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편한 식사 자리가 즐거운 이유 [음식]

글 입력 2023.06.1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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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자리는 생각보다 많은 이해 관계를 필요로 한다. 쩝쩝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사람,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 혀가 먼저 마중 나와 음식을 반기는 사람 등.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인식하게 되는 순간 어쩐지 외면할 수 없는 요소들은 당신과 나의 식사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다. 그런 불편함을 느끼게 된 후로 당신과 밥을 먹는 것이 싫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함께 밥을 먹는 것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만나면 꼭 물어보는 것이 “밥 먹었어?”라는 질문인 것에 더불어, 우리가 함께 일하는 사이라면, 한 달에 적어도 한두 번은 함께 밥 먹을 일이 생긴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그 사람과 과거에 함께 살았다. 때문에 일주일에 족히 두 번 함께 밥을 먹어야 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나아진 것이다. 나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좌불안석의 상황에 놓여 있는 듯하게 말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와의 ‘식사 자리’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식사 자리에 놓이기까지의 상황이 불편하다. 첫 번째 갈등은 ‘밥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인은 밥심인데 당연히 먹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같이 먹을 것이냐, 따로 먹을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는 대체로 함께 먹고 싶어 하고, 나는 따로 먹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그와 나 또한 생체 리듬이 다르다. 그는 일반적인 식사 시간(가령 낮 열두 시나 저녁 여섯 시 같은 때) 밥을 먹기를 바라고, 나는 대충 끌릴 때 먹고 싶어 한다. 그의 시간에 맞추려 한다면 나는 배고프지 않은 상황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나의 시간에 맞추면 그는 오랜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그 사람 기준의 식사 시간이 되면 그는 어김없이 물어온다. “밥 먹을 거야, 말 거야?” 내가 말겠다고 대답하면 그때부터 설득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는데, 그때 두 번째 위기에 봉착한다.


그는 늘 나에게 무엇이 먹고 싶냐고 묻는다. 무얼 먹어도 상관없는 나는 “아무거나”라고 대답하고, 그 또한 “아무거나” 좋다고 답한다. 우리는 아무거나의 방대한 틀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치킨을 먹을까? 아니, 그건 어제 먹었어. 그럼 떡볶이? 떡볶이는 정리하기 힘들어서 별로. 돈가스 먹을까? 오늘은 별로 안 먹고 싶어. 따위의 대화를 반복한다. 메뉴를 정하다 지쳐서 또 한 10분은 아무 생각 안 하고 앉아 있는다. 그는 다시 뭘 먹겠냐고 물어온다. 밥을 먹자고 했으면서 메뉴도 생각 안 했다는 게 때때로 기가 차지만 화를 내지는 않는다. 화가 나지도 않고 나 또한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충 음식 배달 어플 순위를 보다 괜찮은 것을 주문하곤 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메뉴가 정해지면 이번에는 무엇을 얼마나 주문할 것이냐의 주제로 넘어간다. 매번 다르지만 이 과정까지만 해도 30분이 넘게 소요된다. 그가 일반적인 식사 시간에 밥을 먹자고 어김없이 말하는 것이 이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어찌저찌 주문을 하고, 식사를 하고, 정리를 한다. 그와 나는 오래 봐 온 사이라 이 정도 건으로 싸우지 않지만, 서로 많은 이해를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나는 그가 입 안에 가득 음식을 넣고 밥을 먹는 것을 이해하고, 그는 내가 밥을 먹다 갑자기 혼자 웃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식사 시작 전에 있는 이해들도 이해라면 이해다.


음식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단 걸 먹거나 매운 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음식을 먹기 위해 여러 번 곤란한 상황에 놓여야 한다면? 음식을 먿는 상황에서도 난처한 일과 신경 써야 할 일들이 생긴다면?


다시 말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말한 ‘그’는 나와 아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냈는데도 그와 나의 식사 자리 사정은 차이가 크다. 나는 그보다 적게 알고 지낸 사람과 더 식사 자리 관계가 좋을 수 있고, 그보다 더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더 안 맞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많은 이해 관계를 필요로 하더라도 (관계가 끊기지만 않으면)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계속 식사를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와의 식사 자리가 곤란함의 연속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좋아한다. 식사 자리에서는 그런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말면 된다.


음식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부정할 필요 없는 말이지만,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음식이 아니라 그와 함께 먹는 음식이 즐거운 것이 아닐까. 좋은 사람에 좋은 음식이 더해져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얼마 전에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었다. 정확히는 살면서 먹어본 적이 없는데다가 그 음식에 대해 안 좋은 것들을 많이 봤던 이유로,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 본 음식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들과 그 음식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좋았고, 그것을 함께 먹는 것이 좋았다. 그들과 그 음식 앞에 앉게 되기까지, 앉게 된 후로도 우리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한가? 어쨌든 즐거웠는데. 그들이 또 그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남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해 관계를 필요로 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할 수도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할 수도 있으며, 덜 혹은 더 먹어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음식은 그런 이해를 하며 나누는 것에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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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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