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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불편함을 유도할 때 - 돼지의 왕 [영화]

영화 <돼지의 왕>을 보고 애니메이션의 형식에 관해서 생각하다

by 정진영 에디터
2026.09.0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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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생각나는 작품들이 있을 테고 그런 작품은 보통 예쁜- 아름다움보다는- 그림들이 전제되어 있다. 당장 <하울의 움직이는 성> <토이 스토리>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을 더 많이 보면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 훨씬 징그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을 그려놓고 더욱더 극단까지 밀어붙여 실현하는 게 가능한 세상이니까 말이다.

       

      호기심에 눈이 멀어 본 여러 애니메이션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젠장. 그래서 애니메이션이 코미디의 형식이 아니라, 스릴러나 공포나 그런 장르라고 하면 보기도 전에 겁을 먹는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안 보고 싶어진다. 나에게는 <돼지의 왕>이 그러했다. 내가 원작 드라마를 보지 않았더라면, 도서관에서 아무리 DVD를 발견했더라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여자 시체를 보여주고 기존 순정만화에서 볼 법한 눈코입의 비율은 어디 가고 묘한 불편함을 유발하는 그림들이 등장했다. 심지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왜 이렇게 현실과 비슷한지. 영화를 보던 초반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감독에 의해 예상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계속해서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 우리는 영화를 포함한 많은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다.

       

      내용과 형식은 실제로 분리되는 게 아니라, 통으로 다가오며 둘은 불가분하다. 형식은 내용이 완성된 뒤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작가의 의도대로 잘 전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가져와진다. 그리고 그런 내용은 해당하는 형식이 아니라면 전혀 전달될 수 없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불편한 그림을 사용하는 애니메이션이란 형식은 이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불편함을 주고 싶었을까? 우리는 불편감을 느끼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심한 폭력을 당해서 동정심이 일어나고 있는 대상일지라도. 따라서 감독은 우리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며 바라보기를 바랐던 것일지 모른다.

       

       

      돼지의 왕_4.jpg

       

       

      그 이유를 살피기 위해서 다른 형식을 하나 더 살펴보자. <돼지의 왕>은 애니메이션이라는 효과뿐만 아니라, 어른이 된 경민과 종석이 15년 전, 중학교 1학년 때 철이를 만나 일어난 사건을 회상하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과거와 현실이 적절히 교차되면서 두 사람의 회상의 형태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실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문제와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현재 문제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파 보이며, 과거의 문제는 과거대로 치울 수 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들은 과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개인이 그 기억이 아파서 지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억이 발생한 세상 안에서 계속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감독은 우리에게 ‘피해자’에게 몰입해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감정을 해소하는 형태가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가 발생하는 (영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계급 사회) 세상 자체를 바라보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괴물을 잡기 위해서 괴물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 그러나 괴물이 되는 것조차 사회에서 어떻게 태어났고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그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복수의 서사를 강조하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은 더더욱 '참교육'하는 복수의 형태가 많이 나온다. 이런 이야기의 결말은 복수를 성취하고 난 뒤의 주인공들이 일정하게 행복을 쟁취한 형태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돼지의 왕>은 다르다.

       

      미래에 가해자들이 불행하게 살기 위해서 온몸을 던졌고 얼마간은 그것을 이뤘다고 볼 수 있지만, 복수를 행한 우리가 단숨에 행복해지거나 혹은 먼 훗날에 웃으며 미소지을 수 있게 된 게 아니다. 왜냐하면 가해자 몇 명을 치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므로. 가해자 몇 명이 사라졌다고 해서 피해자가 있던 세상이 아스팔트에서 질좋은 마루바닥이나 대리석 타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복수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 걸까.

       

      이것은 찝찝한 불편함이지만, 세상을 관통하는, 수많은 '참교육' 영화와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함을 알려주는 신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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