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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것 [문화 전반]

말의 온도가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먼저 전해지는 마음

by 김주하 에디터
2026.09.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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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이 예쁘네요.


      내가 처음 느낀 언어의 온도이다.

       

      몇 년 전, 우연한 해외 봉사활동으로 친해진 일본인 친구가 있다.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일본인 친구였기 때문에 대화가 잘 통했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같이 밤을 지내며 어김없이 밤 산책을 하던 어느 날, 달빛 아래에 서서 친구가 일본에서 하는 고백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月(つき)が綺麗(きれい)ですね” 라고 하면 상대방은 “死(し)んでもいいよ” 라고 한다고 했다.


      달이 참 아름답네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죽어도 좋아.


      직접적인 단어로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들었기에 그 말의 의미보다 그 안에 담긴 분위기와 감정이 더 따뜻하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날, 처음으로 일본어가 포근하다고 느꼈다. 아무리 같은 의미를 가진 말이라도 어떤 언어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들었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말에는 뜻이 있지만, 뜻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 그날의 분위기, 함께 있었던 시간까지 말과 함께 전해진다. 때로는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도 자연스레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어떤 말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신경쓰이지 않은 별것 아닌 한마디가 이상하게시리 따뜻하게 느껴졌던 순간도 있고, 반대로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말이 시간이 지나서야 오래 마음에 남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마음까지 함께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정확히 말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말 뒤에 있는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가 있다. 말과 말 사이에 남겨진 작은 여백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도 한다.

       

      그날의 “달이 예쁘네요”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그 말의 정확한 의미보다 그날의 달빛과 밤공기, 친구의 목소리를 먼저 기억한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 느꼈던 낯선 언어의 따뜻한 온도도 함께 떠오른다.

       

      말보다도 먼저 전해진 무언가가 내 속에 오래 남은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

       

      그리고 그 안에는 분명 저마다의 온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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