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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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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 단어에 원어를 함께 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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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마틴 극장 내부. 출처: 직접 촬영

 

 

지난 3월 27일, 공연예술에 조예가 깊은 석사 동기 S와 런던의 세인트 마틴 극장에서(St Martin’s Theatre) 가장 오랜 기간 운영된 연극 <쥐덫(The Mousetrap)>을 관람했다. 우리는 객석에 앉기 전 프로그램북을 한 권씩 구입한 뒤, 공연장에 온 기분을 내기 위해 바에 들러 음료를 주문했다. 영국은 공연장 내에서 간단한 음료(주류 포함)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내부 청결이 잘 지켜지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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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음료는 캠든 헬스. 최장기 공연 기록을 보유한 연극답게, 바의 벽면에는 지금까지의 포스터들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출처: 직접 촬영.

 

 

 

‘쥐덫’의 시놉시스


 

<쥐덫>은 영국의 유명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BBC로부터 1947년 메리 여왕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라디오 드라마를 의뢰받아 쓰게 된 Three Blind Mice(세 마리의 장님 생쥐)*를 각색한 연극이다.


연극의 시작과 끝은 모두 시골 마을에서 새로 개업한 롤스턴 부부의 게스트 하우스 몬크스웰 저택(Monkswell Manor)에서 이루어진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며, 아무도 없는 저택 거실에는 런던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으며 피해자의 옆에는 ‘Three Blind Mice’**라는 쪽지가 함께 놓여 있어 추가 범행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온다. 방송이 끝나자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 몰리가 등장하며, 숙박을 예약한 손님들을 차례로 맞이한다.


모든 손님들이 도착하고 얼마 후, 저택에는 경찰서로부터 전화가 온다. 라디오의 뉴스에서 언급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저택에 있을 수 있다는 것. 설상가상으로 저택 밖은 폭설로 인해 이동이 어려웠으며, 전화조차 끊기고 만다. 고립된 상황에서 롤스턴 부부와 저택에 머물게 된 5명의 손님 사이에 긴장감이 돌던 와중, 한 남성이 스키를 타고 등장하며 자신이 런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이라고 소개한다.


저택 내부에서는 취조가 시작되었고, 어수선해진 저택의 분위기 속에서 투숙객이었던 보일 부인이 살해당하며 1막이 끝난다.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 수상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을 건축가라고 소개하는 괴짜 청년 크리스토퍼 렌***, 퇴역군인이라는 비교적 믿음직한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나 다른 투숙객들과 달리 저택을 방문한 목적이 불분명한 메드켈프 소령, 사람이 죽어 있는 현장을 직접 본 적 있는 듯한 케이스웰, 다른 투숙객들과 달리 예약없이 갑작스레 저택을 찾아 온 유머러스한 성격의 외국인 파라비치오니, 그리고 첫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날 각자 몰래 런던에 다녀왔던 롤스턴 부부. 이 중 범인은 누구일까? 투숙객들의 신분은 진짜일까?

 

 

*라디오 드라마의 공식적인 한국어 제목은 없다.

**피해자가 2명 더 있을 것 암시

***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은 실제 영국 런던에 소재한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 Cathedral)을 설계한 건축가로, 관객들은 그가 정말 그 유명한 건축가인지 의심하게 된다. 즉, 그의 이름 자체가 그가 신분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감상평: 탄탄하게 짜여진 긴장감과 복선의 회수


 

<쥐덫>의 커튼콜에서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인사 후 “이제 여러분은 <쥐덫>을 보았으니, 이 범죄의 공범이 된 것입니다. <쥐덫>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Whodunnit(범인 찾기)의 비밀은 이 방에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한다. 이는 연극의 결말을 말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으로, 추리극인 <쥐덫>만의 커튼콜 문화다. 따라서 아쉽지만 나 또한 결말은 소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야기가 해피 엔딩이라는 점은 밝힌다.


