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중 몇 가지를 골라내어 총 5개의 문장을 만든다. 중요한 건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어야 하며, 상대방은 그중 무엇이 거짓말일지 나름의 근거를 들어 참과 거짓을 가름해내야 한다.
상기한 부분은 책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게임의 규칙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과정 자체가 발표자에 대한 괜찮은 자기소개가 됐다.” 그리고 이야기는 주인공인 지우, 소리, 채운이 자기소개 시간에 해당 게임을 하던 시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지우, 소리, 채운은 고등학교 2학년으로, 모두 같은 반에 속해 있다. 지우는 소리를 알고, 멀리서 채운을 봤다. 소리는 지우와 채운을 안다. 채운은 지우를 알고, 지우의 만화를 읽었다. 지우, 소리, 채운은 모두 연결되어 있지만, 단 한 번도 한자리에 함께 모인 적은 없다.
말하자면 아주 느슨하게 엮여 있는 것이다. 이들은 오랜 친구도 아니며, 각자의 사정을 다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서로가 이어진 계기마저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로부터 시작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차마 말 못 할 비밀을 가졌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 사실로부터 강렬하게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이렇게 비밀과 거짓말로 매개된 세 명의 아이가 슬프고도 느리지만, 선명하게 성장의 발자취를 남기는 이야기이다.
‘보호’라는 견고한 벽이 무너지는 순간
지우, 소리, 채운은 부모님 중 한 분의 죽음을 겪거나, 혹은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경험에서부터 사연이라 불릴 이야기들을 쌓아 나간다. 그것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아픔이 되기도 한다.
18살은 어떤 나이인가? 조금만 내디디면 성인이고, 조금만 돌아서면 사춘기이다. 그 넓은 간격 사이에서 아이들은 ‘보호’라는 견고한 벽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휘청거린다.
부모님의 보호로부터 곧 벗어날 나이이긴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책임져야 할 대상인 반려동물이 있을지언정 진정한 보호자가 된다는 개념과는 먼 것 같다. 그래야만 할 나이인 것 같지만, 소망이 무색하게도 삶은 아이들을 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국 이들은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게 되거나, 보호해야 할 것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렇게 무너진다.
거짓 속에서의 해방
지우, 소리, 채운 모두 구태여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곧 비밀이고, 그것은 고의로 내뱉지 않은 진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짓이 있다. 거짓은 진실을 말해야 할 때 고의로 진실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셋은 비밀을 가지고 있고, 이 진실을 차마 드러낼 수 없었기에 서로에게 거짓을 말한다.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을 숨김으로써 비로소 아이들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
세 명 모두가 말 못 할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이들은 거짓 속에서만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셋을 잇는 주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 이야기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먼저 자기소개를 한다. 이름, 나이, 소속 그 외 기타 등등. 이렇게 인적 사항을 나열하는 것이 끝나면, 우리는 각자의 분량만큼 쌓여온 이야기 중 하나를 잘 골라내어 교환한다. 특히나 그것이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과 같은 형태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은 단순히 이야기를 교환하는 것과는 다르다. 골라낸 이야기 중에서 그럴싸한 거짓을 만들어 내야 한다. ‘거짓을 말해도 된다.’라는 자유 안에서 마음속 가능성 하나를 더 열어둔다. 그 가능성을 앞으로 내세우며 말해버리고 싶은 비밀을 바로 턱 밑까지 꺼내 온다. 하지만 결국 내뱉는 건 ‘거짓말’이어야 하기에 진실은 다시 저 아래로 숨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소한 게임이 허용한 거짓말이라는 공간 속에서 셋을 이어주는 이야기는 탄생한다.
성장의 이면: 미숙하고도 처절한
‘성장’의 모든 순간이 숭고하지는 않다. 어쩌면 매번 끔찍한 순간들만 이어질 수도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우리가 겪어온 고된 과정의 모습은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가? 사실 성장이라는 결실에 앞서 자신의 이기심과 죄책감, 추한 모습까지도 꼿꼿이 마주해야 한다. 나의 못난 모습을 마주하고 반성하는 것, 처절한 일을 겪고 수습하는 것 등이 그것에 속한다.
하지만 김애란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 미숙하고도 처절한 과정 모두가 인정된다. ‘성장’이라는 작은 단어 안에 그래도 꽤나 봐줄 만했고, 순수했던 기억만을 억지로 눌러 담지 않아도 좋다는 위로를 보내오고 있다. 지우, 소리, 채운의 이야기가 그러했듯이 성장의 이면에는 참을 수 없는 미숙함과 견디기 어려운 처절함이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다른 차원의 공감
공감은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타인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짐작해본 것에 대한 공감과 자신도 이미 겪어본 상황에 대한 공감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가지 차원의 공감에 우위를 나눌 수는 없지만, 서로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세 아이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공통의 감정, 다시 말해 공감은 어떤 둘 중 어느 부류에 속해 있는가?
그들은 비록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길 만큼의 시련을 겪었다는 공통적이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어렴풋이 서로의 깊숙한 부분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다.
즉, 이것은 자신이 이미 겪어본 상황에 대한 공감이고, 이해이다. 어쩌면 그런 이해가 있었기에 그들이 처절한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이 암시하듯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것까지도 말이다.
다시, 거짓말
작중의 세 아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 또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진실'을 한쪽에 품고, '비밀'로 만든 채 '거짓'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구태여 남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혹은 괜한 위로를 받고 싶지 않다는 점에서, 아니면 긴 사연을 풀기에 벅차다는 점에서.
거리에는 많은 사람이 스쳐 간다. 이름도 모르고,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다. 자기소개 따윈 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각자만의 비밀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존재이다.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스쳐 가는 사람들의 수만큼 당연하다. 그러므로 각자의 이야기를 품은 채로도, 비밀이 여전히 비밀인 채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그런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