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행동도 할 필요가 없어. 이 연극은 정해진 시간이 없어. 오직 시간이 연극을 정할 뿐이지. 너는 그대로 잠이 들어도 좋아. 대사도 연기도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 단 한 페이지, 혹은 단 한 줄, 아니 하나의 단어만을 낭송할 수도 있고, 혹은 네가 원한다면 소리 없이 마음속으로만 낭송하는 것도 가능해. 연극이 끝날 때까지 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그런데 연극이 언제 끝나는지 궁금하다고? 그건 우리가 알 수 없어. 왜냐하면 이건 진짜 삶의 연극이니까.
나는 내 삶의 연극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끝날 것인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녀가 말하는 바와 같이 나의 삶이 곧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도 (혹은 하나의 거대한 연극이 나의 삶에 불과하다는 것도) 믿기 어렵다. 다만 내 존재에 앞서는 언어가 나를 내뱉듯이, 우루가 보듯이, 세잔이 풍경을 개처럼 바라보았듯이, 그렇게 말해보자.
배수아의 소설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나의 몇 없는, 근래에는 사실상 유일한 문학 친구 K가 소개해 준 책이다. 평소에도 나의 독서 일정은 내가 직접 선별한 책들로 가득하기에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아서 이루어지는 독서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다양한 책들을 검색하기 위해 애쓰더라도 최근 몇 년간 내가 구입한 책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면 이상하리만치 어딘가 닮아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의 독서 취향이 나를 어떤 테두리에 가두고, 소위 참된 의미의 독서 편력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K가 나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건네준 이 책이 반갑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다. 내가 다시 나의 비좁은 독서 취향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책은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나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줄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취향에 작은 입김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그리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나는 앞으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 역시 우습다. 나의 이런 마음을 담아, 글을 통해 K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려고 한다. 책의 내용과 구성이 워낙 어지럽게 설정된 만큼 이 편이 서로에게 나을 것이다. 또한 이번에는 평소와 다르게 조금 더 편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말하자면 원래 내가 글을 쓸 때의 버릇을 모쪼록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 K는 그간 접해왔던 나의 문장에 실린 무게가 조금은 못마땅했을 수도 있다. 사실 내가 나의 문장을 못마땅해하는 것이 더 크다.
우선 소설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는 구조화 내지 도식화의 시도가 딱히 유용할 것 같지 않은 책이다. 물론 책이 어느 정도 추리 소설 같은 장르의 느낌을 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건의 배열이나 질서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뿐더러 사건을 해부하기보다 관조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굳이 이 책의 흐름과 정서에 거스르면서까지 책을 구조화하는 일이 큰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연극, 최초의 기억, 무녀라는 세 가지의 테마를 기준으로 정리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책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독서 습관을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 나는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일수록, 혀끝으로 사탕을 오래도록 녹여 먹는 마음으로 읽는다. 한순간 맛의 강렬함을 위해 깨물어 먹고 난 뒤 찾아오는 깨달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쉽게 왜곡되거나 바뀌어 버린다. 더군다나 이것은 문학이다. 어려운 내용과 구조의 문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요약하거나 퍼즐 맞추기 하듯 독서를 끝내는 것은 그러한 독서의 행위가 나를 위한 것인지 책을 위한 것인지 분간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멀리 있다 우루는 늦을 것이다>의 경우, 작가가 분명 독자에게 최소한의 정리를 요구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고 보여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평소 독서 습관을 유보하고 다른 방식으로 책을 바라봄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책의 구조를 나의 시각에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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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크게 남자와 여자라는 두 인물을 각각의 축으로 놓고, 남자가 기획한 '첫 번째 연극'과 여자가 기획한 '두 번째 연극'이 서로 충돌하고 맞물리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너는 다시 한 번 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문장이 156쪽과 161쪽, 두 번에 걸쳐 반복된다. 이때 이 말은 여자가 남자를 향해 말하는 것이므로 '너'라는 대상이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간순으로 봤을 때 남자의 연극이 여자의 연극에 선행하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었던 첫 번째 연극과 달리 두 번째 연극을 주관한 사람은 분명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첫 번째 연극을 마친 뒤 죽었다. 따라서 그의 두 번째 연극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 번째 연극이란 무엇일까? 첫 번째 연극의 창작자는 남자이며 연극은 여자의 의지나 동의 없이 시작되었다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너희들은 언젠가 내 극본으로 연극을 하게 될 거야, 그래야만 해, 그게 내 학급에 들어온 너희들의 운명이기도 하지!" (...) 이미 연극은 우리의 의지나 동의 없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연극 속 남자의 존재가 뒤틀린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무슨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교실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연극, 몸집이 작아서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그는 그냥 말 없는 관객으로 있어야만 했는데, 어느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러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이, 저절로 연극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자신도 모르게 연극의 어떤 인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 남자 교사는, 살짝 당황하면서, 아마도 자신은 쥐였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의 연극이 대개 그렇듯이, 동물들, 특히 쥐가 나오는 연극이었으니까.
