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성별, 신체적 특징, 소속 등 개인이 속한 사회적 좌표는 어떤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층위의 기억을 형성한다. 가령 2020년 Covid-19가 전세계를 뒤덮었던 시기에 자신의 공동체가 ‘다수’에 속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경제적 불안, 소통의 단절, 감염에 대한 우려를 경험했다면, 서구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지닌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인들은 극심한 배척과 혐오 범죄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Covid-19는 종식되었지만 이들의 기억은 몸, 언어, 생활양식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남아 있는 아픔과 트라우마를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저항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대한다.
문화기획팀 배드 바이어스(Bad Bias)는 예술과 소통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지난 3월 30일 런던 블룸즈버리에 위치한 대안공간 The Horse Hospital에서 개최된 이들의 첫 행사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는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정체성을 지닌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Covid-19가 유행할 당시 서구 사회에서 ESEA 커뮤니티가 겪은 차별과 혐오, 트라우마에 대한 자전적 해소를 다뤘다. 프로그램은 아티스트 Ming Chin Hsieh의 무용, 4편의 단편 영화, Angela Wai Nok Hui의 사운드 퍼포먼스로 구성되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은 방문객들에게 ESEA 커뮤니티가 Covid-19를 마주하는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무용, 영화 그리고 소리
행사의 무용가 Ming Chin Hsieh의 퍼포먼스 “The Weight of a Word”로 1막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 무용수는 3개의 기둥에 둘러져 있는 밧줄을 잡고 기대며 유영하듯 움직였다. 때로는 밧줄의 안쪽으로, 때로는 바깥으로. 그녀는 언뜻 자유로워 보였지만 언제나 밧줄을 중심으로 이동했다. 마치 그것이 어떤 경계가 되어 주는 듯, 밧줄 곁을 맴돌았다. 방 한가운데에 불빛이 있어서일까. 그 움직임은 빛을 찾아 맴도는 나방 같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조명이 번쩍이며 밧줄은 사라지고, 무용수에게는 새로운 경계가 생겼다. 엉성하게 둘러진, 당길 수도 매달릴 수도 없는 연약한 테이프. 그녀는 그 위태로운 경계 안에서 서서히 고립되었다. 새로운 경계를 넘나들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온몸을 가면(Mask)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가면은 갑옷이 아닌 감옥이 되었다. 동작 단위의 움직임마저 부자연스러워진 그녀의 몸은 ‘부당함’이라는 감정을 어느 때보다 전신으로 느끼게 되었다. 결국 무용수는 그녀를 둘러싼 것들을 파괴했다. 팔다리와 얼굴을 감싸던 가면들을 한 장씩 벗어던지고, 찢고, 밟아 뭉개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용감해진 그녀는 마침내 모든 경계를 끊어내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무용수는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갈 곳을 잃은 듯 돌아온 곳은 기둥에 묶인 밧줄이었다. 밧줄은 이전처럼 그녀를 둘러싸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것이 자신의 일부인 양 힘겹게 당기고, 붙잡고, 매달렸다. 그것은 밧줄을 풀기 위한 행동이었을까, 다시 묶으려는 행동이었을까. 어느새인가 밧줄에는 그녀가 필사적으로 벗어던졌던 가면들이 매달려 있었다.
이어 4편의 단편 영화로 구성된 2막은 영화 “COVID Dystopia”를 시작으로 관객들을 팬데믹의 시간으로 초대했다. 감염으로 고통받는 개인들, 멈춰버린 시스템으로 마비된 사회와 단절된 연결, 혼란스러운 시대를 기회로 삼는 기득권자들, 이를 둘러싼 정치적 선동과 자본의 흐름. 영원히 종식되지 않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영화 COVID Dystopia, Thomas Thorspecken. 출처: Thomas Thorspecken 유튜브 화면 캡쳐
“COVID Dystopia”의 장면 속 모두의 이야기가 끝나고, 팬데믹 당시 미국에서 택시기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Zhang의 이야기를 담은 “Wuhan Driver”와 미국의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를 다룬 “Centuries and Still”이 이어졌다. COVID-19를 경험한 한 아시아인 ‘Zhang’의 이야기에서 공동체의 공유된 경험으로 넘어가는 두 영화의 병치는 팬데믹의 기억을 공동체 서사로 자연스럽게 연결지었다.
