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전시를 가지도 않았으며, 공연 한 편도 소비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떠올리는 순간 묘한 불편감이 느껴졌다. 단순히 ‘바빴다’라는 이유로 넘기기엔 어딘가 찜찜했기 때문이다. 마치 외출 전 중요한 무언가를 빠뜨리고 집을 나서는 사람 혹은 스스로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문화생활을 하지 않은 일주일이 왜 이렇게까지 공백처럼 느껴지는 걸까. 언제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봐야만’ 시간을 제대로 보낸 것처럼 느끼게 되었을까.
사실 이번 주가 다른 한 주에 비해 특별히 더 바빴던 것은 아니다. 일정을 마친 후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여전히 존재했고 잠들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도 분명히 있었다. 그 시간에 나는 자연스럽게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켰다. 추천 목록에는 수십 개의 드라마와 영화가 떠 있었고,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 당신이 좋아할 콘텐츠’라는 문장이 화면 위에 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들지는 못했다.
목록을 넘기고 넘기다가 나는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화면을 껐다. 이러한 모습은 이번 주 내내 반복되었다. 콘텐츠는 넘쳐났지만 그 어느 것도 ‘지금 보고 싶은 것’이 되지 못했다. 보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는 상태. 이 아이러니한 감각은 점점 피로로 바뀌었고 결국 나는 ‘보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문화생활을 ‘능동적인 소비’로 정의한다. 전시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고, 영화를 챙겨보는 것. 일정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특정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는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다. 하지만 때로, 이 기준은 은근한 압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번 주에 본 영화가 없는 사람, 최근에 다녀온 전시가 없는 사람은 어딘가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특히 SNS 속 보여지는 화려한 타인의 일상은 이러한 감각을 더 강화한다. 누군가는 새로운 전시를 보고, 누군가는 화제의 공연을 관람하며, 또 누군가는 최신 드라마에 대한 감상을 공유한다.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는 자연스럽게 공백처럼 인식된다.
하지만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다. 외출하는 길 지하철에서 나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무표정한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이어폰을 낀 채 지친 표정이 역력하던 그 사람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집에 돌아온 후에는 익숙한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새로운 곡을 찾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멜로디를 계속해서 재생하는 쪽이 더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노을의 색이나, 길거리에서 잠깐 마주친 풍경들이 조용히 머릿속에 쌓여갔다.
이 경험들은 보통 ‘문화생활’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티켓이 필요하지도 않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애매하며, 타인에게 공유할 만한 사건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들 역시 나의 감각을 통과하며 어떤 흔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비’할 때만 경험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
어쩌면 그 어떤 ‘문화생활’도 하지 않은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문화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문화로 인정되는 기준’에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전시, 공연 등 특정한 형식 안에 들어가야만 문화로 인정되는 순간, 그 외의 모든 일상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계획된 콘텐츠보다 우연한 장면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 화려한 공연보다 조용한 풍경 속에서 더 오래 머물기도 한다.
또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해야 한다는 압박은 결국 피로로 이어진다. 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문화생활이 아니라 ‘봐야 할 것 같은’ 의무로 변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즐길 수 없게 된다. 이번 주 내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이유 역시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어쩌면 이 과잉된 선택지와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반항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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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덜 선택하고, 덜 소비하는 대신, 흘러가는 순간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봤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장면들,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감각들, 그리고 특별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러웠던 시간들.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경험이 되었고, 어쩌면 그것 역시 충분히 ‘문화적’인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문화생활은 반드시 어딘가를 다녀와야만 완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채, 그저 흘러가는 순간 속에 머무르는 것. 그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자, 우리가 놓치고 있던 또 다른 형태의 문화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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