만약 이 문장을 읽고 교실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을 정말 '아이들의 연극'으로만 규정한다면 다른 요소들이 차례로 무너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선 '너는 다시 한 번 더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문장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남자는 연극을 한 적이 없는데 또 무슨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분명 남자는 155쪽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인물이 되어' 연극 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88쪽에서 여자아이가 남자 교사에게 암시적으로 쥐 역할을 부여하기 전까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과 상반되는 지점이다.
이렇듯 이 책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표면 그대로 읽어 나갈 수 없는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을 구조화하는 행위는 책의 정서와 작가의 의도를 동시에 거스르는 일이며 배수아는 이미 "내 소설을 해명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해를 구하는 작가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 보자.
정리하자면, 여자가 연극을 규정하고 역할을 부여하기 전까지 남자는 자신의 역할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남자의 연극이었다! 즉, 여자(배우)가 남자(작가)를 배우로 만들어 연극에 참여시킨 것이다. 독자는 이것으로부터 타인의 연극을 자신의 연극으로 환치하고 전유하는 여자라는 인물을 확인한다.
왜냐하면 아이들 모두가 우리의 연극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은 연극이 곧 현실이라는 암시이기도 했으므로. 우리의 춤과 노래가 현실을 우리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삶을 발명했다.
여자는 기존의 연극을 부정, 해체, 전복하여 새로운 연극, 새로운 현실, 새로운 삶을 발명했으며 이에 대한 남자의 반응은 뺨 때리기, 겁 먹음, 얼빠짐, 불안, 비명 지름, 거부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의 연극이 다른 연극에 개입하는 지점을 독자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책은 그와 같은 지점을 어떻게 보면 다소 무성의하게 뭉뚱그려서, 또 어떻게 보면 가장 이 책에 적합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책 속에서 연극과 연극이 충돌하고 교차되는 지점은 거의 예외 없이 '저절로',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문득' 등의 단어들로 채워진다. 놀라울 정도로 반복해서.
그렇다면 남자의 연극은 여자에게 빼앗긴 채로 끝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제 남자의 연극은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여자의 연극으로, 여자의 삶으로, 여자에게로 침범한다. 책의 2부와 함께 시작되는 남자의 연극은 다음과 같다.
우선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사실상 여자 하나이므로 연극은 일인극이다. 이때 공간적 배경은 분명하게 명시되지 않으나 책에서는 여자의 집인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자는 자신에게는 분명 낯선 집인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현관문 문틀을 손으로 더듬어 열쇠를 찾아내고, 손님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대화 상대의 존재를 잊는다. 둘째, 남자가 죽은 여자의 시체를 유기하기 위해 여자의 집을 찾아갔을 때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빈집의 현관문 위쪽을 더듬어 열쇠를 찾아낸다. 셋째, 남자는 열쇠를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고 집을 떠난다. 여자의 집을 방문한 사건과 여자의 시체가 유기된 사건 중 무엇이 먼저 발생했을까? 그러나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관심이 없다. 다만 독자는 '아, 뭔가 계속 반복되고 있고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건이구나' 정도의 해석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연극이 계속해서 맞물리고 충돌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나아간다.
