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억울하다! 이만큼 어렵다니!
까만 밤, 어두운 골목길 위에서 나는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검색하느라 한참 머리를 싸맸다. 영어로도 검색해보고 독일어로도 검색해보다가, 끝끝내 9월 4일 공연 레퍼토리를 플레이리스트로 저장하는 데 성공했다.
끝끝내 플레이리스트를 완성하고 나니 오히려 억울한 마음이 더해져, 어느새 도착한 공연장 앞을 씩씩거리며 째려봤다. 그러다 앞뒤 안 가리는 사람이 된 것마냥 ‘공연 시간 100분’이라 적힌 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누구 하나 잡아먹어보겠다는 심산이었으나, 이게 웬걸? 까맣고 조용한 우리의 공연장은 어디 가고, 탁한 황금빛 조명 아래 나무 의자가 빽빽이 놓여 있고 사람들이 그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인파 사이 작은 원형 테이블에는 술잔과 재떨이가 흩어져 있고, 그 너머로 피아노 한 대와 보면대 하나를 둔 낮은 무대가 보인다.
엄맘마, 나는 클래식 공연을 보러 왔는데, 이곳은 어디인가? 마치 카바레(Kabarett)가 아닌가? 잘못 찾아온 게 분명하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려보려는데, 이게 무슨? 벌컥! 열렸던 문이 어느새 철컥! 잠겨 있다. 문고리를 몇 번이나 뒤흔들어 보던 나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르륵- 가장 가까운 의자에 무너지듯 앉아 다시금 생각했다.
이곳은 어디였지? 그래, 이곳은 까만 밤의 베를린이다.
7시 30분이 되니 무대 위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와 함께 깔끔한 차림의 두 연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걸어 나온 이의 손에는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고, 그는 보면대 앞에 섰다. 뒤따른 이는 익숙한 일인 것마냥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들은 누구인가?
아직 의심을 다 거두지 못한 눈으로 슬그머니 눈에 힘을 모아보니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과 피아니스트 ‘김준형’이다. 그들은 무엇을 노래하기로 했더라?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주위를 슬금슬금 두리번거려 보니 네모난 편지지 한 장이 놓여 있다. 슬그머니- 냉큼 손을 뻗어 종이를 내 앞으로 가져온 뒤, 제일 첫 문장을 읽어보았다.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은 지난 리사이틀 이후
약 2년 동안 쌓아온 음악적 고민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정리하였다.”
“2년 동안…….”이라는 말을 보고, 2년 전은 언제였더라 곰곰이 생각했다. 2024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공연은 결국 그 시점으로부터 이어져 온 ‘고민’들에서 시작해 2026년 9월의 어느 금요일까지 흘러왔다는 것인가?
궁금했다. 음악가의 고민은 무엇일까? 365일이 두 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내내 바이올린을 들고 있던 사람은 무엇이 변했을까? 그 변화의 시간을 담고자 했다면 어떤 페이지를 통해 ‘지나온 날’을 그려보고자 할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나는 이 이상한 선곡들이 한 권의 책이라도 되는 것처럼 페이지를 하나씩 넘겨보기로 했다.
쿠르트 바일 / 슈테판 프렝켈, 서푼짜리 오페라 중 7개의 소품 (발췌)
베를린에서 음악하는 한 이방인이 극의 주인공이자 악명 높은 범죄자인 매키스를 유쾌하고 달콤하게 소개하는 풍경으로 가장 처음을 시작하다니? 그래, 그는 본인을 소개하기에 앞서 배경 설명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장소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시린 조명 아래보다는 열기가 좀 있는 곳에서, 조용히 혼자 스캣을 밟을 수 있는 풍경이면 족하다. 그러면 그가 머물고 있는 현재의 베를린과 바일의 음악이 존재했던 베를린이 알아서 포개지고, 1부의 첫 번째 서사가 시작될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로 불리던 음악이 이날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옮겨진다는 점도 흥미롭다. 가사가 사라진 자리에서 각 인물의 말투와 표정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매키스를 소개하는 첫 곡을 지나면 편안한 삶에 대한 노래와 폴리의 노래, 탱고, 대포의 노래가 차례로 이어진다. 한 사람을 소개하는 데서 시작했는데 자꾸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 다른 장면이 끼어든다.
그러다 보면 처음 만난 사람을 우리는 무엇으로 기억하게 되는지도 조금 궁금해진다. 첫인상일까, 그가 하는 말일까,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 얽히며 드러나는 여러 얼굴일까.
벌써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묘한 아이러니를 만나게 될까?