연극은 사건의 모든 전말이 밝혀지기 전까지 짜임새 있는 긴장감을 유지했다. 일부 연극이나 뮤지컬은 1막에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2막에서는 내용을 정리하여 마무리하는 구성인 경우가 있는데, <쥐덫>은 다음 희생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공포감과 긴장감 속 등장인물들 간의 끊임없는 의심과 대화가 인터미션 이후에도 관객의 몰입을 끌어올렸다. 


모든 장면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무대의 세트 구성 또한 등장인물들이 고립된 공간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었다. 인물들의 동선의 경우, 경찰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의자에 앉아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설명하는데, 이 모습이 마치 취조를 받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각 등장인물들을 의심스럽게 만들었던 복선들이 개연성 있게 회수되는 것도 깔끔한 마무리였다.


오늘날 극장은 살인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내용 특유의 대중적 선호도를 작품의 주요 셀링 포인트로 소개한다. 그러나 아가사 크리스티는 1940년대 무렵 영국을 충격에 휩싸이게 한 아동학대 사건을 원작인 라디오 드라마를 작업할 모티브로 가져왔는데, 당시 작품의 원제였던 Three Blind Mice*****는 학대당하던 어린이들을 외면한 어른들과 사회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따라서 연극이 초연된지 얼마 되지 않은 1950년대 무렵에는 아동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사회적 내러티브 또한 내포하고 있었을 것이다.

 

 

**** 극장에서 들은 원어는 "Now that you have seen the Mousetrap, you are our partners in crime. In order to preserve the tradition of The mousetrap, we ask you to keep the secret of whodunnit locked in the room" 이었다. 공연마다 세부 대사는 다를 것이다.

***** 'Three Blind Mice'는 영국의 동요로, 눈 먼 생쥐 세 마리가 쫓기며 꼬리가 잘리는 등 가사에 잔혹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러한 내용의 동요를 작품의 제목으로 선정한 것도 아동 학대를 암시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쥐덫>이 73년 간 무대에 오른 이유 1 - 믿고 보는 것들의 조합. Whodunnit(범인 찾기), 권선징악, 아가사 크리스티의 삼위일체


 

<쥐덫>은 1952년 노팅엄에서의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 운영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최장 기간 운영된 연극이라는 타이틀 자체로 수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극단에서도 이를 연극의 마케팅과 브랜딩 전략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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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북에 내가 몇 번째 공연을 관람했는지 알 수 있는 도장을 찍어준다. 최장수 공연의 이미지에 알맞는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기념품이다. 출처: 직접 촬영.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 작품이 약 8개월 정도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랬던 <쥐덫>이 73년이나 이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다양한 분석이 있으나 가장 큰 이유로는 ‘Whodunnit(범인 찾기)’ 장르의 기본적인 재미, 권선징악 전개, 원작자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가적 역량이 삼박자를 이룬 것이 흥행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이 연극의 장르를 ‘Whodunnit(범인 찾기)’이라고 설명하는데, ‘Whodunnit’이란 추리물의 하위 분류 중 하나로, 이야기의 전개 과정 속에 숨어 있는 단서들을 찾아 사건을 일으킨 ‘범인’을 밝히는데 집중하는 플롯을 지닌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커튼콜의 ‘Whodunnit(범인 찾기)의 비밀’이란 단순히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말아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장르의 특성 상 관객들은 무대의 구성, 배경 상황,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범인을 추론하기 위해 극의 초반부터 몰입할 것이며, 이는 극에 대한 긍정적 평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Whodunnit’의 플롯과 함께 결국에는 범인이 잡히고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권선징악 전개 또한 연극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 쯤은 보기 좋은 낮은 진입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원작자 아가사 크리스티는 기존 그녀의 소설에서도 대사 위주의 전개 방식을 취했기에, 극의 대본을 작성하는 일에도 그녀의 작가적 감각이 수월하게 녹아들었을 것이다.

 

 

 

<쥐덫>이 73년 간 무대에 오른 이유 2 - 영국문화 덕후들 여기 모여라!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 이후 2021년 쥐덫의 영국 현지 재운영을 보도한 가디언의 기사에서 알려진 세인트 마틴 극장의 관객 데이터에 따르면, 쥐덫을 보러 오는 관람객들의 3분의 1은 극장이 위치한 런던 거주자, 3분의 1은 영국 국내 관광객, 3분의 1은 해외 관광객이다.