다음으로 연극의 행동은 빛이 여자에게 떨어지는 일을 기점을 전후로 하여 '춤 추기'와 '글 쓰기'로 나뉜다. 여자는 자신의 안에서 발화된 그 무엇, 내면의 말, 해독하지 못하는 말을 통해 자신을 태우며 춤을 춘다. 흥미로운 것은 '춤 추기' 이전에도 여자에게 빛의 폭발과 섬광이 쏟아지며 이후에도 빛이 여자에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때 이 빛 역시 연극의 개입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빛이 아주 짧은 순간 여자의 얼굴과 몸으로 떨어진다. 여자는 고개를 들고 빛을 바라본다. (...) 불현듯 여자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침대 아래의 여행 가방을 열고 검은 가죽 표지의 커다란 노트와 연필 한 자루를 꺼낸다.
이후 여자는 '시간이란 무엇인가', '여자 자신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 속에서 여자의 삶과 내면의 말을 인식하고 질문한다. (이 책에서 사용되는 다인칭 시점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 모든 얘기는 결국 여자, 즉 우루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여자는 동물원에서 발생한 남자의 죽음을 보도하는 라디오 뉴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탑승했다고 묘사되었던 배의 추방에 대한 뉴스를 듣게 된다. '춤 추기'에서는 여자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했다면 '글 쓰기'에서는 남자의 이야기로 확장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독자는 계속해서 이러한 이야기의 총체가 '남자가 기획한 연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어쩌면 이 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이 갑작스럽게 등장한다.
불현듯 라디오의 전파가 교란되며 한동안 잡음과 함께 여러 방송의 목소리가 불균일하게 섞인다. 한꺼번에 밀려온 조각난 목소리의 파도가 물러간 순간, 갑자기 놀랍도록 선명하게, 마치 날카로운 비명과도 같은 한 구절이 들려온다.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
도대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문장, "어머니가 죽었다 내 기원의 징후가 사라졌다!"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확실한 것부터 살펴보자. 이 구절이 들려온 직후 여자의 반응은 '모든 것이 낯설고, 비명을 지르거나 눈물을 흘리고 싶고, 미지의 재앙 속에 머물고 싶음'이다. 또한 여자는 그제서야 손님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그와 식사를 한다. 나아가 자신이 쓴 글을 손님에게 읽어주기 시작한다.
이것은 여자가 위 구절을 통해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이 연극의 일부라는 것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언제부터인지 집에 미리 와있었다고 진술된 손님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인식하고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곧 연극이라는 제한된 범주 속에 갇혀 있던 캐릭터(배우)가 범주 바깥에 놓인 작가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인극의 배우가 작가를 향해 자신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작가의 글과 배우의 글, 작가의 연극과 배우의 연극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시간은 항상 앞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일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나를 사로잡는 생각이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 시간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일어날 모든 일이, 모든 이의 과거와 미래가, 모든 이의 기억과 망각이, 영원히 반사되는 무수한 거울 속 그림이 결국 하나이듯이, 어떤 의미에서는 동시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시간이 고전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의 존재와 의미를 증폭한다는 뜻일까.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연극의 주제의 경우 다음과 같다. 연극의 초기 주제는 교사(남자)와 학생(여자)의 사랑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책 속에서 '흉측한 유년기', '끔찍한 이야기' 등 여러 표현의 변주가 사용되며 여자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드레스를 입거나 구두를 신고 화장을 한다는 진술에서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86쪽에서는 '학교에는 우리가 특별히 사랑하는 교사가 있었다. 그는 젊었고, 늘 짝이 안 맞는 서로 다른 붉은 양말을 신거나 얼룩이 묻은 셔츠를 입고 다님으로써 자신의 젊음과 자유를 과시했다'라고 나오는데, 붉은 양말은 여자가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만든 선물이며, 이 책에서 얼룩이란 '극단적으로 이른 나이에 초경을 시작한 소녀의 흔적'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자의 연극은 여자의 연극으로 뒤바뀐다. 이때 새롭게 등장한 주제는 학생(여자)의 사랑이다.