영화 Wuhan Driver, Tiger Ji. 출처: The Horse Hospital 웹사이트
마지막 영화 “Sunny”는 중국계 영국인 Sunny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영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외양으로 인한 차별과 내적 갈등을 겪었다. 영화는 그의 독백과 회상을 통해 그가 ‘자신’을 찾아가는 스스로의 반성과 여정을 보여준다. 후반부, 그는 언제나 쓰고 있던 아시아인의 가면을 벗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 남성은 영국인도 아시아인도 아닌 Sunny였다.
영화 Sunny, Sky Yang. 출처: The Horse Hospital 웹사이트
마지막 3막은 Angela Wai Nok Hui의 음향 퍼포먼스 “The Church Bell Cancels”가 진행되었다. 시작은 제각각의 분주한 소리들로 가득했다 연주자는 힘차게 북을 치다가 파티 블로어를 부는가 하면 종을 치기도 했다. 그 모습은 혼란스러우면서도 활기차 보였다. 어느 순간 연주자는 모든 행동을 멈추고 북에 고개를 파묻었다.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것은 숨소리, 바람처럼 울려 퍼지듯 들리는 숨소리뿐이었다. 무대 가운데에서 북을 들고 우뚝 서 있는 연주자의 모습은 그저 숨을 쉬는 데에 집중하는 것 같기도 했고, 숨을 곳을 찾고 있는 것 같다가, 우는 것도 같았다.
호흡은 점차 옅어지고, 연주자는 천사의 날개를 등에 달고 커다란 종으로 다가갔다. 깃털 한 줌과 종소리, 또다시 깃털 한 줌과 종소리. 연주자는 마치 깃털 한 줌에 서로 다른 소망을 담듯, 일정한 속도로 등에 달린 깃털을 뽑은 후 종을 울렸다. 벽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마치 세계와 세계를 잇는 천사의 모습 같았다. 종소리가 서서히 작아지자 그녀를 비추던 조명도 옅어져 갔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The Horse Hospital에 마지막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각, 인지, 그리고 해소로 이어지는 “COVID-26: Bad Bias in the Body”
Covid-19 시기 ESEA에게 행해진 인종차별의 원인은 단순히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우한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기존에 해당 집단을 향했던 혐오가 어떤 사회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주류 사회가 소수자들에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가시적인 방식으로 드러난 것이다. ESEA가 ‘주류’가 아닌 수많은 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이들의 몸에 축적되는 경험과 기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행사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는 ESEA에게 남겨진 공통된 트라우마인 Covid-19의 인종차별을 2026년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재인식하여 해소하는 하나의 예술로 기능했다. 1막에서 선보인 Ming의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내재된 ‘몸의 기억’을 불러오며 이들의 감각을 돋구었다. 의료 소품인 마스크(mask)를 연상시키는 가면(mask), 밧줄과 테이프의 대비는 공동체의 일상마저 위협했던 새로운 층위의 경계와 소외를 은유했으며, 마지막에 돌아온 밧줄에 달린 가면은 당시의 차별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여전히 남아있음을 암시했다. 4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한 2막은 1막이 깨운 관객들의 감각을 팬데믹과 ESEA의 소수자성에 대한 회상, 공감, 발견, 이해의 과정으로 이끌었다.
3막에서는 1막과 2막에서 몸의 감각과 인지의 과정으로 돌아본 트라우마를 달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주자 Angela에게 소리란 마치 바람이 나무와 창문에 부딪혀 저마다의 소리를 내듯 관객 각자에게 다른 울림으로 전달되는 매체다. Covid-19에 대한 ESEA의 기억은 누군가에게는 몸에 남은 트라우마로, 누군가에게는 언젠가 겪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로, 누군가에게는 또다른 소수자의 서사로, 누군가에게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저마다의 생각은 종소리 한 번에 위로로, 종소리 한 번에 공감으로, 종소리 한 번에 연대로 공명했다. 제각각의 악기 소리로 시작하여 숨소리, 종소리로 이루어지는 그녀의 퍼포먼스는 서로 다른 이들의 세계를 연결하는 의식과도 같았다.
