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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세상에게 이르는 문

카산드라와 나츠메와 나

by 정해영 에디터
2026.07.31 12:10

정확한 미래를 볼 수 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 비운의 카산드라를 부쩍 자주 떠올린다. 내가 명확히 인식하는 세계를 누군가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낙차를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외계인을 만난 것과 다름없는 당혹감을 느낄 때마다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는지. 어떻게 당신 말을 무시하는 바보들과 함께 살아가는지.

 

언젠가 <디바마을 퀸가비> 속 익살스러운 장면을 따라 했는데, 채널의 존재조차 몰랐던 상대의 당황한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속으로 말했다. 이 재밌는 걸 안 보고 뭐 하고 살았지. 이게 안 재밌으면 대체 어떤 유머에 웃는다는 거지. 아마 상대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이 재미없는 걸 보고 사는 건가. 이게 재밌으면 대체 어떤 유머에 웃는다는 거지.

 

끝없이 생각을 펼치면 나와 저이가 사용하는 언어 체계까지 다르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니까 정말 다른 생물인 것처럼, 기초적인 질서조차 다르게 짜인 느낌. 그런 너를 만나면 자연스레 굴복시키고 싶은 욕망이 든다. 한 뼘이라도 더 넓은 지평을 차지하기 위한 땅따먹기를 하게 된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더 옳고 중요하게 느껴지니까.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우리 사이엔 쌓여간다.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막연함이.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믿기 힘든 답답함이. 그런 너와 내가 같은 곳에서 같은 숨을 쉰다는 갑갑함이. 그럼에도 모두의 삶은 진짜라는 기이함이.

 

그 속에서 갈피를 잃는다. 나의 세계란 것이 정말 존재하는 건가. 진짜 세계의 모양은 무엇인가. 그들이 다른 형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 속에서 외로운 카산드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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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관점이 아닌, 물리적인 시야로 인식한 세계에 대해선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나츠메 우인장>의 ‘나츠메 타카시’는 요괴를 볼 수 있는 소년이다. 집, 길, 학교, 일상의 모든 곳에서 사람과 요괴가 함께 살고 있다. 문제는 그의 눈 안에서만 펼쳐지는 세상이라는 거다. 어릴적부터 요괴들의 장난에 시달려 도움을 구하지만 누구도 나츠메를 믿지 않았다. 믿지 못했다. 허공을 보며 소리 지르는 무서운 아이. 거짓말쟁이. 여러 꼬리표가 달린 나츠메는 일찍이 깨닫는다. 자신이 본다는 사실보다 타인의 인정이 앞선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난데모나이(아무 것도 아니예요)’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내가 보고 느낀 것도. 그로 인해 힘든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기쁜 것도, 행복한 것도, 모두 아무 것도 아니라고. 모든 게 내가 이상해서 그런 거라고. 자기가 보는 세상을 믿을수록 타자와 함께하는 세상에서 멀어지는 나츠메는 요괴는 없는 거라고 치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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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츠메 내면의 장벽은 두텁다. 누구에게도 주변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움과 멸시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쌓은 벽은 애정과 존중도 가닿지 못하게 했다. 그 속도 모르고 접근하는 요괴들과 뒤엉키고 소통하면서 나츠메는 이들 역시 세상을 살아가는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외면하고 싶어도, 증명할 수 없어도 자기 눈 속의 명확한 세계를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다양한 요괴를 직시하면서 볼 수 있게 된 것이 더 있다. 자신처럼 요괴를 볼 수 있는 동료들, 요괴를 볼 순 없어도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이들이다. 나츠메가 어떤 세상을 바라보는지 보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 속에 나츠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귀히 여기는 사람들.

 

타자의 애정을 통해 나츠메는 자기 세계를 밀착하게 보고 느낀다. 세상을 딛는 감각이 단단해지자 내면의 벽은 부드러워지는 듯 보였다. 나츠메는 조심스럽고 느리게 곁을 내어주어 간다. 본인의 시야가 명확할 때 타인의 세계에도 깊이 접속하게 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이해됐다. 돌아올 수 있는 단단한 나의 땅이 있을 때 비로소 다른 땅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세계는 너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근거인 거다. 어떤 논리보다 강한 근거는 삶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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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와 달리 나츠메에겐 그를 귀히 여기려는 존재들이 있다. 두 운명의 결과를 바꾼 명백한 차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완벽한 눈이라는 신의 축복도, 모두에게 신뢰 받지 못하는 저주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동료를 기어코 만날 수 있을 거다. 볼 수 있을 거다. 단순한 믿음만이 필요할지 모른다. 누군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나를 아끼는 누군가를 만나리란 믿음. 나의 눈은 너에게로 이르는 문이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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