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중…’인 마음까지 보이는 시대
작년 5월, 카카오톡에 ‘입력 중’ 표시 기능이 생겼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으면 채팅창에 ‘…’ 표시가 나타난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나 아이메시지 등에서는 이미 익숙한 기능이었지만, 국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메신저인 카카오톡에 도입되면서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편하다”, “답장 시간에 대한 오해가 줄어들 것 같다”라며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시받는 기분이다”, “메시지를 썼다 지우는 것까지 알리고 싶지 않다”라며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편리한 기능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사용하다 보니 조금 달랐다.
상대방이 ‘입력 중’이라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왠지 답장이 올 때까지 채팅방을 나가기 어려웠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상대가 곧바로 ‘…’을 띄우면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를 끝내기가 어려워 카카오톡 앱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온라인 대화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피로감도 커졌다. 그만큼 오프라인의 삶이 침범당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이 글은 ‘입력 중’을 표시하는 기능이 가져온 영향과 반응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기술뿐만 아니라 다른 통신 매체까지 포함해, 점점 더 모든 것을 내보이며 상호작용하는 인간에 관한 생각을 붙잡아 조금 적어보았다.
소통의 빈칸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의 소통 수단은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답답했다.
편지를 보내고 나면 상대방에게 무사히 도착했는지 바로 알 수 없었다.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때도 답장이 오기 전까지는 상대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답이 없으면 거기에서 끝이었다. 직접 만나지 않는 이상 상대방이 왜 답하지 않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알 수 있고, 그로 인해 보고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내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은 상대방이 지금 접속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상대방이 답장을 작성하다가 결국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최근 출시된 ‘인스타그램 플러스’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볼 수 있다.
지난 6월 정식 출시된 인스타그램 플러스에는 자신이 올린 스토리가 몇 번 다시 재생되었는지 확인하는 기능과, 스토리를 본 사람들의 목록에서 특정 계정을 검색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이전에도 누가 내 스토리를 보았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 스토리를 다시 찾아본 사람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통은 점점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메시지를 읽었는지, 지금 접속해 있는지, 답장을 쓰고 있는지, 내가 올린 사진을 다시 보았는지까지. 예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상대방의 행동이 점점 화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기술은 개인의 삶을 더 많이 보여주고 서로를 더 가까이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점점 각자의 영역으로 나뉘어 가는 것 같다.
예전보다 1인 가구와 핵가족이 늘었고,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거나 여행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한편에서는 고독사나 사회적 고립이 문제로 이야기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이 점이 조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왜 서로를 들여다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인간에게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은 생존 확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혼자보다 함께 있을 때 위험에 대처하기 쉬웠고, 먹이를 구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데에도 유리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인간은 혼자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먹고, 일하고, 여가를 보내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상태를 궁금해한다.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었는지, 지금 접속해 있는지, 답장을 쓰고 있는지 확인한다. SNS에서는 직접 묻지 않아도 누군가가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서로의 상태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어쩌면 과거에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던 인간에게 남아 있는 본능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상태를 살피고, 내가 여전히 집단 안에 속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습성이 모습만 바꾼 채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과거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과거에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다. 지금 역시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수록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연결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은 먼 미래의 인류학자들이 지금의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진다.
개인의 삶과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손바닥만 한 화면을 통해 서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했던 사람들. 물리적으로는 점점 떨어져 살아가면서도 기술을 통해서는 이전보다 더 가까이 붙어 있으려 했던 사람들.
미래의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인간에게 오래전부터 남아 있던 사회적 본능이라고 설명할까. 아니면 시대가 변했음에도 여전히 더 많이 연결될수록 유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석할까.
우리는 시대에 맞게 연결되는 방법만 계속 바꾸어 온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