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영화를 설명받기 시작했을까: HOPE 호프
오랜만에 감독의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영화를 봤다. 영화관을 나설 때의 감정은 의외였다. 작품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작품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에 대한 실망이었다.
상영 직후 SNS와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감독이 해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 "시간만 버렸다." 물론 모든 영화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홍진의 《호프》는 결코 불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던지는 상징과 메시지는 예상보다 직접적이다. 감독은 수많은 장면을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 우리가 외면해 온 사회의 얼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럼에도 많은 관객은 영화를 이해하기보다 설명을 요구했다.
요즘 영화를 둘러싼 콘텐츠를 보면 작품을 감상하는 일보다 '결말 해석', '10분 요약', '복선 총정리'가 먼저 소비된다. 영화를 본 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조합하기보다, 정답을 찾아 확인하는 일이 감상의 마지막 단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빈칸을 남기는 영화는 곧바로 '난해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영화는 문제집이 아니다.
감독은 정답을 맞히라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관객이 그 질문 앞에서 생각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끝내 이해하지 못한 채 돌아가는 경험 역시 감상의 일부다. 모든 장면을 대사로 설명하고, 모든 상징을 친절하게 번역해 주는 순간 영화는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 설명서가 된다.
물론 《호프》가 완벽한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몇몇 CG는 화면에서 이질적으로 튀었고, 그것이 의도된 연출인지조차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만약 의도였다면, 나에게는 충분히 설득되지 못했다.
정호연의 연기 역시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후 전개에서 캐릭터의 정체가 드러나면 재평가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적어도 1부에서의 연기는 연기와 부자연스러움의 경계가 모호했다. 후속편을 전제로 한 설계라면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향한 가장 많은 비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였다는 사실은 의아했다. 정말 영화가 난해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영화를 읽는 감각을 조금씩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모든 영화가 친절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떤 영화는 관객에게 약간의 불편함과 혼란을 남겨야 한다. 그 빈틈을 메우는 과정에서 비로소 감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영화를 생각의 대상이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대한다. 이해되지 않으면 영화의 책임이라고 말하고, 곱씹기보다 해설을 찾는다. 그렇게 감상은 점점 짧아지고, 질문은 사라진다.
실험적인 영화가 언제나 좋은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가장 먼저 "이해 안 된다"는 이유로 밀어내는 문화는 결국 새로운 영화를 만들 토양까지 좁게 만든다. 익숙한 서사와 익숙한 연출만 살아남는 환경에서 영화는 발전하기 어렵다.
《호프》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우리는 정말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어쩌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과정을 점점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