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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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줄거리를 포함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자기 전 일기를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

- 오늘 먹은 음식은 일주일동안은 못 먹는다.

- 책을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목차다.

- 최근에는 그리워하는 대상이 딱히 없다.

- 기상할 때 요가 자세 중 바나나 자세를 하면 개운하다.

 

 

이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나에 대한 진실 4개와 거짓 1개를 늘어놓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5문장 쓰는데 시간과 노력의 품이 꽤 들었다. 어떤 건 너무 사실 같고 어떤 건 너무 거짓 같았다. 어떤 건 나를 너무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 같고 어떤 건 너무 나 같지 않아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혹, 자기소개 시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사실 5개를 먼저 나열한 뒤 거짓을 약간 보태는 방법으로 해보길 추천한다. 나만의 비밀을 좀 더 은밀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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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임은 김애란 작가의 장편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이다. 새 학기 때 반 아이들 전체를 대상으로 유쾌한 호응을 이끌어 낸 이 게임을 새로운 전학생 ‘채운’이 오면서 담임 선생님은 다시 진행한다. 채운은 진실 혹은 거짓에 해당하는 내용을 하나둘씩 말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순간 문장 속 공기의 흐름은 바뀌고 자기소개를 하는 이는 채운이 아닌 같은 반 학생 ‘소리’가 된다. 곧이어 소리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나열되고 “나는 곧 죽을 사람을 알아본다.”라는 소리의 말 뒤에 분위기는 무겁게 고요해진다.


또 다른 등장인물 ‘지우’ 또한 ‘채운’, ‘소리’와 같은 반 학생이다. 소설 시작 부분에서 친구가 아니었던 이들은 어느 순간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각자 본인의 삶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된다. 저마다의 고통과 아픔을 짊어지고 있던 그들이 현실에 잡아먹히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마주하려 노력하는 것에 서로가 꽁꽁 숨기고 감춰왔던 비밀이 큰 힘으로 작용한다.


비밀은 발설되는 순간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는 비밀이라 칭한 비밀들이 발설되어도 더이상 비밀이 아니게 느껴지지 않았다. 비밀은 여전히 비밀이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외로운 비밀이 아닌 은밀한 비밀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우와 소리의 비밀 만남


 

지우는 어머니를 여읜 채 어머니 애인과 함께 살며 도마뱀 ‘용식’을 키우고 있다. 키운다기보다는 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이 낫겠다. 평소 카페에 단편 만화 [베리 베리 내 처지]와 [내가 본 것], 용식의 성장 과정을 다룬 [용식 일기] 등을 비밀리에 연재하는 지우를 몇몇 단서로 같은반 학우 ‘소리’가 알게 된다. 소리는 본인 어머니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초대받지 않은 지우 어머니의 조문을 찾아뵙고 지우의 만화 연재 비밀에 대해 알고 있음을 전한다. 지우는 본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용식’을 소리에게 맡기고 소리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혼자 생활하면서 생기는 외로움을 용식과 소리를 통해 위로받는다. 소리 또한 대신 용식을 키우고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며 항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상처를 오롯이 들여다본다.


비밀을 공유하면서 생기는 또 다른 비밀을 지키고 함몰하는 과정에서 지우와 소리는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한다. 어머니 죽음의 사인을 결코 자살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생각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어머니를 미워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지우는 어느 정도 세상에 반항심을 품고 회피해버린다. 그리곤 혼자 힘으로 살아내 보려 멀리 떨어져 생활하다가 경험하는 모든 일의 끝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시점, 다가온 용식의 죽음만큼은 의연하게 대처한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하지만 실제의 우리는 그냥 돌아갈 뿐이라고, 그러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의 나침반 속 바늘이 미지의 자성을 향해 약하게 떨릴 때가 있는 것 같다고. 그런데 그것도 성장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우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상대의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 상대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예상하는 고통스러운 능력을 가졌다. 그 능력은 소리 어머니 죽음도 피해갈 수 없었다. 긴 항암 치료를 받고 있었던 어머니의 손을 매일같이 잡으며 눈앞이 흐려지지 않음에 안도하던 소리는 어느 날 어머니의 손을 잡아도 눈앞이 선명해지지 않는 날을 맞닥뜨린다. 지우의 부탁으로 용식을 키우다가 용식의 숨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시점에 어머니 무덤에 찾아가게 되는데 이때 외면했던 속마음을 무덤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어머니께 용서를 구한다.


“그런데 엄마, 나 엄마가 흐릿하게 보이기를 원한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건 정말 한두 번뿐이었어. 우리가 함께한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적었어. 그즈음 내가 많이 지쳤었나봐... 그렇다 해도,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잠시나마 그런 마음을 품어서 미안해. 하지만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나길 바랐던 건 아니야.”

 

소리는 숨을 가누며 멀리 하늘을 봤다. 그 순간 소리는 엄마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괜찮다’고, ‘누군가를 잡은 손과 놓친 손이 같을 수 있다’고.


