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근사한 요리는 아니지만, 굵고 부들거리는 하얀 면에 가쓰오부시 맛이 진하게 나는 뜨거운 국물 한 입이면 추운 날들도 한가득 안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적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을 읽고 나면 머지않아 꼭 우동을 먹으러 가곤 했다.
이 책을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야기는 1972년부터 매년 섣달그믐날 밤, '북해정'이라는 음식점에 한 어머니와 두 아들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세 사람은 항상 우동 한 그릇만을 시켜 나눠 먹었고, 이들의 사정을 눈치챈 사장님은 매번 조용히 면을 반 덩이에서 한 덩이씩 더 넣어주곤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음식이라는 건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고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배웠다.
'셋이서 한 그릇밖에 시키지 못했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소리로 말해주신 일. 그 목소리는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한때 아주 추운 겨울날, 3주 정도를 고시원에 살아야 했던 적이 있다.
고시원 생활은 처음이기도 하고 요령도 없어서 밥을 제대로 해 먹지 못했다. 오랜 기간 쓰지 않아 굳어 있는 주방 기물들과, 팔을 펼치면 벽끼리 손이 닿을 것 같던 그 좁은 곳에서 그럭저럭 적응을 해나갔다. 뭔가 거창하게 만들어 먹을 수도 없고 매번 사 먹기에도 부담이 컸던지라, 점점 몸과 마음이 헛헛해져 갈 때쯤 우동이 떠올랐다.
다행히 작은 냄비 하나는 있었기에 우동 8개를 사 두고 마음이 추울 때마다 끓여 먹었다. 그냥 다 넣고 3분만 끓이면 건더기 하나 남지 않는 따끈한 우동이 완성됐다.
밖에서 내뱉은 하얀 입김은 어느새 우동의 뽀얀 김이 되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렇게 먹고 힘을 내어 버텨낸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살다 보면 생각만큼 안 되는 일도 참 많은 것 같다.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혼자만의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오히려 마음의 허기가 진다. 그럴 땐 담담하게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면서 내 안의 눈 내린 마음을 녹여본다.
결국 또 봄이 오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