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예술에 불만을 가진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예술가가 가난하다고 여겨지는 관념에 화가 난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예술가는 다 배고파야 해? 장난해?
잘나가는 예술가는 돈도 많이 벌고 예술성도 인정받는데?
그렇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에게 모두 죽기 전 고흐처럼 살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아직도 예술이 돈, 상업, 시장과 독립되어 고고하게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정작 인정받는 예술가들은 ‘돈’이라는 지표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그녀는 떠올린다. 예술을 이야기할 때, 상업성이라는 건 다들 말을 안 한 채 쉬쉬하는 무언가라고. 그때 여기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를 읽고 있는 다른 여성이 그런 여성을 달래준다.
야야, 진정해라. 이 사람은 아니래.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라는 예술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개방하여 이야기한다. 이런 접근은 예술과 ‘시장’을 겹쳐보는 방식이 예술성을 진단하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하려 함이다. 이는 상업적인 맥락을 예술성에 포함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지점이 이 책이 다른 미술 도서들과 다른 길을 걷는, 아주 매력적인 지점이다.
작가는 미술시장이 지금까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며 시작한다. 예술가들의 예술적 성공이 시장과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바로 ‘매버릭 아티스트’라는 개념이다. 수상 등 일반적인 코스를 밟아오지 않고 단박에 낙점받으며 소위 ‘스타’로 부상하게 되는 케이스다. 우리나라의 김동유 작가가 바로 ‘매버릭 아티스트’에 해당하는데 김동유 작가의 예술성은 그가 부상하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이 사람들의 눈에 띄고 말해지고 작품을 구매하는 일련의 ‘상업적’인 과정 덕분에 우리는 그제야 그의 예술성을 접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례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한다. 정말 상업성과 예술성은 무관한가?
작가는 상업성과 예술성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초기 르네상스 시기부터 작품이 어떻게 팔렸는지 설명한다. 이때 작가가 작품과 상업성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우리는 상업을 예술에 끼워 넣는 순간, 예술이 마치 오염될 거라고 생각한다. 맑은 물이라는 예술에 상업성이라는 미꾸라지가 끼어든 것처럼. 하지만, 작가는 작품과 상업적 맥락과 작품의 매력을 동시에 짚어내면서 이 둘이 공존할 수 있음을 차분히 설명한다. 그렇게 상업성에 관해서 말하는 게 그 작품의 예술성을 온전히 이해하는 방식, 그 작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하는 방식임을 증명한다.
더불어 상업성을 돈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상업과 이어진 많은 공간, 산업으로 확장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저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장의 맥락과 탁 겹치는 순간 미술관 자체가 생동감을 가지게 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는 미술관이 생기게 된 역사와 뻗어 나가는 영향력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테이트 미술관이 그러하다. 테이트라는 설탕 사업가가 미술관을 감옥과 사창가 사이에 지으면서 그 도시는 오히려 예술을 살필 중요한 거점으로 재개발된다. 그뿐만 아니라, 갤러리와 경매사들도 단순히 대단한 미술작품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미술 시장을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존재로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상업과의 완전한 결합인 ‘아트 마케팅’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부분은 이게 광고야, 돈이야, 예술이야… 헷갈리게 하지만, 바로 모든 지점이 교차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작가는 미술을 ‘주목 자본’이라는 낯선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주목 자본으로서 미술이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여러 사례를 말해준다. 트레이시 에민처럼 사회적인 이슈가 함께 교차한 사례들, 데이미언 허스트처럼 작가가 마케팅에 나서면서 작가 자체가 교차점이 된 사례는 그 자체로 미술과 시장에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이야기를 마냥 삐딱하게 듣지 않을 수 있는 건, 작가가 미술을 얼마나 사랑하고 이에 관해서 얼마나 애틋하게 고민하는지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미술시장에 관한 작가의 진단은 냉철하면서도 신진 작가와 시스템 확립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희망을 보여준다. AI로 인한 미술시장의 변화 역시 정확하게 분석하면서도 이에 열릴 새로운 기회를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작가의 K-미술에 관한 기대감과 희망이 정확한 분석력과 통찰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의 희망에 괜히 기대가 실린다.
고백하자면, 나는 미술을 잘 모른다.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그러나 앞서 말했듯 작가가 가진 미술을 향한 사랑에 책을 읽는 동안 전염되어, 상업성과 미술을 겹쳐놓는, 이 어려운 시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함께 고민하게 된다. 다 읽은 지금, 미술관으로 향하고 싶다. 불순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아름답고 깊어지는 미술을 즐기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