 


채운과 소리의 비밀 만남


 

손을 잡은 상대의 죽음을 인지하는 능력을 가진 소리는 어느 날 학교 운동장에서 한 강아지와 마주친다. 오른쪽 앞발에 피를 흘리고 있기에 그 앞발을 잡았는데 그 순간 소리의 눈앞이 뿌얘졌다. 흐릿해졌다는 것은 상대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뜻하므로 소리는 눈물이 차올랐다. 그 강아지 ‘뭉치’의 주인이 바로 채운이었다. 소리의 연락에 뭉치를 찾으러 온 채운은 눈물을 흘리며 뭉치와 앞으로 최대한 많이 놀아주라고 말하는 소리의 모습을 이상스레 여긴다. 얼마 뒤 뭉치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채운은 소리의 마지막 말이 계속 신경 쓰인다. 소리가 뭉치의 죽음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한 채운은 소리를 만나 소리가 가진 능력의 비밀을 알게된다. 그 후 채운은 소리에게 한 부탁을 하는데, 이는 입원해있는 채운의 아버지가 회복할 가능성이 있는지 손을 잡아 미래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소리는 채운이 가진 비밀을 알게 되고 채운을 위해서 거짓말을 함으로써 또 다른 비밀을 만들어낸다. 결론적으로 채운의 아버지는 얼마 못 가서 숨을 거둔다.


비밀도 엇갈릴 수 있다. 채운은 아버지가 회복하지 않길 바랐지만 소리는 채운이 큰 상심을 겪을까 봐 손을 잡은 결과를 거짓말한다. 아버지는 곧 회복하실거라고. 그 말에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두려웠던 채운은 좌절한다. 비밀은 지켜져서 비밀이지만 지켜지는 비밀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밝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비밀도 있다. 아니면 결코 밝혀지지 않아서 비밀이 아닌 다른 형태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여기서 채운과 소리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채운의 내밀한 비밀까지는 알지 못하는 소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채운을 위해 거짓말하는 것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혀져도 되는 비밀이나 타이밍 같은 걸 제때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우와 채운의 비밀 만남


 

채운은 뭉치를 찾으러 간 운동장에서 소리를 만나고, 울고 있는 소리에 당황한다. 당시 소리는 뭉치의 죽음을 본 뒤였지만 채운에게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기에 보고 있던 만화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만화가 얼마나 슬프길래, 라고 생각했던 채운은 소리가 보고 있던 만화를 보게 되고 이 만화의 스토리가 본인의 삶과 무서울 정도로 닮아있음에 놀란다. 마치 누가 채운의 삶을 관찰하고 쓴 것처럼, 나아가 알려지면 안되는 사실까지 실제로 작가가 알고 만화에 그렸을까 봐 숨죽이고 스크롤을 내린다. 이 만화의 작가가 같은 반 지우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우선 만화의 결말까지 나오기를 기다린다. 채운의 아버지가 입원하고 어머니가 교도소에 간 그 사건의 진실을 혹 지우가 알고 있을까 봐 떨면서. 실제로 지우가 쓴 내용 속 인물에는 채운과 지우 본인이 모티프가 된 것이 맞았고, 지우는 채운 가족과 본인 집안의 사정과 비교하며 느낀 것들을 토대로 만화를 전개했다. 만화의 결말까지 보고 난 후 채운은 뜻밖의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비밀을 지켜본 이가 있을까 두려워했던 그 사건의 밤, 지우가 채운을 아주 부러워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비밀을 품고 있는 자들끼리 만나면, 오히려 서로의 비밀은 잘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가장 크게 느껴지고 그 큰 비밀을 애써서 감추려 바쁘기 때문이다. 내 비밀이 너무 압도적인 탓에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든 우리는 그 표정을 왜곡한다. 이 사람이 뭔가를 아는구나, 알고 저런 표정을 짓는구나. 정작 상대는 되려 자신의 비밀을 신경 쓰기 바빠 무의식 중에 내는 표정인데도. 그렇기에 (물론 어렵겠지만) 한 번쯤은 비밀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용기가 필요하다. 너무나도 주관적인 게 비밀이라 ‘비밀’과 ‘객관’을 한 문장에 엮어놓으려니 아주 어색하지만, ‘내 비밀’이 ‘내 오해’ 때문에 ‘나’를 삼키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비밀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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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채운, 소리 머리 위로 비밀이라는 무거운 돌덩이가 가볍게 떨어진다. 향하는 방향도 끼칠 영향도 모른 채 이리저리 마구 떨어지는 돌덩이들. 받아내는 이들은 세상 아주 연약한 이들이다. 하지만 속은 질기고 엉긴 뿌리가 자리잡혀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한창 풍족한 물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날 나이에 묵직하고 건조한 비밀들을 짊어지는 이들의 삶은 너무나도 가혹하지만, 그 안에서 용케 제 몫의 새싹을 틔워 내려 아등바등하는 게 안쓰러운 기특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혼자서는 말고, 비밀이 비밀을 살리고 서로 쪼르륵이나마 물을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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