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음악가들은 장르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채롭고 자유로운 음악을 통해 각자의 개성을 표현한다. 대중의 경우에도 다양한 플랫폼 및 SNS를 통해서 비교적 쉽게 음악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자연스럽게 음악 시장의 주체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러나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형식이며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되어 온 음악적 틀이라는 인식 탓에 감상자 입장에서는 온전히 음악을 즐기고 받아들이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감상자가 보고 느끼는 클래식 이전에 과연 클래식을 업으로 삼은 음악가가 생각하는 클래식이란 무엇일까? 베를린 국립예술대학교 입학 후 오페라 전공 최초 심사위원 만장일치의 최고 점수로 졸업한 것에 이어 베를린 필하모니, 콘체르트하우스 베를린, 본 베토벤 홀 등 유럽 클래식의 정상급 무대들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이형욱 성악가의 클래식을 만나보자.
음악 뒤에 숨겨진 이야기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악가이자 강의자로 활동 중인 베이스 이형욱입니다. 현재 웨스턴성악협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공연을 시작할 때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오르시나요?
지금까지 17년을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면서 많은 무대에 올랐고 독일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페라 공연이 있었어요. 매일 제 생각을 작품에 맞춰서 무대를 준비했고 <토스카>나 <라보엠> 같은 오페라에서 제가 맡은 배역, 캐릭터에 항상 몰입한 채로 있었던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면 또다시 다가오는 작품, 다가오는 강의가 떠오르기 때문에 바로 다음 작품에만 집중하게 돼요. 20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는데 사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속 시원하다', '후련하다'가 아니라 관성처럼 다음 작품을 또 준비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독일에서 생활한 지 10년 차 즈음에 권태가 찾아왔어요. 당시 소속되어 있었던 악단에서의 인종차별, 권태, 외로움 등으로 인해서 우울증을 앓았고 그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당시로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는데 거의 2년 가까이 공백기가 있었죠. 다시 공연자, 강의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을 때 다시는 두 번째의 권태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매 공연은 제게 주어진 선물이고, 그러한 순간들이 제게는 감사이자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학생들 앞에 설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큰 감사함이죠.
권태와 마음의 병으로 벗어나 변화를 겪게 되었던 계기가 무엇인가요?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을 때는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많이 복용했어요.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들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저를 살리셨어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정말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제가 나았음을 느끼고 약을 버렸어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어떤 순간에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뒤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물론 원래도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신앙을 지키지는 못했어요. 독일에서 생활했던 당시에는 예배를 드릴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고, 유럽은 음악가들에게 주말(일요일)이 대목이라서 특히 또 바빠요. 믿음의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순간의 변화가 찾아오면서 제 안의 믿음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던 거죠. 의사로부터 사람을 가둬두는 정신병원을 추천한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중증의 병을 앓았던 제가 그때 이후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소리보다 말에 집중하다
성악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과거 음악을 배우고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던 시절, 음악이란 소리의 전달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가진 테크닉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더 잘 느끼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서양인들과의 경쟁이라고 하면 우선 그들과의 체구의 차이가 있는데, 성악은 결국 목소리로 내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들이 30%의 노력을 한다면 저는 90~100%의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고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끝없이 소리를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그런데 우울증과 공황장애로부터 다시 살아나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시는 그런 음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면 나는 소리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이제는 소리가 아니라 가사를 전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로는 소리가 아니라 가사에 초점을 두고, 어떻게 하면 내가 노래하고 있는 가사를 정확하게, 감정에 충실해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소리의 레퍼토리가 아니라 가사 위주의 유익한 노래들, 영혼을 깨우고 정화하는 음악을 지향하기 때문에 제가 선정하는 노래들은 말이 많은 노래들 위주이기도 해요. 저는 궁극적으로 관객은 가사를 듣고 감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소리를 우선순위에서 밀어내고 가사를 다시 위에 올려놓게 되었고 그때 소리가 아니라 가사로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매 순간 관객과 함께 배워가는 것만 같아요.
