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화는 언제나 맥락과 역사를 수반한다. 당장 어제 그린 초등학생의 그림일기마저 기록된 직후에는 과거를 표현한 역사적 사료가 된다. 또한, 기분 좋게 봄 소풍을 간 날의 일기와 숙제를 하지 않아 꾸지람을 들은 날의 일기는 각기 다른 모양새로 그려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림일기를 펼쳐보는 날이 온다면, 날짜별로 각기 다른 기분이 재생될 것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려진 기록마저 시간적 맥락을 더하면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그림으로 변모한다.
나아가 그 그림이 세계사에 기록될 만큼의 강렬한 사건이나 인류가 공유하는 기억을 건드린다면 더욱 강력한 효과를 보일 것이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 경험이 있는가? 조금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섬찟한 느낌이 들거나 마치 그 긴박한 상황에 놓인 듯한 감상을 느낀 적이 있는가? 미술관의 그림은 아니더라도 최근의 이슈들을 한 컷으로 절묘하게 그려낸 만평이나,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급박하게 찍힌 사진을 본다면 유사한 긴장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해당 도서는 이 점에 천착하여 세계사의 극적인 국면들을 그려낸 작품들을 살아 숨쉬는 역사 서술과 함께 제시한다. 특히, 구전설화를 듣는 듯한 스토리텔링 방식이 이 효과를 극대화한다.
차례를 보면 선사시대-고대-중세-근대 이행기-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역사 흐름과 함께 중요한 그림들을 배치해 두었다. 그중 이목을 끈 것은 “11. 임진왜란을 찾은 ‘검은 귀신’”이라는 대목이다.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이라는 부제가 붙긴 했지만, 한국인 독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임진왜란이라는 사건을 가져온 점이 인상깊었다. 미술사에 대한 서술이 주로 서양사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의의가 있다.
역사적인 그림을 가장 역사적으로 체험하는 법
맨 처음에 수록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아주 ‘역사적인’ 그림이다. 인류 회화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14,0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다.
물론 그 시간이 방대한 건 알겠지만, 마치 더미의 역설처럼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 그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도리어 해당 작품의 역사성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이 그림을 동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스페인의 변호사 겸 고고학자인 사우투올라와 그의 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뿐만 아니라 사우투올라의 발견 역시 역사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발견인 나머지 그는 당시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누명까지 쓰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탄소 연대측정법으로 정확한 시기를 알게 되고, 그에게 사죄하려 했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뒤라 딸이 대신 사과를 받게 되었다는 후일담은 굉장한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그가 느꼈던 짜릿한 발견의 순간과 감동은 여전히 전해지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극적인 이야기들
위험한 그림들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상당수의 그림이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중 특히나 내 이목을 잡아 끈 두 가지의 사건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이반 4세와 그의 아들>이다. 둘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마주한 주인공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소크라테스는 별난 인물이었다. “나는 아테네를 위해 신이 보낸 등에였다.”라는 말처럼 끊임없는 질문으로 사람들에게 이성과 반성능력의 필요성을 일깨웠다. 이런 그는 그를 따르는 세력이 많다는 이유로 눈엣가시가 되어 고소를 당하고, 결국 투표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사형 선고와 독이 든 잔을 받아 든 순간까지도 그의 떳떳한 자세는 유지되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정의의 가치가 육신의 생존보다 우위에 있음을 몸소 보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수록된 장 프랑수아 피에르 페롱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도 그의 굳건한 믿음이 단호한 몸짓으로 잘 구현되어 있다.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어떠한 숭고함까지도 느껴지는 모습이다.
한편, <이반 4세와 그의 아들>을 보면, 이반 4세의 두려움과 공포가 아주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앞서 본 소크라테스의 초연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광기와 이성의 치명적인 속도 차이다. 아버지의 망상에 지친 아들이 던진 저주의 말은 이반 4세의 광기를 폭발시켰고, 이성은 그 폭주의 속도를 끝내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그림 속에 남은 건 광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이성의 자각이다. 거기서 온 처절한 절망감은 감상자들에게도 공유되는 듯하다.
이야기와 함께하는 기억들
이야기를 둘러싼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가물가물한 세계사 지식도, 언뜻 비슷해 보이는 미술관의 그림들도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드라마와 함께한다면 지속되는 기억이 될 수 있다.
만일 세계사와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그 호기심이 짧은 감상으로만 남지 않도록 『위험한 그림들』의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