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러니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것만 같은, 언제 들어도 반갑기만 한 금호아트홀의 가라앉는 종소리를 들을 적에는 기쁨보다 반가움이 앞선다.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 공연 시작 전에는 늘 연주자 한 명이 대표로 나와 오늘의 곡들에 관해 설명을 해주는데, 그런 시작이 있다는 사실을 적막한 무대 위에 조명 하나가 오른쪽 혹은 왼쪽 무대 끝에 둥글게 떠오르고 나서야 ‘아, 맞다. 이 코너가 있었지’ 하고 불현듯 깨닫는다. 바보다. 바보.
이날의 보름달은 오른편에 떴다. 아레테 콰르텟의 상주음악가 무대나 트리오 서울 공연을 보러 왔을 땐 늘 왼편에서 등장하셔서 하염없이 그쪽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반대편 공간에 빛이 생기길래 ‘오잉?’ 하며 그 작은 색다름에 혼자 꺄르륵거렸다.
달이 내려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우찬 첼리스트가 나타났다. 첼리스트의 공연 소개에 앞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어디서 세월을 느꼈던가. 바로 머리 길이다! 작년 11월, 이든 콰르텟의 리사이틀 무대에서 본 그는 분명 머리가 짧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던가!
정우찬 첼리스트는 마이크를 통해 이렇게 전했다.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와 한국과 독일에서 같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로 지냈고,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날 무대에서는 금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고악기를 사용하고 있어 특히 풍부한 색채를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렇다. 오늘의 무대에는 두 명의 숙련된 연주자도 있지만, 무려 1774년 제작된 과다니니 투린 바이올린과 1600년대에 제작된 지오반니 파올로 마찌니 첼로도 함께였다.
두 악기를, 금호아트홀이 아닌 다른 공연장에서 만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연주자가 아닌 악기에 눈길이 빼앗겼냐 싶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한 번씩 눈이 저절로 가버린다.
두 악기를 바라볼 적에는 연주자의 노래 안에서 곡의 흐름이나 연주 실력, 혹은 작곡가의 훌륭한 선율을 감상하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확 끼얹어지는 강한 성량감이 있다.
그게 고음이든 저음이든, 연주자가 힘을 한 번씩 강하게 내비칠 때, 그들이 유도한 것 이상으로 드러나는 강렬한 확장감이 나타날 때면 연주자의 얼굴이나 손을 바라보던 시선이 현악기의 f홀 부근으로 옮겨 가버린다. 쟤는 누구니...?
그러니 나는 기꺼이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측 불허의 동굴 소리를 품은 두 그루의 나무와, 작곡가에 따라 서로 다른 캐릭터성을 보여내는 두 명의 연주자의 조합으로 만나볼 바흐와 라벨, 그리고 코다이를.
유다윤 & 정우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건반을 위한 15개의 2성 인벤션, BWV 772–786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
No.1 in C major, BWV 772
시작부터 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첫 시작을 듣자마자 다시 깨달았다. 맞다. 이 곡, 바흐 거였지? 개성을 앞세우는 때가 아니었지. 그래, 누가 도입부터 힘을 빼겠어? 산뜻하게 인사해야지.
신기했던 건, 이때의 바이올린이 한 번씩 하프시코드가 한 계단 내려갈 때의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아, 신기했다.
No.2 in C minor, BWV 773
둥둥 소리가 동동. 연주자들의 무대 위에서, 그러니까 바이올린이 첼로보다 높은 곳에, 첼로는 바이올린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소리를 동동 천장 아래로 사이좋게 나눠 가진다. 서로 다른 걸음으로 두께감을 달리하며 걷는다.
그 차이를 인식하는 재미가 여기에 있다.
No.3 in D major, BWV 774
아마 조금 더 신이 오른 양상의 세 번째 인벤션이었다. 피아노와 현악기 듀오에 익숙해져 있다가 매력이 다른 현악기 두 대가 그야말로 어우러져 버리는데, 두 말이 필요하겠나? 그냥 서로 간에 감겨 나가는 모습을 구경하면 그만이다.