그 연극은 내가 홀로 대사를 주고받았던, 혼자의 춤으로 무대를 채웠던, 관객 없는 일인극이었다. (...) 더러운 셔츠에서 풍기는 땀 냄새, 짝이 맞지 않는 붉은 털양말, 그가 손바닥으로 내 뺨을 때리는 것이, 마치 치명적인 춤처럼, 느린 동작으로 오래오래 반복된다.
여자가 혼자의 대사, 혼자의 춤, 일인극 공연을 펼쳤다는 것은 곧 남자를 배제했으나 여전히 남자를 향하고 있는 자신만의 사랑으로 기존의 사랑을 갈음했음을 의미한다. 이때 왜 남자는 배제되어야 하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왜 그가 여자의 뺨을 때렸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층위에 놓여 있다. 성인이자 교사인 남자가 막상 미성년인 여자와 사랑을 시작하고 보니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사랑을 유기했다고 설명해야 할까. 마치 남자가 여자의 시신을 그녀의 집에 유기했듯이.
그렇다면 여자의 연극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살펴보자. 아마도 여자 역시 남자가 왜 그러한 반응을 보였는지, 왜 자신과의 사랑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없었는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자신의 연극 속에서 '남자 교사'를 '남자 학생'으로 격하 혹은 격상시킨다. 또한 기존의 남자 교사라는 인물이자 배우를 그대로 연극 속에 남겨 두어 남자 교사와 남자 학생이 각각 존재하도록 설정한다.
여자의 연극 속에서 여자는 자신과 동급생인 남자와 함께 학교를 다닌다. 또한 남자 교사는 여자 교사와의 약혼 후 자살하며, 여자 교사의 원망은 여자를 향한다.
여자 교사는 우리가, 우리 네 명의 소녀가, 80명의 학급 전원이 남자 교사를 죽인 거라고 사방팔방 앙칼지게 떠들고 다녔어요. 우리는 단지 그가 시키는 대로 연극을 한 것뿐인데 말이죠. (...) 그가 기어들어간 책상은 당연히 바로 내가 앉아 있는 책상이었고, 그래서 내가 수업 시간 내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터무니없이 커서 무릎 위까지 훌쩍 올라오는 더러운 붉은 양말 한 짝을 신었다 벗기를 반복하는 것을 (...) 다리 사이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리는 광경을 마치 닿을 듯이 가까이, 그야말로 코앞에서 목격했다고도 해요.
그런데 여자의 연극 속에서 '가난한 집안 탓에 학교를 마친 후에는 동네 목공소에서 잔심부름을 했다던' 남자는 여자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병에 걸렸어. 기억이 생생해지는 병이야. 최근 들어 아주 오래전의 어떤 기억이, 그와 관련된 모든 디테일이 전부 눈앞의 그림처럼 생생해지고 있어.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일이, 갑자기 엄청난 의미로 각인되면서 내 의식 전체를 장악해 버려.
결과적인 변화의 양상은 다를지언정 그 과정 자체는 여자에게 빛이 떨어지는 순간 혹은 라디오에서 비명과 같은 구절이 들려온 순간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여자의 연극에도 남자의 연극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지닌 '최초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다음 글에서는 최초의 기억이 연극 간의 개입을 가능하게끔 하는 구조를 살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