이는 예술가와 청중, ESEA와 비ESEA 등 서로 다른 이들 사이의 공감뿐만 아니라 소수자성을 지닌 이들의 자전적 반성으로도 이루어졌다.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인종이 주류가 아닌 사회에서 아시아성(Asianness)은 애증의 자아가 된다. 때로는 어떠한 사회에 비교적으로 쉽게 진입하기 위해 ‘전형적인’ 아시아인을 연기하면서도, 아시아인이 아닌 그저 개인으로 보여지기 위한 다양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나다움’을 찾는 과정 끝에서 자신의 소속 또한 그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1막의 무용가 Ming이 끝내 밧줄을 붙잡듯, 그렇게 넘고 싶었던 다수로부터 ‘나’를 구분 짓는 이 보이지 않는 경계는 결국 ‘나’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개성이자 근원의 일부인 것이다.
“COVID-26: Bad Bias in the Body”에서 이루어진 기억의 재방문과 해소는 관객, 아티스트, 기획자 등 그 자리에 방문한 모든 이들의 소통을 통해 한층 깊어졌다. 행사는 ESEA의 당사자성을 지닌 이들을 한자리에 소환하여 이들이 ‘다수’로 존재하는 임시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관객들은 공연을 감상하고 옆자리의 관객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소통의 과정을 통해 마치 2막의 Sunny처럼 스스로가 지닌 아시아성을 돌아보고, ‘ESEA로서의 나’와 ‘ESEA가 아닌 나’를 재정의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Bad Bias: ESEA 아티스트들의 안전지대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를 기획한 Bad Bias는 ESEA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런던 기반 신생 문화 기획팀이다. 팀명 Bad Bias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Bias”는 편향을 의미하지만 일부 엔터 산업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것, 일명 최애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특히 K-pop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하며 보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슬랭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Bias는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자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편견과 선호처럼, 교차하는 나선형의 로고는 ESEA와 비 ESEA, 주류 문화와 비주류 문화, 청중과 아티스트 등 서로 다른 것들의 만남을 의미한다.
*예시로, 상대의 최애 아이돌을 물을 때 “Who is your bias?”라고 표현할 수 있다.
Bad Bias의 목표는 ESEA 정체성을 지닌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들의 ‘안전지대’가 되어 주는 것이다. 시작은 두 기획자가 영국 유학 중 처음으로 마주한 '아시아인'으로서의 자각이었다. 타향살이는 두 가지 현상에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구 사회의 다양한 영역이 ESEA 구성원들을 단일한 아시아성으로 바라보는 반면, 이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혐오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Bad Bias의 안전지대는 두 가지 기능을 목표로 한다. 첫째는 ESEA 예술가들이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둘째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ESEA 공동체의 서사를 예술적으로 승화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들의 첫 행사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는 Covid-19을 경험한 ESEA 공동체의 기억을 다루며 그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들이 선보인 복합 예술은 관객들이 몸의 감각, 기억의 회상, 장면의 인식을 통해 Covid-19의 외상을 재방문하고 재인식하게 했다. 구체적인 퍼포먼스의 내용은 예술인들의 자율에 맡겼다. 기획자들은 공간을 제공하고, 이들을 기록해 줄 퍼포먼스 사진가를 고용하는 등 서포터의 포지션에서 함께했다.
Bad bias가 찾아갈 앞으로의 Bias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는 첫 행사임에도 많은 관객들이 The Horse Hospital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인스타그램 광고로 관심을 갖게 된 이들,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이들, 기존 협업 예술가들의 팬들이 한자리에 모여 Bad bias만의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다. Bad Bias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사진가 등 운영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도 ESEA로 이루어져 뜻을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도 Bad Bias는 다양한 포맷의 행사를 통해 주목받지 못한 ESEA의 서사를 보여줄 예정이다. 보다 많은 ESEA 구성원들, 나아가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안전지대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Bad Bias 인스타그램 및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