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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동두천에 산다

레츠고 디디씨

by 한정아 에디터
2026.07.31 14:25

나는 동두천에 산다. 태어난 건 대전, 두 살까지는 서울에 살았다고 하는데 기억이 전혀 안 난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동두천에서 나왔으니 나는 빼도박도 못하는 동두천 사람이다. 지금도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오던 동두천 꿈나무 정보 도서관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교 신입생 때 가장 많이 듣는 "너는 본가가 어디야?" 라는 질문에 서울,부산,대구,청주,인천...... 다양한 답변들이 있지만 동두천은 흔치 않다. 흔치 않은 대답에는 추가 질문이 따르기 마련이고,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동두천을 다양한 형태로 답하곤 했다. 경기북부야, 의정부 위야, 원래 양주였어, 북한 바로 아래야, 구석기 알지? 연천 쪽이야. 가끔 군대를 다녀오거나, 1호선을 자주 타는 친구들이 동두천을 알고 있는 정도이다.

 

이쯤 말했으면 눈치 챘을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동두천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데에는 응당 이유가 붙어야겠지만 잘 모르겠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냥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동두천엔 영화관 없지? 트랙터 타고 등교하지? 라는 농담들에 조금은 긁혔던 것도 같다. 어쩌면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는 홍등가의 흔적들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하나 하나 동두천이 싫은 이유를 적립하면서 살진 않았다. 그렇게 싫다고 생각하면서 살지도 않았다. 몇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좁은 촌동네. 아 지긋지긋한 이 바닥- 뭐 이 정도로 생각했다. 누구나 자신의 고향에 대해 이런 노부부의 애정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아주 어릴적부터 어른이 된 나를 떠올릴 때, 그 상상 속의 내가 동두천에 살고 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제 나도 스물 네살이다. 어릴 적 내가 상상하던 어른의 나이는 몇살이었을까. 엄마 아빠는 열아홉에 서로를 아셨고. 스물 여덟살에 언니를 낳았다. 스물 여섯살인 우리 언니도 내년에 결혼을 한단다. 나는 2주 전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어영부영 계절학기의 힘을 빌려서 8개의 학기 내에 졸업 학점을 채울 수 있었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수업이 없다는 사실이 생경하다. 졸업을 한건 아니다. 학사학위취득유예라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다. 그러니 나는 지금 학교라는 울타리 끄트머리에 간신히 붙어있는 셈이다. 


동두천에서 대학교까지 2년 반 동안 통학했다. 도어 투 도어 1시간 반이 좀 넘는 거리였다. 말이 1시간 반이지, 동두천행 소요산행 연천행은 한 시간에 2개 뿐이다. 통학했던 2년을 되돌아보면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듯 느껴진다. 서울에서는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했고, 동두천에서는 서울로 학교를 다녔어야 했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은 나에게 많은 피로를 주었고 2년 반 동안 졸음과 사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3학년 2학기부터 첫 자취 생활이 시작됐다. 1년간은 언니와 원룸에서, 지난 반 년간은 언니 동생과 투룸에서 지냈다. 서울 집 값은 참 비싸다. 비싸다 비싸다 하지만 이 정도로 비쌀 줄이야. 이것 저것 포기하고 얻어낸 방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서울에서 잘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짜릿했다. 그 좁은 원룸에 두 명이 살 때에도, 우리는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그래도 통학하는 것보다는 나아- 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저번에는 처음으로 청약을 넣어봤다. 될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또 산다고 생각하자고 하면서도 우리 세자매의 손가락과 입은 바쁘게 움직였다. 어딜 넣어야 조금이라도 확률이 올라갈지, 제미나이에게 물어보고 챗지피티에게 물어봤다. 결과는 세명 모두 떨어졌다. 놀랍지 않은 결과다.


다음 집은 어떻게 해야할까? 결혼자금을 모아야하는 언니는 동두천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첫 차를 타고 출근해야한다. 미친 짓 아닐까? 또 생각해보면 아빠는 26년간 동두천에서 여의도로 출근하고 계신다. 미친 짓이긴 하다. 노량진에서 동두천까지 1호선을 타고 올때면, 과거로 오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엄마 아빠가 처음 동두천에 왔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시골이었을테니 그럴만 하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 아파트 한 동 자체에 우리집 뿐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쓰레기 버리러 나가는 것도 무서워 딸 셋을 다 데리고 나가곤 했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충청도 사람이고, 대전에서 대학을 나왔지만 어쩌다 동두천까지 오게 되었을까. 결정을 했을 때는 기껏해봤자 나보다 다여섯살 많을 때 였을텐데, 연고지가 아예 없는 곳으로 가는 결정을 어떤 마음으로 하셨을까.