보리스 블라허,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 Op.40
그렇게 물 흐르듯 보리스 블라허의 곡으로 넘어가면 갑자기 조명이 다 꺼지고, 바이올린 한 대와 한 사람만이 남는다. 음원을 미리 들어보며 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표현법이 하나의 노래가 된다면 딱 이 소나타가 아닐까 싶은? 이게 본인이 작곡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뭔가 음악적인 합이 눈에 띄게 잘 맞는다는 느낌이다.
악보에 쓰여 있는 음표를 따라 연주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전부 본인의 즉흥 연주가 아닐까 싶은 바이브까지 전해진다. 빠르게 튀어나왔다가 금세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바이올린 한 대뿐인데도 한 사람이 계속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혼자서도 이렇게 많은 표정을 낼 수 있다니. 그래서인지 유다윤이 이 곡을 연주하는 모습도 꽤 쉽게 상상됐다.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어 그가 이 곡을 택한 배경을 살펴보니, 맙소사. 이 곡의 작곡가인 보리스 블라허는 유다윤의 스승 콜야 블라허의 부친이었다. 이렇게 연결된다고?
그가 이 곡을 두 번째로 택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음악을 위해 떠나온 베를린에서 누구에게 음악을 배우고 있는지, 어떤 환경 안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나는 이 곡을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지금을 생각하게 됐다.
이 곡이 졸업 연주회에서 연주된다면 스승님이 감동받으시지 않을까……? (농담)
윤이상, 콘트라스테
음원을 미리 들어보면 블라허의 곡마저도 매우 순조롭게 느껴질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현재의 우리는 어디에 도달하게 되는가? 놀랍게도 한국이다. 윤이상의 <콘트라스테>로 우리는 금세 다시 이곳으로 ‘입국’했다. 낯선 이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거기다 윤이상도 보리스 블라허에게 수학했단다. 이 어찌나 흥미로운 인물관계도인가? 연결고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베를린에서는 그가 ‘이방인’일지 몰라도, 이곳에 돌아온 그는 내게 이상하리만큼 낯설지 않다. 낯선 이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꿔나가면서도 본인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잊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선택지라니! 그의 노래에는 어떤 가사가 붙어 있을까? 꽤 끊기듯 이어지는 선율에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 얽혀 있을까.
<콘트라스테>라는 제목처럼 서로 다른 성격과 움직임이 한 곡 안에서 계속 모습을 바꾼다. 그러다 보니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사람과 한국에서 출발한 사람이 꼭 서로 다른 사람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낯선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내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헷갈릴 때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 사이에 있는 모습까지 전부 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우리는 목격하게 될 것이다. 유다윤이라는 낯선 이가 도대체 누구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그는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으며, 누구에게 음악을 배우고 있고, 타국에서 음악하는 이의 삶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그런 질문들을 따라가며 ‘이방인’이라는 표현을 1부 전체를 이해하는 하나의 핵심어로 삼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1부에서 깊숙하게 우리가 소통하고 나면 2부에서 그가 뭐 하냐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우리인데 내밀한 이야기를 더 나눠야 하느냐고?
아니, 이번에는 조금 뒤로 물러날 것이다. 물론 그의 개성은 여전히 남아 있겠지만, 자신이 어디에 있고 누구에게 배우는지를 들려주던 사람에서 한발 벗어나 이제는 ‘바이올린’에 관해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눠볼 것이다.
악기를 위해 유학까지 한 그와 우리가 어떻게 소통할 수 있냐고? 상관없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바이올린을 듣다 보면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있다. 2부에서는 바로 그런 것들을 노래하기로 했더라.
펠릭스 멘델스존, 무언가(Songs without Words)
쉬는 시간이 지나 2부가 되면 그는 멘델스존의 세 곡을 들고 나타날 것이다. 멘델스존이 누구냐고? 아, 몰라도 된다. 이름만 보고 우리가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겠나. 대신 우리는 곡 제목을 보자. ‘가사 없는 노래’란다.
원래 클래식 기악곡에는 가사가 없지 않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애초부터 ‘가사 없는 노래’라고 제목까지 붙어 있다면 필시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붙여진 말이 없다는 건 정해진 언어 없이 오로지 선율만으로 우리에게 닿아온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나무가 사람의 손을 빌려 서정적인 허밍을 한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악기를 들고 있는 저 사람, 지금 노래하기로 한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목소리로 ‘바이올린’이 누군지 해석해보자.
한 곡이 아니라 세 곡이라는 것도 좋다. 같은 ‘가사 없는 노래’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분명 조금씩 다른 표정이 있을 것이다. 가사가 하나도 없는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표정을 찾고, 때로는 다정하다거나 쓸쓸하다고까지 말한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건 꽤 신기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공연에 앞서 음원 사이트에 곡을 검색하려고 한다면 꽤 애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땐 작곡가 이름과 그 뒤에 붙어 있는 숫자들을 염두에 두면 된다. 멘델스존 30과 1, 62와 6, 67과 2이다! 헷갈리지 마시라!