No.4 in D minor, BWV 775
때에 따라 한 번씩 바닥을 짚어 나가면서 비행을 이어 나가는 순간이 있었다. 꼭 이렇게 포인트를 남겨주는 구석이 있다. 한 명이 짧은 소리를 내면 다른 이는 꼭 길게 곡선을 완만하게 풀어내 준다.
이렇게 각 곡마다 짧은데도 서로 다른 스텝을 오선지에 그려 넣다니. 바흐가 새삼 무서워진다.
No.5 in E-flat major, BWV 776
이때쯤엔 뭔가 손을 까닥이고 싶었다. 바이올린은 고개를 들어 올리고 첼로는 흙 쪽으로 그늘을 만들어 내는데, 그 사이에 사람과 대각선의 소리가 있다. 계속된 걸음이다.
No.6 in E major, BWV 777
예습하며 이 곡을 가장 기대했었는데, 내가 예상했던 호흡보다 빠른 속도감에 ‘오’ 했다. 그러니까 그들이 만약 탕수육 게임을 한다면 나는 ‘타앙’ ‘수우’ ‘유욱’ ‘타앙’ 이렇게 할 줄 알았는데, 오늘의 악기는 ‘탕!’ ‘수!’ ‘육!’ 한 것이다.
첼리스트가 예고했던 환상의 호흡을 여기서 엿볼 수 있었다. (아하하!) 확실히 그들이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순간들이 간접적으로 엿보였다. 그게 아니고야 이렇게 서로의 음에 엮여 들 수 있겠는가?
No.7 in E minor, BWV 778
아주 살짝 위엄 있어 보이면 어떨까? 어떻게 사람이 매번 둥둥 날아오를 수만 있겠는가. 진동도 하고, 다른 사람 말에 귀도 기울여 보기도 하고, 해 질 녘에는 막아설 수 없는 졸음에 고개도 갸우뚱할 시간이 있어야지.
짧은 이야기들이 때마다 이어진다.
No.8 in F major, BWV 779
그새 해가 떴나 보다. 다음 날이 분명하다. 아침 햇살 아래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어깨를 으쓱거릴 수 없다. 계속해서 진출해 나가는데 헤매는 기색이 없다는 게 바흐의 매력인 것 같다.
짧은 길에도 진취성이 가득하니!
No.9 in F minor, BWV 780
또 밤인가 보다. 하루가 이렇게 빨리 가버린다. 요새 집에서 스텝퍼 운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딱 발바닥으로 운동 기구에 올라선 지 20분 정도 됐을 때의 고난감과 유사한 리듬이 가득하다.
대단히 느릿하진 않은데 뭔가 사람을 멈춰 서게 만들고 싶은, 기운으로 따지면 무더위 속에 느껴지는 무게감 정도랄까. 적당히도 무겁다.
No.10 in G major, BWV 781
어둠이 있으면 아침이 있다지만, 이렇게 한 곡마다 들여다놓을 줄은 몰랐다. 클래식 속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매번이 처음 듣는 곡일 경우에 발생하는 예측 불허의 흑과 백은 늘 흥미롭다.
이 악장에서 눈에 띄었던 건 첼로가 그렸던 완만한 곡선의 빠르고 기다란 파동을 바이올린이 했다는 것이다. 역시 현악기가 짱이다!
No.11 in G minor, BWV 782
이때쯤엔 사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냥 커다란 도화지에 붓이나 크레파스를 하나 들고, 들리는 대로 꺾이는 모양이 구역별로 다른 곡선을 그렸으면 좋았겠다.
꽤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단한(?) 그림이 나타났을 텐데.
No.12 in A major, BWV 783
이 곡이었다! 스텝퍼를 타고 30분이 넘어가는 사이에 이 곡을 들으며 활력을 얻었다. 11번을 지나오니 뭔가 더 생글거리며 무릎을 더 들어 올리는 모습처럼 목격되는데, 어찌 내가 발을 구르지 않을 수 있을까?
No.13 in A minor, BWV 784
6번에 이어 이 13번이 이상하게 자꾸 반복 재생하게 만드는 악장이었다. 왤까? 지나온 곡들 중에는 그나마 무표정에 가깝고, 차분히 자리 잡은 채로 나아간다.
