까지 안 챙긴 건 무슨 오버인가 싶겠지만 이건 실제로 우산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 상황마저도 맘에 들었다.
맨해튼에서 지하철을 타고 브루클린에 내리니 출발할 때보다 비가 무겁게 내렸다. 같이 동행한 친구와 추구하는 낭만의 결이 비슷했기에 우리 사이에 비를 맞아도 괜찮으냐는 질문은 굳이 필요 없었다. 우리에겐 낭만이라고 칭해야 할 안건도 아니었지만, 일부러 사랑스러운 짓을 도모하는 게 낭만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긴 하다.
역에서 다리 밑의 플리마켓까지 걸어가기에 꽤 거리가 됐다. 비를 맞으며 13분 동안 걷는데 웃음이 피식피식 났다. ‘브루클린에서 비 맞으며 플리마켓에 가기’ 이 모든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는 영화나 책에서나 본 것들이었다. 뉴욕을 동경하던 어린 내가 혹 이런 것까지 꿈꿨을까 싶어서, 그랬다면 충분히 이뤄준 것 같아서 새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좋은 것과 별개로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불안함 정도는 안고 플리마켓에 도착했다. 전날에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한 건데 비가 온 탓에 확실히 물건이 적긴 했다. 쇼핑을 뒤로 하고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에 구글맵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를 찾아갔다. 들어서자마자 오늘이 뉴욕에 머문 기간 중에 최고의 날이 될 거란 걸 확신했다.

친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나는 핫초코를 사 들고 딱 하나 남아있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머리에 적셔진 빗물을 이리저리 털고 따뜻한 음료를 두 손으로 감싸 쥐니 내가 사랑하는 순간이 이거였지 싶었다. 전날까지는 관광객스러운 곳들을 방문하기 바빴다. 계획해 둔 일정을 모두 끝마치고 겨우 남아있던 일요일의 3시간 동안 가장 뉴요커다운 행동을 했다. 물론 내가 쌓아온 기준의 뉴요커지만.
추위로 떨리는 몸을 조금 진정시키고 나니 주변이 보였다. 조도가 낮은 카페 안의 조명이 작업하는 개개인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우정을 확인하는 눈빛을 감싸안고 있었다. 브루클린의 한 카페에서 그런 것들에 둘러싸여 있자니 누군가에게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내게는 딸깍하면 평생 상영될 영화 같은 기억으로 저장됐다.
비 오는 날의 뉴욕이 더욱 낭만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건 뉴욕이기 때문도 있지만 낭만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우리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쭉 그래왔다. 낭만을 즐기기에 생각이 먼저가 아니었다. 순간을 헛되게 여기지 않았으며 진심이 아니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NO”는 아주 드문 일이었으며 낭만적인 순간도 이미 행동하는 와중에 깨닫곤 했다.
낭만이라는 단어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우리가 좋다. 낭만을 더 낭만스럽게 만드는 우리가 좋다. 우리가 느끼는 낭만의 정의를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한국어뿐임도 괜히 자랑스럽다.
하루가 끝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결국 19달러를 주고 우산을 구매했다. 구매한 우산은 그 하루만으로도 본전 뽑을 정도로 야무지게 사용했다. 우산이 없는 이후 일정은 솔직히 상상하기도 싫다. 그러니 낭만이 아름답게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데에는 어느 정도 맺고 끊음이 필요하다. 비효율적인 행동에 약간의 효율을 더해주면 낭만도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지 않나. 그렇게 합리화하고는 매일 낭만 속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