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없는 미디어
흔히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들은 어른들도 즐거워한다는 말이 있다. 가끔 어린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옆에서 슬쩍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들보다 더 몰입해서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어른들이 즐기는 콘텐츠를 아이들이 즐길 수 있을까? 단순히 '즐길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라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인 관점에서 '즐겨도 되는가'로 바꾼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얼마 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선생님, 참교육 봤어요?"
나는 해당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얼마 전 큰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참교육>은 무너진 교권을 회복하기 위한 가상의 기구인 '교권 보호국'이 문제 학생들을 이른바 '참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행하는 체벌과 응징이 주요 소재이며 청소년 관람 불가 작품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그 드라마를 마저 보겠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 순간 '초등학생이 봐도 괜찮은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본래 넷플릭스는 만 19세 이상의 성인이 아니면 가입할 수 없다. 그러나 보호자의 계정을 사용하거나 프로필을 공유하면 미성년자가 접근하기 까다로운 환경은 아니다. 작품에 관람 등급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 작품에 대한 정보까지 연령에 따라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과거에는 텔레비전이 주요 문화 소비 수단인 만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채널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곤 했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를 보고 난 후 다음 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세대는 이미 예전 일이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든 접할 수 있다. 부모와의 연락이나 또래 아이들과의 문화 형성 등의 이유로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아이들에게는 관람 등급은 무의미하다.
성인 콘텐츠는 아래로 내려간다
연령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오징어 게임>이다. 바야흐로 2021년은 온 세상이 <오징어 게임>이었다. 달고나와 도형 가면, 초록색 트레이닝 복 등 상징적인 요소들은 드라마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가 되었다. 미디어에서는 명장면을 편집한 클립 영상이나 각종 패러디가 만들어졌고, 광화문과 서울광장에서는 시리즈를 기념하는 퍼레이드와 이벤트까지 열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징어 게임>의 흥행 규모만이 아니다. 작품의 문화적 영향력이 원작의 관람 등급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성인 콘텐츠가 대중화되면 그 영향은 자연스럽게 어린 연령층으로 내려온다.
<오징어 게임>을 직접 시청하지 않은 어린이도 달고나 게임을 알고,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보며 작품을 떠올릴 수 있다. 친구가 따라 하는 놀이를 통해 작품을 알게 될 수도 있고, 미디어에서 특정 장면이나 캐릭터를 접할 수도 있다. 즉, 어린이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을 ‘시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작품의 문화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하나의 작품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를 시청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특정 캐릭터를 알고, 노래를 듣고, 장면을 패러디하고, 밈을 사용하고, 관련 상품을 소비하는 것 역시 하나의 문화적 향유가 된다. 결국 원본 콘텐츠의 연령과 그 콘텐츠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문화의 연령이 달라지는 것이다.
콘텐츠는 작품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데에는 미디어의 숏폼과 알고리즘의 영향이 크다. 이용자가 직접 작품을 검색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은 화제가 되거나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드라마의 특정 장면이 쇼츠로 만들어지고, 그 장면이 다시 패러디되며 콘텐츠는 재생산된다. 이용자는 원작을 보지 않아도 원작에서 파생된 수많은 콘텐츠를 먼저 접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스마트폰을 일찍부터 사용하는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친구들과의 대화, 유튜브 및 틱톡의 추천 영상, 인터넷 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즉, '선택'보다는 '노출'에 가깝다.
그렇다고 연령 제한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폭력성이나 선정성 등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부적절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호하는 장치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연령 제한만으로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문화적 파급력까지 통제하기에는 미디어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여러 세대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하는 방식
반대로 하나의 콘텐츠가 처음부터 여러 세대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같은 넷플릭스 콘텐츠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POP 슈퍼스타 아이돌이 비밀리에 악령을 퇴마하고 세상을 지키는 판타지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다소 황당하면서도 신선한 설정이지만, 표면적인 한류를 넘어 다소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한국을 묘사하며, K-POP이라는 대중문화의 접목으로 폭넓은 연령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먹는 김밥과 컵라면, '사자보이즈'의 안무 등은 챌린지, 커버곡 등 독립적인 문화 콘텐츠로도 소비되었다.
어린이는 캐릭터와 노래를 통해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작품을 접하고, 어른들은 현실적인 한국의 묘사와 높은 퀄리티의 작품성, 트렌디한 연출로 흥미를 느낀다. 이러한 점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오징어 게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문화 향유의 연령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화의 연령 경계는 어디까지 필요한가
이러한 현상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만화는 어린이가 보는 것’이라는 오래된 인식 때문에 연령 경계의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형식의 친숙함 때문에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도 어린이가 쉽게 접근하거나, 어른이 아이와 함께 시청하기도 한다.
결국 이제는 ‘몇 살부터 이 콘텐츠를 볼 수 있는가’만으로 문화 향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문화를 알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문화를 즐긴다. 이러한 현상 자체를 막는 것은 현대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모든 연령의 문화 향유를 무조건 긍정할 수도 없다. 연령 제한이 존재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고, 콘텐츠의 폭력성이나 선정성처럼 연령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는 요소도 존재한다.
단순한 차단이나 허용이라는 양자택일의 문제보다는 어린이가 해당 콘텐츠를 어떤 경로로 접하고,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며, 현실과 어떻게 구분하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역시 콘텐츠에 연령 등급을 부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콘텐츠가 숏폼과 밈을 통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문화의 경계가 넓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도 하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문화를 즐기기도 한다. 문제는 문화의 연령 경계가 사라지는 것 자체가 아닐 것이다. 경계가 사라진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어쩌면 앞으로의 문화 향유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누가 볼 수 있는가'에서 더 나아가, '누가 어떻게 그 문화를 받아들이는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