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생각보다 파란 하늘을 볼 일이 많지 않다. 아니, 사실 파란 하늘을 보고 싶은데 보기 어렵다는 말이 맞겠다. 낮 동안에는 건물에 콕 박혀 있다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을 타고 겨우 지상으로 나오면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사실상, 노을 지는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운 좋은 날이다.
가을의 초입, 하늘은 파랗게 높아지는데 해는 점차 짧아진다. 연중 하늘이 가장 아름다울 시기인데, 해는 서서히 짧아지니 그 아름다움을 즐길 새가 없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되는데 하고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그런 시기이고 그런 마음이었기에, 올해도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은 꼭 가리라 생각했다. 작년, 하늘 아래 자유롭게 펼쳐진 스테이지에서 느꼈던 해방감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던 탓이다. 다만 이번엔 그 기억을 그대로 다시 확인하러 가는 걸음이라기보다, 이 자리가 1년 만에 내게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가 더 궁금했다.
그래도 한 번 와 봤답시고 책임감을 느끼며, 처음 페스티벌을 찾은 일행을 이끌고 인천공항을 나섰다. 작년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줄이 너무 길어 택시를 탔었는데, 이번에는 자기부상열차를 타고 가면 편하다는 팁을 듣고 그 루트를 택했다. 실제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까지 아주 순조롭게 갈 수 있었다(내심 일행에게 봐, 나 따라오니까 편하지 하고 우쭐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우선 밥부터 먹자, 라는 생각에 이번엔 야외 스테이지 쪽의 음식 부스가 아닌 호텔 내 푸드 코트를 찾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가 있었고 자리도 여유로워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덤으로 실내 공연장의 공연 소리도 들려 일거양득이었다. 이 페스티벌이 좋았던 건 어딜 가나 음악이 들린다는 것이었는데, 실내에 들어와도 야외에 나가도 음악으로 가득 찬 공간이라는 게 시작부터 사람을 설레게 했다.
배를 채우고 맞이한 야외 스테이지는 작년보다 한결 선선한 공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낯선 동선과 인파 속에서 자리를 잡느라 바빴다면, 이번엔 한결 여유롭게 괜찮은 자리를 잡고 감상을 시작했다(물론 올해도, 돗자리 존은 실패했다). 정신없이 음악에 몰입하며 몸을 들썩거리다가도, 순간순간 하늘로 시선이 향했다. 귀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눈에는 높고 파란 하늘을 담으니 마음이 붕 뜨는 기분이었다.
지난해 이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가 이를 계기로 내 플레이리스트 상위권을 차지해 버린 엑스디너리 히어로즈의 무대는, 강렬한 사운드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매끄럽게 넘나들며 공간을 더 풍부하게 채워주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나오는 노래마다 이 노래 뭐야, 너무 좋은데? 하는 탐색자로서의 즐거움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혹시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리스너로서의 즐거움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을 때의 감동이란! 그때는 몰랐던 노래를 이제는 즐기며 따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나온 1년의 시간을 실감하게 했다.
체리필터의 무대 즈음에는 해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피아니시모와 Happy Day 같은 특유의 감성이 그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앞선 무대를 보면서 조금 지쳐 있었던 터라 맥주를 한잔 사 들고 왔는데, 잔에 담긴 금빛과 서서히 색을 바꾸어 가는 하늘이 나란히 놓이니 이상하게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저 앞에서 누군가 흔들던 깃발에 적힌 '사랑'이라는 글자가 문득 눈에 들어왔는데, 노래 가사도 응원 문구도 아닌 그 한 단어가 이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알코올이 조금 들어갔던 것도 이 여운을 오래 붙잡아두는 데 일조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
공연은 순간의 예술이다. 그렇기에 공연은 그 순간의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한정된 공간이 중요하다. 숨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몰입한 순간, 숨 막히는 고양감과 그것이 해소되었을 때의 후련함. 내가 사랑한 공연은 대부분 이런 것이었고, 이는 관객을 자유롭게 두기보다는 특정한 공간에 가두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기분 좋은 구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페스티벌에서는 그 몰입의 순간을 온전히 관객의 자유에 맡긴다. 지금 내가 듣고 있는 것이 음악일까, 바람일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대 위의 사람일까, 하늘일까, 깃발일까. 그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몰입의 강도는 약할지언정 순간순간을 채우는 요소는 다양하고, 그 다양함으로 채워진 일련의 시간 역시 다양한 감상으로 표현된다. 날씨 좋았지, 노래 좋았지, 사운드 최고였지, 바람 부는 거 좋았지, 하늘 예뻤지. 사람마다 이 하루를 채우는 문장은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특정한 공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몰입을 즐길 수 있도록 모두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와 같은 야외 페스티벌을 끊임없이 찾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이번 사운드플래닛 페스티벌에서의 하루를, 예쁜 하늘 속 '사랑'을 담고 있었던 깃발, 그리고 1년 만에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 노래로 채웠다. 이런 기억이 하나씩 쌓일수록 나는 결국 또 이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