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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빛과 순간 속으로 [도서/문학]

백수린 「빛이 다가올 때」, 빛이 스몄던 사랑의 순간 속으로

by 최승윤 에디터
2026.09.12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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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을 떠올린다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반짝하고 빛났다가 이내 사라지기도 하는 찰나, 빛은 생의 한 시기와도 의미가 맞닿아있다. 백수린 소설가의 「빛이 다가올 때」는 간호사인 주인공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인주 언니의 이야기다. 그들이 친해지기 시작했던 순간과 어쩌면 늦게 찾아온 한 시기를 통과하던 때까지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을 다룬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인주 언니와 내가 여덟 살의 나이 차가 난다는 것을 말하며 시작된다. 여덟 살이라는 나이 차는 다시 말해 비슷한 유년의 시간을 함께한다거나 서로가 경쟁자로서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사람은 사촌 사이다. 인주 언니는 큰이모의 첫째 딸이고 '나'는 형제들 중 막내인 엄마에게 태어났다.

       

      옛 시대에 대학까지 졸업할 정도로 자기확신과 신념이 투철했던 큰이모는 망막색소변성증이 발병해 시력을 잃었다. 시력을 완전히 잃기까지는 다소 몇 년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처음 병을 진단받은 것은 인주 언니가 여덟 살때의 일이었다. 인주 언니는 일찍이 어른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릴 때 어른들이 무심코 한 말 속에서 엄마의 병은 자신을 임신하게 되면서 얻게 되었고, 대학원에 가고 싶어 돈을 모았던 엄마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주 언니는 자연스레 그 짐의 무게를 떠안는다. 엄마의 교수라는 꿈을 자신이 대신 꼭 이뤄내야 한다고. 착하고 공부 잘하는 첫째 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인주 언니는 공부를 잘했을 뿐만 아니라, 큰이모가 시력을 잃게 되면서 손을 떼게 된 살림살이들도 전부 떠맡았다. 그렇게 인주 언니는 어린 시절에 겪고 누려야 했을 법한 경험들을 건너뛴 채 시간은 흐르게 된다. 인주 언니와 '나'는 열다섯 살,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언니에게 영어 과외 수업을 받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접점이 생긴다. '나'는 언니의 얼굴에 서린 처연함을 (당시 자신이 겪던 짝사랑의 열병으로 인한) 드라마틱한 환상으로,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대학생 언니에게 느낄 수 있는 '어른'의 선망을 느낀다. 열다섯 살 중학생에게 대학생 언니는 당시 큰 어른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인주 언니는 녹록치 않은 생활 속에서도 '나'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다. 주인공이 화가가 되고 싶다며 뜬구름 잡는 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런 철 없는 꿈을 꿔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반 고흐의 책을 사다주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이들이 본격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 것은 이로부터 몇 십 년이 흐르고 난 뒤 뉴욕에서다. 미국에서 간호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이곳에 온 '나'와 대학 연구 생활을 하기 위해 온 인주 언니는 뉴욕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함께 맛있는 식당에 가고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하면서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진다. 이들은 이제 각자 삼십 대와 사십 대가 되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두 사람이 자주 가는 카페의 종업원인 개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개리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20대 초반의 남자다. 개리를 만나고 난 이후 인주 언니는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사람들과의 모임에 나가지 않던 언니가 만남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화장을 하고 옷을 새로 샀다.

       

      독자는 어쩌면 주인공보다 더 빠르게 인주 언니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차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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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여성이 20대 남성에게 사랑에 빠지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됐을 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팽배할 것이다. 그러나 인주 언니가 살아온 환경과 배경, 그의 성격을 따라가다보면 이 사랑은 잘못되었다는 그 판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인주 언니가 하나의 시기를 뒤늦게서야 거쳐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의 지각생으로서 겪는 '처음'의 순간을 독자는 함께 지켜보게 된다.

