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말보다 진실된 것 [문화 전반]

영화 <러브레터>와 함께
글 입력 2024.03.30 00: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어쩐지 사랑한다는 말이 가볍게 쓰이는 요즘이다. 사랑보다 가벼운 형태와 무게의 마음마저 사랑으로 뭉뚱그려지고, 심지어는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차라리 좋아한다는 말이 내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사랑한다는 말에 피로해졌다는 표현도 맞겠다.

 

그래선지 오히려 말로 내뱉어지기 전, 저절로 드러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행동이나 눈빛같은 것들. ‘사랑해’ 라는 말로 간소화되기 전의 것들이자, 한 걸음 더 순수에 가까운 것들. 그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정성이 담겨있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이츠키와 이츠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한다는 대사 한 줄 오가지 않지만 우리는 그 사랑을 느낀다. 첫사랑이라 서툴고 순수한 그들의 마음이 언어 이전의 것들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두 사람이 십 대 소년 소녀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껏 겪어본 적 없는 감정에 자기 마음을 언어로 정제하는 법을 몰라 서로 툭툭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기도 한다.

 

 

스크린샷 2024-03-29 오후 8.21.21.png

 

 

두 이츠키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늘 한 데 엮여 놀림을 당할 때, 서러워 우는 소녀를 보고 소년은 놀리는 아이에게 주먹을 날린다. 나란히 도서부원이 되고서는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는 소녀다. 그 나이라 가능할 지 모를, 충동적이고 서투른 행동들이다.

 

서로의 이름이 같은 점은 소년에게 얼마나 좋은 핑계이자 행운인지. 소년은 책을 빌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이츠키를 도서 카드에 써내려 가고는 한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소녀에게 종이 봉투를 뒤집어 씌우고, 달밤에 시험지 답안을 맞춰본다며 소녀의 걸음을 붙잡는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행동과 눈빛이 오간다. 그리고 이것들은 말이 전달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끝내 소년은 차마 자기 마음을 말로 내뱉지 못하고, 도서부장인 소녀에게 책을 건네며 대신 반납해 달라 말하고는 멋쩍게 뒤돌아 간다. 소녀는 그 후 말 없이 전학을 간 소년의 빈 자리에 화풀이를 한다.

 

세월이 지나 겨울 풍경처럼 정지되고 만 첫사랑의 기억은 소녀에서 어른이 된 이츠키가 책을 돌려받았을 때 눈이 녹듯 돌아온다. 그녀가 도서 카드 뒤에서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했을 때, 그가 그녀에게 남긴 책의 제목처럼 소녀는 소년을 사랑했던,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는다. 말보다 더 진실되고 영원한 무언가는 그렇게 겨울 얼음 속에서 보존되었다가, 몇 번의 겨울이 지나고 이제는 성년이 된 소녀의 손에 닿은 순간, 녹아내린 얼음 사이로 생생히 떠오른다.

 


스크린샷 2024-03-29 오후 8.20.58.png

 

 

두 사람의 사랑은 사랑이란 말 외의 모든 것으로 표현된다.

 

때로는 말 아닌 것들이 말보다 강력하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이유는 그들과 진심 간의 거리가 말과 진심 사이의 거리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사랑한단 말로 축소되기 전 그저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들. 그것들이 어쩌면 자신의 진정한 마음에 가장 가까울 지 모른다.

 

 

 

아트인사이트_에디터태그_오유진.jpeg

 

 

[오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