파스칼 키냐르는 '말하는 이가 몰락하고 나서야 청자의 완전한 청취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가사에 대한 집중이 오히려 관객이 음악을 감상하는 데 있어 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악가가 소리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해요. 마치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관객에게 음을 들려주는 것과 같아요. 사실 공연장에 찾아온 관객들이 소리 자체에 집중하는 시간은 5분 미만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이 흐트러지죠. 그런데 소리를 내려놓고 가사에 집중하면 관객들이 가사를 끝까지 들으려고 해요. 말하자면 소리에 포커스를 두는 것은 '나 중심'의 음악이지만, 소리를 버리고 마치 성악가가 아닌 연극배우인 것처럼 노래를 하고자 한다면 관객은 소리가 아니라 말을 듣게 되고, 말을 듣고 나면 성악가의 표정을 보기 시작해요. 제 얼굴의 표정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이건 이미 다른 층위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내 소리를 관객들에게 강요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하게 되죠. 소리로부터 나오는 감동을 관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라 그 순간 온전히 음악을 공유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해요. '왜 뮤지컬과 성악이 달라야 하는가?' 라는 질문도 던질 수 있어요. 관객들은 성악 공연에서는 소리에 집중하고 뮤지컬에서는 말에 집중해요. 그러나 그러한 양자는 얼마든지 교차되고 전위될 수 있어요. 그전까지 저는 청중에게 소리를 강요했지만 내가 소리를 버리고 나면 관객들 역시 소리를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나의 소리가 몰락하자 비로소 완전한 청취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과 예술가
성악가님은 음악에 담겨있는 영혼이 고스란히 청중에게 전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음악이 세계 2차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한 장르이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음악이 반드시 영혼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점이 제가 되도록이면 유익한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던 이유에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음악일 수 있고 또 음악 때문에 영혼이 다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좋은 음악가들의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해요. '특정한 장르는 들으면 안 된다'가 아니라 연주자의 영혼이 곧 음악의 영혼이 된다는 것이죠. 음악가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사람이어서 자신만의 삶과 관점에 집중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인격 자체가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하게 바뀌기도 해요. 그렇게 된다면 그게 어떤 장르가 되었든 청중한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없어요. 음악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서 볼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나쁜 음악가의 훌륭한 음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음악은 듣는 사람이 그것을 소화해서 몸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음식을 소화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돼요. 음악을 하는 나의 영혼이 맑지 않으면 그것은 관객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죠. 관객은 어떤 음악이든 그 순간에는 그것에 몰입하여 즐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서 관객의 영혼 속에서 그 음악이 잘못된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관객이 결코 좋은 음악을 감상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연주자의 인격은 굉장히 중요해요.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서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저는 여러 음악을 다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이 들어본 음악 중에서 편식을 시작하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요? 관객의 영혼이 음악가의 영혼을 닮아가니까요.
감상자가 항상 예술가의 의도대로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수용과 해석의 측면에서 연주자와 관객 간의 충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의도를 잘못 해석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사람들이 한국 가곡이든 외국 오페라든 마치 성가곡을 듣는 느낌으로 감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 역시 제 모든 무대를 기도로 시작해요. 예컨대 모차르트의 잔혹한 아리아가 제 목소리를 통해 청중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이 받아들이는 음악은 온순해지길 바라요. 개인적으로 누군가가 저에게 제 노래는 무엇을 들어도 성가곡을 듣는 것 같다고 비평하는 것이 좋아요. 그것은 제가 담아내고자 하는 음악 속의 영혼을 발견해준 거니까요. 제 노래, 제 언어가 제 입에서 떠난 순간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는 처음부터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죠.
클래식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현재 성악가님의 삶 속에서 음악은 어떻게 규정되나요?
처음에는 절대적인 생업이었고, 한국에 귀국한 이후 중반기에는 제 삶의 전달자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바뀌기 시작하는 단계라고 느껴요. 음악에 대해 전보다는 좀 더 가르치는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시간의 비중이 커지면서 혼자 고민하고 연구하던 음악이 변화를 겪은 부분도 분명히 있고요. 무대에 서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하던 초반에는 좀 우울했어요. '왜 더는 나를 찾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그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기량이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이 기량을 사용하는 비중과 방향성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요. 이제는 제 음악을 학생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처럼 생각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클래식이라는 장르는 앞으로 어디에 위치하게 될까요?
