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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래된 노래를 좋아한다. 이를 테면 김광석, 노영심, 산울림, 김성호 등 내가 태어나기 전에 전성기를 달렸던 가수들의 먼지 쌓은 노래들. 그들이 한창 무대를 채웠던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것이 억울할 만큼이나 그들의 음악을 짝사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故김광석의 음악은 그런 나의 취향을 처음 발견하게 해준 은인이라 할 수 있다. 어딜 가든 시끄러운 아이돌 음악만이 들리던 여중생 시절에, 우연히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고작 10대였는데도, 노래를 듣고는 가슴 한켠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세월을 알기는 커녕, 그저 공부가 싫은 중학생의 마음을 흔든 이 목소리의 주인은 누굴까, 혼자 그의 생김새를 그려보았다. 내가 상상한 그는 '백발의 60대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가 30대에 생을 마감한 [김광석]임을 알았다.

 

가사의 의미도 알지 못한 채 그저 그의 목소리에 이끌렸을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한 줄씩 선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한 그의 문장들은 소중한 삶의 이정표가 되었다.

 

모든 가사의 의미를 다 이해했다고 착각할 만큼 익숙해진 노래들이지만, 나는 오늘도 그 안에서 낯선 감동을 찾아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이는 내가 여전히 그의 음악을 듣고, 또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는 미련하면서도 먹먹해지는 가사에 유독 사로잡히는 곡이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가사와 노래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서른이면 한창 앞날이 창창할 나이인데, 어째서 이토록 시간을 붙잡으려 하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이 1994년에 발매된 곡임을 알고 나면 말이 달라진다. 90년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은 6-70대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시대에 '서른'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절반을 살아버린 나이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땐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가사들이 비로소 가슴 깊이 와닿기 시작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뛰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남들은 모두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같은데, 나만 어제에 머무르고 싶은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내 미련한 마음을 숨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는 서른보다 어린 사람도, 서른을 훌쩍 넘긴 사람도, 저마다의 애틋한 과거를 품은 사람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곡이 <서른 즈음에>라는 제목으로 세대를 넘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붙잡고 싶은 많은 청춘들의 솔직한 고백을 대신 읊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앞서 말했듯, 이 노래는 백발의 60대 할아바지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노래로 만들어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곡을 부를 당시 김광석의 나이는 고작 31세였다.

 

그의 음성에는 물리적인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깊이가 서려 있다.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을 앞질러 가본 사람처럼, 가사 속 화자의 고단함과 애틋함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곧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을 잊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직 노래 속 노부부의 나이에 닿지 않았음에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건, 그의 목소리를 통해 가보지 못한 세월의 무게를 미리 배우고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해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먼 훗날, 여전히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있을 60대의 내 모습이 기대가 된다.

 

'다시 못 올 그 먼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광석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 보내고 혼자 여관방에서의 쓸쓸한 단상을 담고 있다고 한다.

 

 

"헤어짐의 아픔은 몇 번을 되풀이해도 익숙해지지 않아서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그때의 상실감은 쉽게 잊혀지지 않더라고요."

 

- 故 김광석

 

 

이 노래를 듣고 살면서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상대를 떠올렸다. 나를 향한 그의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 그는 내가 그리는 이상형의 모습이 되었다.

 

아주 가끔씩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 모습이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사무치게 애틋하게 느껴질 때면 이 노래를 찾아 듣는다. 조용히 가사를 읊다보면,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해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노래의 제목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이지만, 정작 가사는 그 상대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처럼 절절하게 흐른다. 어쩌면 곡은 누군가를 잊기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니라, 결코 잊고 싶지 않다는 화자의 처연한 발버둥이 아닐까.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뭘 하고 지내는지도 알 수 없지만, 표현이 부족한 나에게 늘 먼저 다가와 준 그의 배려를 굳이 지우려 들고 싶지는 않다. 잊으려 애쓰는 마음 자체가 이미 잊지 못한다는 의미라면, 나는 기꺼이 그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

 

김광석의 음악들은 그렇게 나의 10대와 20대를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다. 이제 남은 20대와 머지않아 마주할 낯선 계절들 속에 그의 노래가 또 어떤 빛깔로 내 곁을 채울지 한없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질 그의 문장들을 따라 거닐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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