때에 따라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힘이 높은 음을 그릴 때 한 번 드러나기도 해서 좋았다. 바흐의 곡 안에 있으면 연주자들이 정말 본인의 것을 많이 내려놓지 않던가. 난 많이 드러나는 게 좋은데. (궁시렁, 맞다.)
No.14 in B-flat major, BWV 785
라벨이 뒤이어 온다는 사실을 괜히 반겨주는 것 같은, 굳이 예고편으로 삼아 보면 좋은 즐거운 마무리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14번이다. 슬슬 속도를 올릴 때인가?
반복되는 이별 중에서 이 악장의 끝이 가장 듣기 좋았다. 미련 하나 없이 딱 맞는 합이 깔끔했다.
No.15 in B minor, BWV 786
원점으로 돌아가서, 결국 바흐의 곡이 아닌가? 지나왔던 여러 변화구 사이에서도 첼로가 가장 첼로답게, 바이올린이 가장 바이올린답게 정직한 길을 내걷는다.
잔머리 굴릴 생각 하나 없이, 딱 정석대로!
모리스 라벨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M.73
I. Allegro
오늘의 부제는 ‘엮어듦’이 아닐까? 끊임없이 엮여 드는 양상과 나눠 가지는 발걸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서로의 발을 하나의 끈으로 묶어 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왼발이 바이올린이고 오른발이 첼로인 것이다.
호흡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냥 ‘호’와 ‘흡’이다. 바이올린이 호- 하면 첼로가 눈도 안 깜빡이고 흡-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위태롭게 느껴지는 타이밍에 음 하나 겹치지 않고 엮여 들 수 있는가?
소리만 들으면 시간의 흐름 탓에, 지나치게 함께 오래해 와서 서로가 없어도 타이밍을 맞출 수 있게 돼 버린 사람들만 같다. 순식간이었다.
II. Très vif
아, 고악기 두 대가 본색을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튕글’이 진짜 세다. 물 안에 대포를 쏘고, 정면으로 마주한 오후 두 시의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는 느낌이다.
진짜 세다. 첼로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저렇게까지 ‘당겨도 되는 거야? 당장 터져 버리는 거 아니야?’ 싶은 강도의 ‘빵’ 소리가 났다. 손에 큰 힘을 주지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는 거지?
싶은 찰나에 바이올린이 합세해 버리는데, 바이올린이 저렇게 성량이 센 것은 처음 봤다. 소리를 쟁여 놓고 유도하는 두 사람도 그렇고, 악기도 모두 뮤지컬적이다.
뒤로 고개를 젖혔을 때, 그러니까 일부러 힘을 내려놓고 얇아지기를 택할 때에도 그렇고, 갑자기 확 몰아붙일 때에도 밑바탕이 강한 사람들이 보여내는 그림자다.
III. Lent
시작에 앞서 유다윤 바이올리니스트가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잠시 첼로를 바라보며 기다렸고, 첼로가 긴 노래를 불렀다. 머지않아 바이올린이 그 뒤를 얌전히 이어받고, 첼로가 그 주변을 별다른 설명 없이 맴돈다.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꼭 눈을 맞추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정이나,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듣게 되는 구급차 소리를 닮은 것들이 절묘하게 또다시 엮여 든다.
벽에 낙서를 박아 넣는, 기어코 손톱으로 지나온 자국을 박아 내야만 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속 좁은 절규가 바닥 선 위에 떠올랐다. 의자 밑으로 끝까지 가라앉을 수 있는 시간이 그곳에 있었다.
IV. Vif, avec entrain
또 달려! 가만 보면 4악장은 이렇게 기세 좋게 시작할 때가 많다. 방금까지 우리 침잠해 있지 않았나?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 레벨까지 왔지만, 놀라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한다. (아하하;)
라벨이 그려 놓은 째깍거림과 문 삐걱임이 공중에서, 때로는 카펫 위에서 왈츠를 추는데 누가 막을 수 있나?
바이올린이 한 번씩 박자 감각이 전혀 없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소리를 내던지고 순식간에 돌아오는데, 그 구간이 재밌다. 우쿨렐레 연주 같기도 하고.
짧게짧게 지나가는, 들을 때는 마을 잔치인 척 친근하게 선보여지는 ‘기교’가 기가 찬다. 아니, 끼얹고 내던지는 이 치열한 음표 타이밍을 서로 어떻게 맞추는 거지?