       

      '나'는 인정하기 두려웠던 인주 언니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은 열다섯 살, 자신의 학교에 온 교육실습생에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다. 용돈을 아껴 산 치마를 입고 그와 영화를 보러 가지만 그 교육실습생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데리고왔다. '나'가 기대했던 짝사랑은 당연하게도 원하는 방향대로 흐르지 않았다. 교육실습생은 20대의 대학생이고 '나'는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이 기억은 그간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 없던 인주언니에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과도 맞닿아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가족관계 안에서의 형제는 두 세 살 차이만 나더라도 상당한 어른처럼 느껴진다. 그 인식이 깨지는 순간은 성인이 지나고, 또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찾아온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둘의 나이는 무려 여덟 살이다. 어릴 때부터 늘 자신보다 잘 나고, 어른스럽고 차분했던 인주 언니에게 사랑의 서툰 첫 시작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게 될 줄은 '나' 도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일어날거라는 예상 범주에 전혀 들어맞는 일이 아니라서, 혹은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라서 '나'는 그 사랑을 조금 뒤늦게 눈치챘을 지도 모른다.

       

      또 이와 닿아있는 경험은 어릴 때 세탁기에서의 기억이다. '나'의 부모님은 세탁소를 운영한다. 어지럽게 실밥과 자투리 천이 뒹구는 세탁소 한구석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가 무언가 크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여기에 있다. 엄마 아빠가 적은 편지나 메모지에서 발견되는 문법의 오류들, 엄마가 더 이상 내게 설명해줄 수 없는 문법의 규칙과 차이를 내가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예민하게 감각하기 시작하던 순간을 말이다. '묘한 슬픔이 뒤섞인 우월감을 느끼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자기의 부모를 딛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 문장 앞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성장을 거치고 또 진행중인 이들 모두가 이 복잡하고 슬픈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킨 적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보다 나이가 많고, 많은 경험치를 가진 이들에게 당연히 갖고 있을 경험의 순간들이 뒤늦게 찾아왔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내'가 인주 언니의 사랑을 경험한 순간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를 사랑하는 이상한 취향이 아닌, 20대 시절에 자신이 느낄 수 있었던 연애감정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생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인주 언니가 비로소 다시 그 시절로서 서 있게 하는 것, 그 나이의 여자로서 또래의 남자아이에게 사랑을 빠지는 것. 이것은 어린 시절 자신의 의사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누군가를 위해서만 삶을 살아오던 인주언니가 4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삶이 시작된 순간이라고 본다.

       

      햇살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빛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개리와 개리의 친구, 나, 그리고 인주언니가 함께 떠나서 바닷가의 아름다운 노을빛을 바라보았던 것. 그리고 큰이모가 돌아가시기 전, 큰이모와 인주 언니가 하루에 한 번 해질 녘 무렵 함께 산책을 갔던 일이다. 걸으면서 인주 언니는 큰이모에게 보이는 풍경을 설명해주고, 그러면 큰이모는 인주 언니에게 다른 감각들을 이용해 느끼는 풍경을 언니에게 설명해주었다. 인주 언니는 그 시간이 다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할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인주 언니의 시간과 꿈은 늦춰지거나 사라졌지만 그 시간이 결코 불행하고 불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아름답고 환상적인 빛, 단순히 처음 사랑을 느끼고 바라봤던 풍경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걸쳐 바쳐야 했던 엄마와의 소중한 일상, 그것만으로 이 빛은 충만하고 환하게 빛나온다. 인주 언니는 엄마가 묘사해주던 그 세계 역시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서로의 감각기관으로 느끼는 최대치의 아름다움을 상대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려 애쓰는 마음 자체가 아름답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인다. 그 아름다운 세계 밑에서 인주 언니는 자랐고, 이제는 꽤 나이가 든 어른이 되었고, 이제야 출발되는 감정과 시간이 있다.

       

       

      “엄마와 여길 같이 걸었다면, 나는 이 아름다움을 묘사하기 위해 애를 썼겠지. 사방이 믿을 수 없을만큼 환하고, 온통 부드러운 흰빛이라고. 눈 위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은 아주 연한 노란색이라고.”

       

      그렇게 묘사를 하고 나면 큰이모는 “이젠 내 차례야”하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그리고 큰이모는 시각을 잃은 후 얻게 된 예민한 다른 감각들을 활용해 큰이모가 느끼는 풍경을 언니에게 묘사해주었다. 바람이 어제보다 부드럽고 가볍구나. 눈 때문인지 사방에서 지난여름 우리가 쪼개 먹었던 수박향이 나는구나. 까치 소리가 평소보다 가깝게 들리는구나.

       

      “엄마가 묘사해주던 그 세계 역시 정말로 아름다웠어.”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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