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쉽게 생각했지만 매주 글을 기고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말이 일주일이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글을 고민한다. 그래도 차곡차곡 쌓이는 내 글들을 보는 것이 보람차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내 일기장을 공유한다는 것은 한 주를 조금 더 알차게 보내게 한다.
다행히도 한동안 찾아볼 수 없던 괜찮은 영화들이 요즘 잇따라 개봉하면서 소재가 끊이지 않았다. 어제 삼청나잇을 시작으로 아트위크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는 것 또한 내 고민을 덜어준다.
하지만 3주째 쓰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제대로 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에도 무언가는 남기고 싶어 8월의 보고서라는 형식으로 짧은 소감을 써보려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이미 많은 리뷰들이 줄지어 올라와있어 줄거리는 소개하지 않겠다. 3주 동안 고민한 것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면 무엇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갈까 하는 것이 었는데, 도무지 고를 수가 없었다. 실관람객의 관람평 중에 '감독 각본 배우 미술 음악 사운드 모든 요소요소가 장인정신의 결정체. 이게 영화다' 라는 말로 정리해야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어디에 꼭짓점을 찍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장면이 완벽했다. 아쉬운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장장 3시간이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읽듯 술술 넘어갔다. 분명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다음 장면이 계속 기대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사라졌다. 이자연 평론가는 '그리스 신화는 놀런을 만나길 오랫동안 기다려왔구나'라고 평했다. 이 말에 공감하듯 내 주변인들은 놀란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총대매고 시리즈별로 다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CG가 거의 없이 진행됐다는 점이다. 거인족 씬은 키가 2m 넘는 배우와 작은 배우들로, 키르케가 신하들의 얼굴을 변형시키는 장면도 실제 특수분장으로 구현했고, 외눈박이 거인은 실제 크기의 로봇을 제작해 촬영했다. 그래서인지 신화가 주제임에도 CG라는 이유로 아쉽거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영화 <호프>를 봤을 때는 분명 해석의 여지들이 많았지만 리뷰를 찾아볼 생각을 않았는데, <오디세이>의 비하인드들이 너무 궁금했다. 유튜브에 오디세이에 대한 견해가 올라올 때마다 새로웠고, 불호 평은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영화에 대한 평보다 학자들마다 '오디세이'와 '오딧세이'를 다르게 부르는 이유, 호메로스의 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눈에 띄었다.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온 김헌 교수님 편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보길 추천드린다.
글을 쓰다 보니 <오디세이> 찬송이 된 것 같지만, 다른 방향을 찾지 못하겠다.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8월에는 좋은 영화도 많이 개봉했지만, 나에게는 8년 8개월을 기다려온 콘서트가 있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가수, 배우 등 일명 '덕후' 활동을 활발히 해왔다. 친동생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모든 공연을 찾아다니고, 뮤지컬 영화는 이틀 상영하면 이틀을 모두 보러 갔다.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대상을 이야기할 때 혈색이 돌고 눈이 반짝거리는 덕후들을 보며 어딘가 부러움도 느꼈던 것 같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한다는 것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TV에 자주 나온다면 그들에겐 원동력이 자주 생기겠지. 그게 이유 모를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좋아하는 연예인 없냐 물으면 이야기하는 아이돌이 딱 한 그룹 있다. 햇수로 치면 약 17년 정도 한 아이돌을 좋아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을 찾아다닌다거나, 영상을 돌려본다거나, 굿즈를 사는 것에는 친구들이나 동생처럼 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콘서트를 다녀오면서 알 수 있었다. 2시간 30분동안 쉬지 않고 홀린 듯 완창을 즐기느라 핸드폰에 남은 영상이 몇 개 없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친구들이나 동생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처럼 활동이 많지 않았다. 요즘에야 매주 유튜브 콘텐츠가 올라오지만, 그 시절(?)에는 그들이 나온 방송을 보려면 재방송을 찾아보거나 본방사수를 하는 것이 답이었다. 응원봉 말고는 굿즈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컴백을 하면서 내가 보는 모든 유튜브 채널에 그들이 올라오고,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미 그것들을 손에 넣고 있었다. 제일 좋은 것은 콘서트 영상을 사람들이 짜집기해서 올려주거나 주최측에서 올려주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콘서트를 고화질로 볼 수 있다. 8월에는 유독 현대 문명에 정말 감사하다고 새삼 느낀 순간들이 많았다.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의 컴백은 내 어린 시절을 하나씩 회상하게 한다. 누가 누굴 더 좋아하네 하며 쓸데없던 경쟁을 하던 시간, 길을 지나가다 그들의 노래가 나오면 눈물이 고이던 순간들,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찰 때면 꼭 듣던 내 최애곡, 그리고 8년 8개월 전 마지막 콘서트가 끝난 뒤 느꼈던 감정들까지. 마치 멈춰있던 시계가 움직이는 것 같다.
역시 내 궁금증이 맞았다.
덕후짓은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 글에 대해서 쓰려고 마음 먹었을 때 눈앞에 보인 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