그 생각만 반복하다가 끝나 버렸다! 악!
졸탄 코다이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 Op.7
I. Allegro serioso, non troppo
코다이! 사실 이 곡이 연주된다는 사실을 이든 콰르텟 리사이틀이 끝나고, 그날의 첼리스트께 미리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매번 맞이해야 하는 클래식 지식의 세계 앞에서 새롭게 나타난 초면의 작곡가 이름에 나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이 소리를 내뱉고 말했다. “코다이는 또 누구야!”
엄살은 제쳐 두고, 시작부터 매우 연극적이다. 감정선이 꽤 다이내믹하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독백이 때마다 기운차다. 그런데 별다른 소리의 감상보다도 이 악장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진행되는 무대를 감상할 때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들이 무어라 하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사람이라면, 사람이 만들어 낸 극적인 서사에 한 번이라도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슨 일이 ‘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밖에 없는 사태가 그곳에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확실한 건 두 배우의 목에는 핏발이 섰고, 이마 위엔 땀방울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이상했다. 이 공간에 아무도 말하는 이가 없는데 대사가 들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저 무대 한가운데로 초점을 이렇게 맞출 수는 없다.
1악장의 어느 지점에 달하면 바이올린이 혼자 이명이 될 때가 있는데, 프로그램 노트를 보기 전 공연장으로 발걸음 하던 때의 나는 왜 이렇게 이 부분에서 버르토크(헝가리의 작곡가)가 생각나지? 했었다.
그런데 맙소사. 코다이와 버르토크가 친구란다.
그 사실을 객석에 앉아 하얀 페이지를 몇 장 넘기고서야 알았으니. 그럼 이 선율이, 이 익숙한 흐름이 헝가리의 민속주의적인 부분인 건가? 갖가지 생각이 들며 기뻐했다. 추억과 오늘이 연결되는 순간이 아니던가?
II. Adagio – Andante
이 2악장의 시작만 봐도 그렇다. 코다이와 버르토크는 친구가 맞다.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도입부와 이렇게 닮을 수가 없다. 어떻게든 내려앉게 만든다.
예전의 나는 아무도 없는 회색 방에 숨을 멎게 할 만큼 가득 찬 짙은 색의 물감을 떠올렸는데, 이날은 어땠던가? 첼로가 오른편에서 범처럼 으르렁대고, 바이올린이 잡아삼켜지는 짐승의 아우성을 내뱉는다.
합을 맞추던 그들은 어디 가고, 안쪽 방향으로 서로 할퀴어 내는 소리를 우아하게도 내놓는다. 먼지 하나 없는 고운 손수건이 낭자한 것을 닦아낼 때에도 그렇다.
이곳에 음악이 있던가? 악기가 있었나? 연주자가 그곳에 있었나? 글쎄. 두 명의 목소리만, 애원하는 바이올린과 애달픈 첼로의 원망과 체념만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때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III. Maestoso e largamente, ma non troppo lento – Presto
치고 빠짐이 이토록 예리하게 맹렬할 수 있을까 싶은 바이올린이고, 이렇게 안 다정한 캐릭터로 소리를 가지고 놀아도 되나 싶은 첼로가 있다.
이 극에는 끝도 없는 경주가 가득하다. 얼키고 설키고 달렸다가 풀숲에 숨었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불쑥 튀어나와 놀려 대는 모양새가 딱 걸음이 각각 5배속 된 토끼와 거북이의 게임이다.
대사에 이렇게 공백이 하나 없으니 숨은 어떻게 쉬나 싶었다.
이전에 라벨에서 있었던 특유의 마을 축제만 같은 소리들이 웅얼웅얼 끼어들기도 한다. 정말, 이 실내악의 매력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느 한 군데 찰나도 놓치지 못하고 끝이 날 듯 나지 않을 듯 밀당하며 빼곡한 단어들을 연속으로 내뱉는다. 첼로가 기타를 치고, 바이올린이 솔로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게 오페라가 아니면 뭐지?
이별은 또 바흐의 인벤션 14번처럼 했다. 깔끔하기까지?
이건 반칙이다. 반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