클래식은 움직일 수 없고 변함이 없어요.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로부터 시작한 클래식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회적 영향력으로 소멸될 수도 없고, 예전과 같이 계속해서 공유되고 연주되어야 할 것으로 남아있죠. 시대의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클래식을 향유하는 관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데 이를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연주자들이죠. 제가 만약 지금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공연한다고 한다면 그 당시에 공연되었던 오페라의 동일한 흐름과 퀄리티를 제공할 경우 관객은 떨어져 나가요. 연주자는 계속해서 다변화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해서 관객을 끌어오고 시대의 흐름에 대응하는 재능과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거죠. 그래서 연주자는 음과 노래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해요. 결국 새로운 클래식을 기획해야 하고 그러한 클래식 공연을 이어가기 위한 재원이 필요해요. 클래식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 클래식 음악 투자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부분은 선진국화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클래식이 그저 특정인들을 위한 장르로 생각되고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요.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것이 '좋습니까, 나쁩니까'라고 누군가에게 물어보면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클래식이 좋은 음악이라는 건 모두가 알지만 그 음악이 열리는 공간이 관객들로부터 너무 멀어요. 그래서 관객들을 끌고 오는 건 연주자의 기획이에요. 저는 뮤지컬과 오페라를 동시에 공연해 봤는데 뮤지컬이 너무 재밌었어요. 뮤지컬은 연주자들이 달라요. 왜냐면 그들은 연기를 하면서 관객들에게 가사를 전달하고 있거든요. 표정 연기가 살아있고, 관객들은 동시에 가사를 들으면서 감동을 하죠. 반면 오페라는 성악을 하면서 소리를 전달해요. 오페라 공연에서 그걸 알아듣기 위해 관객들은 연주자를 안 보고 자막을 보고 있어요. 즉 연주자에게서 눈을 떼고 있다는 것이죠. 왜 꼭 오페라는 원어를 고집할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팀처럼 해외의 저명한 팀이 한국에 왔다는 것 자체는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좋은 선물이 주어지기 전에 투란도트라는 작품이 외국처럼 특정 극장, 특정 시즌에 적어도 7~8번은 공연되어야 하고 그걸 본 사람들이 그 내용과 연출을 대략적으로 알고 공연을 보러 와야 해요. 그렇게 되면 자막을 보지 않아도 연주자를 볼 수 있어요. 그런 저변이 마련된 상태에서 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유명한 팀이 온다고 광고를 하면서 공연을 대형화하고 수익을 노리는 것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클래식이 장사가 되어서는 안 돼요. 클래식은 수익을 위한 장르가 아니고 삶 속의 다른 윤택함을 더해주는 음악이니까요.
그렇다면 좋은 연주자의 기획 예시를 하나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클래식 성악가와 뮤지컬 가수와의 만남이 필요해요. 많은 분이 가사 전달력, 연기력, 성악의 발성과 같은 요소에 있어서 서로의 능력을 배우기를 원해요. 서로가 서로를 티칭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무대에 함께 서는 가수로서 협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물론 대중가요와의 어느 정도 분리가 필요하겠지만 뮤지컬과의 협업을 통해 성악가가 뮤지컬 무대에 설 수 있고 뮤지컬 가수가 성악 무대에 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기악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로 바이올린은 기타와의 협업도 가능하고 국악과의 협업도 가능하겠죠. 또한 반드시 성악가만의 독창회가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고 봐요. 성악가와 협연할 수 있는 다른 예술가들을 섭외해서 함께 출연하며 어우러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해요. 연주자들에게는 혼자 개인으로 작품을 발표해야 하는 사명이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대다수의 독창회에 관객이 많지 않아요. 왜 관객이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연주자가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와야 한다는 지점까지 이르게 돼요.
앞으로의 삶
클래식 음악가들이 관객과의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요?
클래식을 오래 공부하고 또 해당 분야에서 오래 고생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예를 들어 저는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연에 지휘자 역할로 많이 초대받는데 그때 누군가에게 음악을 알려준다는 사명감과 더불어 기쁨을 느껴요. 또 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그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알지 못했던 부분을 살펴보게 돼요. 이런 측면에서 저는 성악가이자 교수로서 관객과의 간극을 좁히고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가장 좋아하시는 대중가요 음악이 무엇인가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좋아해요. 이 노래 역시 소리가 아니라 가사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사실 세대가 어린 가수일수록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돼요. (웃음) 가사 전달이라는 측면에 있어서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저도 늙어가지만 저와 함께 늙어가는 세대가 많아질 거예요. 고령화된 이 세대에서 지금의 십 대, 이십 대에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함께 늙어가는 세대에 음악을 전달해서, 그들의 여생이 저의 음악과 함께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공연을 하든 학생들을 가르치든 어떤 방식이라도 좋으니 음악을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들의 세대를 위한 강의를 하고 싶어요. 젊은 세대가 표를 사게 만드는 것 역시 은퇴하게 될 저의 역할이 될 수 있고 어쩌면 그러한 연습을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지금으로서는 학생들과 만나 음악을 나누는 일이 너무 행복하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다가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