요새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유는 내 최근 검색어를 보면 알 수 있다. 순환 없는 공기업 리스트. 아예 연고지가 없는 새로운 곳에서 정착해 새 삶을 살고 싶기도 하고. 익숙한 서울이나 경기도 근처에서 사는게 편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결정은 어떻게 하는거지? 뭘 보고 하는거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들 하는 선택들을 앞두고 내가 느낀 좌절감은 사실 그냥 아침 메뉴 고르는 선택과 비슷한 정도의 사전 정보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신중이지 사실은 알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잘 생각해라 잘 봐라 하는데 다 엉터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한건 요즘 취업이 어렵댄다. 2009년 금융위기 이후로 최고라나. 확실하지 않다 사실. 그래도 남들 다 취업 턱턱하는데 나만 안 되는 것보다는 다 같이 어려운게 나을지도. 요새 취업 시장이 안 좋으니까 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사기업 서류 몇개 넣어봤다. 아 10개도 안 넣어보긴 했는데, 벌써 힘들다. 남들은 100개씩 넣더라. 대단하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뭘 해먹고 살아야할지. 어디 살고 싶은지. 뭘 중요시 하는지. 졸업하고나서도 공기업? 사기업? 이러고 있으니 사실 말 다 했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산 건 아닌데,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든다. 희망 직무와 산업이 명확했던 언니에게 비결을 물었던 적이 있다. 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냥 정답이 뭔지 모르겠는데 5분 남았대서 아무거나 써서 내는거야.


아침에 눈을 뜨면 노트북을 키고 조급하게 무언가를 한다. 다들 어떤 한 우물을 정하고 막 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여길 조금 파봤다가 아니다 싶으면 저길 파보고 하는 것 같다. 자격증 공부를 하다가도, 채용 공고에 마음이 급해지다가도, 그냥 워홀을 가버릴까, 카페 알바를 해보고 싶은데, 유튜브를 시작해볼까. 자려고 누워봐도 선풍기처럼 돌아가는 머릿속이 시끄럽다. 스물 네살이면 엄청 어리지, 그래도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 2학년 때 좀 자격증 따둘걸, 그 공고 그냥 넣어볼까, 시간 낭비겠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어서 공기업 들어가는거 아니었나? 왜 다들 순환을 시키는거야. 쩝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긴 하지? 안 그러면 다 공기업 가려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살 것이지 난? 사실 그 질문은 아주 중요하지만 또 아주 쓸모 없는게 그렇게 정해봤자 그렇게 살아지는게 아니다. 이렇게 살고 싶다하더라도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누군가는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던 때가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들 사이에 가뭄에 콩 나듯 존재하는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자유란 필연성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얽매이지 않고 철새처럼 살아가는 삶이라기보단, 이렇게 말하는 방식이 더 공감된다. 머리가 자라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어차피 대머리로 평생 살아야하지만. 대머리로 평생을 살아온 것과, 대머리로 평생을 살기로 한 것은 다르다. 선택지가 없는데 선택한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택지가 하나여도 선택지는 있다. 선택할지 선택하지 않을지. 바꿀 수 없는 것들 중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들. 성별이든, 출신이든, 부모든, 성격이든, 외모든. 그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다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나와 죽을때까지 함께 살아야하니까. 괴로움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으니까.


어쨌든 나는 동두천에 살고있다. 장마가 끝났을 때즈음 부터 일주일 째다.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도 않는 나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집 밖에 있을 명분이 없다. 자취방에서 학교 도서관까지 걸어가면 편도 30분이 걸려서. 노트북을 들고 걸어가는게 무겁고 힘들어서. 도서관 에어컨이 너무 빵빵해서 경량패딩을 입어도 추워서. 동두천에 돌아올 핑계는 많다. 내가 서울에 살아도, 여수에 살아도, 독일에 살아도 어쨌든 난 동두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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