멘델스존의 바람으로 바이올린은 내 생각보다, 혹은 생각지도 못하게 섬세하고 부드럽고 바나나 같고~ 뭐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무섭게 당신은 곧! 타바스코를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아주 매콤하고 톡 쏠 것이다.
나는 미리 경고했다……
벨러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그 1악장의 초입부를 들으면 뭐가 단단히 잘못됐다,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이 확 들 것이고, 누군가는 이 곡에서 ‘아, 역시 난 바이올린과는 안 맞나 봐’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수 있겠는가? 분위기 자체가 아예 다르다! 아까의 그 파스텔톤은 어디 가고 이게 웬 잿빛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이것만이라도 알고 가기를 추천한다.
버르토크가 오랫동안 여러 지역의 민속음악을 수집하고 탐구했으며, 그 감각이 이 음악 안에도 깊숙이 배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이게 허무맹랑하고 어렵게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음악에도 나름대로 가고 있는 길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까. 그러니까 길을 잃은 게 아니다. 당신은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두 연주자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맡겨보자.
그리고 이 곡에서는 피아노 역시 뒤로 물러나 있지 않는다. 김준형의 피아노와 유다윤의 바이올린이 서로 밀고 당기며,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한꺼번에 앞으로 달려 나가는 순간을 함께 들어보고 싶다. 처음부터 바이올린 혼자 달리는 곡이 아니라 두 악기가 나란히, 혹은 팽팽하게 마주 서는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마지막 장면도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가 어째서 이 곡을 선택했을까? 사람이 어찌 좋은 말만 할 수 있나? 바이올린이 어떻게 다정하기만 할 수 있고, 침묵하는 때가 없겠는가. 그에게도 어떠한 ‘원초적’ 에너지가 있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런 면모를 이 곡이 아니면 또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는가?
멘델스존에서 그렇게 부드럽게 노래하던 바이올린이 같은 악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거칠어져도 바이올린이고, 날카롭게 끊겨도 바이올린이고, 있는 힘껏 앞으로 나아가도 여전히 바이올린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바이올린다운 소리’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일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곡일수록 상대가 애매하게 노래하면 이쪽에서 ‘이게 뭘까?’ 싶은데, 적어도 이날에는 그런 걱정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아 간다! 가는구나! 하면 아마 다 알아서 끝이 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낯선 곳에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악기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다른 악기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날 우리가 계속 보게 되는 건 같은 사람이, 같은 바이올린이 얼마나 여러 모습으로 자기 자신일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까만 골목길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 공연을 보면 좋을까?
무언가 하나에 제대로 꽂혀본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괜히 궁금해해본 사람.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본 사람, 그러다 문득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해본 사람도 좋겠다.
가사가 없어도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 바이올린이 정석대로 곱게 노래할 때와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궁금한 사람. 조금 낯선 음악 앞에서도 일단 가는 데까지 한번 따라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 좋고.
음, 그럴 것 같다! 함께 보실 분?
9월 4일, 유다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이 피아니스트 김준형과 함께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린다.
1부에서는 쿠르트 바일과 슈테판 프렝켈의 <서푼짜리 오페라> 중 7개의 소품 발췌를 시작으로 보리스 블라허의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 Op.40>과 윤이상의 <콘트라스테>를 연주하며, 2부에서는 멘델스존의 <무언가> 세 곡과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선보인다.
[Program]
Kurt Weill / Stefan Frenkel - 7 Pieces from The Threepenny Opera (excerpts)
쿠르트 바일 / 슈테판 프렝켈 - <서푼짜리 오페라> 중 7개의 소품 (발췌)
No.1 The Ballad of Mack the Knife
No.3 The Ballad of Pleasant Living
No.4 Polly's Song
No.5 Tango-Ballad
No.7 Cannon Song
Boris Blacher - Sonata for Solo Violin, Op.40
보리스 블라허 - 바이올린 무반주 소나타, Op.40
Isang Yun - Kontraste
윤이상 - <콘트라스테>
Intermission
Felix Mendelssohn - Songs without Words, Op.30: No.1 in E-flat major
펠릭스 멘델스존 - <무언가>, Op.30: 제1번 E♭장조
Felix Mendelssohn - Songs without Words, Op.62: No.6 in A major “Spring Song”
펠릭스 멘델스존 - <무언가>, Op.62: 제6번 A장조 “봄노래”
Felix Mendelssohn - Songs without Words, Op.67: No.2 in F-sharp minor
펠릭스 멘델스존 - <무언가>, Op.67: 제2번 F♯단조
Béla Bartók - Violin Sonata No.1, Sz.75
벨러 버르토크 -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Sz.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