쥐덫의 프로그램 북에는 영국의 공연 문화를 대표하는 웨스트엔드의 최장수 간판 연극이라는 타이틀과 영국의 대표 추리 소설가로서 영국성(Britishness)의 정수로 여겨지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조합이 영국 문화를 좋아하는 해외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극에서 느껴지는 영국적 향취가 내국인 관객들에게는 1940~195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어우러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호텔을 개조해 극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세인트 마틴 극장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연극과 잘 어울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지니는 작품


 

결론적으로, <쥐덫>이 70년 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Whodunnit이라는 장르 특유의 재미, 권선징악 플롯의 친숙함, 아가사 크리스트의 완성도 높은 극작 능력, 그리고 작품에 반영된 영국의 문화정체성 덕분이다. 이 요소들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국내외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극의 모든 장면이 단일 세트에서 진행되며 특수한 기계장치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유지 및 보수 비용도 타 연극에 비해 저렴할 것이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장기 생존하기 유리한 조건들을 갖춘 것이다.


<쥐덫>은 지난해 한국에서도 여러 극단에 의해 무대에 올랐다. 극단 ‘해솔’이 북촌창우극장에서, 극단 ‘춘추’가 서울연극제 자유참가부문에서, 스튜디오 바이브스톤은 ‘마우스트랩’이라는 제목으로 링크아트센터 드림에서 한국판 줘덫을 선보였다. 올해도 국내에 해당 작품을 소개하는 극단이 있다면 직접 연극을 감상하고 Whodunnit의 비밀을 알아내도 좋겠다.

 

 

 

쥐덫에서 창극까지: 한국의 공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


 

꾸준히 팔리는 익숙한 플롯과 작품에 드러난 문화정체성이라는 <쥐덫>의 장기성장 비결로부터, 나는 지난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국내외 공연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 국내 공연 장르가 떠올랐다. 바로 창극이다.


창극은 전통 예술인 판소리를 주요 표현 매체로 다루는 장르로, 관련 분야에 조예가 깊은 예술감독들의 다양한 시도를 거쳐 한국 공연 장르의 독창성과 대중적 선호도를 발전시켜왔다. 이러한 창극을 <쥐덫>의 흥행 요소와 연관 지은 이유는 판소리라는 형식과 한국의 전통 복식에서 개량한 무대 의상이 다양한 원작 서사에 한국미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장기 흥행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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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원작 소설을 판소리로 표현한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한국 복식의 요소가 가미된 배우들의 의상이 판소리와 서구의 원작 소설의 조합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여준다. 출처: 국립극장 유튜브 - 낭만적이고 유쾌한 창극 |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 캡쳐

 

 

또한, 원작의 성별과 상관없이 남녀 배우가 모두 주연을 맡는 일부 창극의 특징은 영국을 비롯하여 다양성 정책의 일환으로 여성 장군, 농인 주연 등의 캐스팅을 시도하는 해외 공연계의 추세와도 맞닿아 있어 해외 진출 시 긍정적 인상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창극을 오랜 기간 전문적으로 공연해 온 국립창극단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과 <베니스의 상인들>, 웹툰 <정년이> 등 다양한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전석 매진을 기록해왔다. 특히 정영두 감독이 연출한 <리어 왕>은 오는 4월 5일 주영한국문화원에서 감독의 Q&A 세션과 함께 상영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해당 티켓 또한 매진이다.


국내에는 현재 삼국지 설화 적벽대전을 기반한 판소리 작품을 창극으로 가져온 <적벽>이 국립정동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4월 20일까지 관람 가능하며, 아트인사이트의 리뷰 카테고리에 방문하면 공연을 관람한 다른 에디터분들이 작성한 양질의 후기를 찾아볼 수 있다. 국립정동극장의 <적벽>으로 익숙한 서사의 흥미진진함을 한국의 문화적 코드로 경험해보는 것은 새로운 공연 장르를 접하거나 창극에 대한 기존의 관심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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