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드라마도 노래도 뜯어서 하나씩 분석해 보면 느끼지 못한 새로운 단 맛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건 내가 찾아낸 나의 맛이다. 특히 책 읽듯 천천히 읽는 가사들이 있는데, 아이유의 노래 가사다. 아이유의 세 번째 꽃 갈피. 그중에서도 계절과 참 어울리는 아이유만의 포근하고 상큼한 한 컵을 소개하려고 한다.
앨범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노래는 2002년 2월 20일에 발매된 박혜경의 '빨간 운동화'라는 노래이다. 원곡을 들어보면 아이유의 2011년 라스트 판타지 앨범의 음색과 비슷하다. 소녀 같으면서도 수줍은 사랑을 표현하는 원곡이다.
아이유는 첫 곡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했다.
"박혜경 선배님의 목소리는 기분을 반짝거리게 해주는 마법 가루 같다고 생각하며 어린 시절 아주 많이 들었던 곡입니다. 이 곡을 들으면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묶고 숨이 턱까지 오르게 내달리고 싶어집니다. 어디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는 기분 좋은 의욕이, 방금 막 뚜껑을 딴 샴페인의 거품처럼 샘솟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기분으로 이 봄을 맞이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번 트랙에 배치했습니다. 이진아 님께서 특유의 청량함과 재기 발랄함을 더해주셨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 몇 개월쯤 안됐을 때 이 노래가 나왔나 보다. 내가 아이유의 노래 중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묶고 기분 좋은 새 시작을 말하는 노래라 생각했던 건 아이유의 '새 신발'이라는 노래다. 그래서 항상 뭔가 새로 시작을 할 땐 '새 신발'을 듣곤 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씩 기분 좋은 따뜻한 바람, 주변 풍경을 한가득 담는 그런 한 아름의 숨을 가득 안고 듣는 노래다.
그렇게 아이유는 나의 '새 신발' 같은 아이유의 '빨간 운동화'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들었을 때는 곡 소개와 정말 유사하는 생각을 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5월에 듣기 참 좋은 노래다. 처음에 들어가는 드럼 심벌 소리와 빠르게 들어오는 도입부. 집을 나가기 전 새 숨을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을 때 그 기분 같았다. 기분 좋은 숨을 쉬고 새로운 마음으로 꽉 묶은 가벼운 신발로 아무의 방해도 거리도 없는 구름 위를 한껏 뛰어다니는 느낌의 노래.
원곡과 다르게 중간에 재즈 편곡이 들어가 좀 더 여유롭고 코러스와 화음이 노래를 더 사르르 하게 만들어준다. '새 신발'이 주변 풍경을 보며 한 걸음씩 꾹꾹 내디뎠다면 빨간 운동화는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한 날, 첫 데이트 날 장소로 향하는 걸음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벅차게 뛰쳐가는 마음이 생각난다.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솜사탕 같은 사랑 노래다. 몇 번 듣다 보면 절로 올라가있는 입꼬리에 놀랄 것이다. 기분 좋은 첫 시작이었다.
아이유의 어릴 적에 반짝이는 마법 가루가 박혜경의 '빨간 운동화'였다면, 나의 어릴 적 사회에 대한 첫 물음표를 남겨준 노래는 '네모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노는 토요일이라고 토요일에도 수업을 듣는 날이 있었다. 그때 종종 선생님은 다양한 노래를 틀어주셨는데 특히 이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유의 '네모의 꿈' 소개는 이랬다.
"어떤 시대의 어른이들에게는 지금의 '아기 상어'만큼의 상징성이 있는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그저 경쾌하고 재밌는 곡인 줄만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그 가사가 어쩐지 슬프도록 새롭게 들립니다. '보컬을 제외한 모든 사운드를 다 네모화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편곡의 방향성을 찾았습니다. 음악만큼이나 게임에 일가견이 있는 김제휘 작곡가와 문지혁 님이 본인들의 삶을 투영해 실력 발휘를 해주셨습니다."
이때는 그저 생각해 보니 세상에 네모난 게 참 많아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가사를 보면서 "우와 선생님 책상도 네모 칠판도 네모 창문도 네모 이름표도 네모네!" 하면서 하루 동안은 네모 모양을 보며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잘난 어른이 돼버렸다. 둥근 것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둥글게 모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아이유의 말처럼 나도 괜스레 이 노래가 슬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글을 쓰고 있는 책상에 놓인 것도 다 네모다. 네모난 플라스틱 물병, 네모난 외장하드, 네모난 USB 허브와 노트북 두 대, 네모난 곽에 든 영양제. 아직도 네모난 세상. 어린 나의 초등학교 책상 위에 놓인 것과 지금 놓인 것도 다르고 세상도 어쩌면 더 정교하게 깎인 뾰족한 사각형인 것 같다. 그렇게 들은 아이유의 '네모의 꿈'은 이 앨범을 마무리하기 좋은 곡이었다. 깔끔하고 가벼운 느낌. 마치 영화의 에필로그가 나오고 그 영화에서 깨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마지막 곡의 의도가 너무 귀여운 게 네모의 꿈이라 그런지 비트가 8비트다. 고전 게임할 때 나오는 뿅뿅 거림. 의도가 투명하게 보여서 더 귀여운 충격적인 귀여움이다. 뮤비는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린 동심을 불러일으키기 좋았다.
뭔가 어른의 마음속에 작은 동심을 불러내는 귀여운 네모의 꿈이다. 노래 가사 중에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이 부분이 지금에서야 먹먹하게 와닿는다. 세상이 참 네모나고 모났다고 생각이 들고 모두들 둥글게 돌아가는 게 아닌 무언가의 각들만 반듯하게 찾으려고 하는 게 시무룩해져 슬퍼질 때쯤 네모의 꿈을 듣고 있으면 그냥 귀엽게 네모가 상상하는 네모의 꿈이라 생각이 들기도 혹은 네모나진 우리의 꿈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꽃 갈피 하나와 둘보다는 잘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 나와서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아이유 덕분에 좋은 옛날 노래를 알아가는 것 같아 좋았다. 서정적인 가사와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들. 지금의 풍성한 베이스에 중독적이고 머리에 잘 남는 단어들이 들어간 노래도 좋지만, 조금은 더 담백하고 몇 장의 편지 같은 노래들이 더 나오길 바라기도 한다.
사진출처: EDAM엔터테이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