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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세상이 무너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 연극 '인간동물들' [공연]

인간이 존재하지 않을 미래를 향해

by 손현진 에디터
2026.08.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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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는 멸망한 미래보다 극복된 미래가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2020년, 이름조차 낯설었던 감염병이 창궐하고 확진과 격리가 일상이 되었을 때만 해도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미래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떻게든 위기를 넘긴(혹은 극복했다고 믿는) 인간은 다시 평범한 하루를 되찾았다.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 적어도 멸망하지는 않으리라는 낙관. 어쩌면 이 동력이 우리를 끊임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철저히 인간의 입장일 뿐이다. 그렇게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은 결국 스스로의 멸종을 앞당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연극 <인간동물들>은 바로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멋대로 자리를 차지한 인간들을 몰아내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들'의 존재를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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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연극 <인간동물들>(스테프 스미스 작, 이곤 연출, 여행자극장, 2026.08.21.~08.30.)은 예고 없이 찾아온 생태 위기가 어떻게 인간관계와 사회 시스템을 붕괴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인간과 동물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짚어내며, 과도한 개발로 일그러진 자연이 인간에게 어떤 경종을 울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중심을 잃은 욕심


     

    무대는 관객석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면에 비닐 천막이 쳐져 있다. 각 면마다 식물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고, 천막 안쪽의 무대에는 여섯 개의 의자가 놓여 있다. 배우들은 그 의자를 들고 옮기며 장면을 전환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준다. 또한, 천막을 열어 무대 안팎을 오가기도 하고 식물 옆에 선 채 무대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첫 장면은 의자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끼리의 대화다. 연극 <인간동물들>은 대부분 두 인물 간의 대화로 이루어진 짧은 장면으로 전개된다. 조명이 비춰지면 연인 관계로 보이는 두 인물이 대화를 시작하는데, 일상적으로 나누는 말 속에는 어딘가 섬뜩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가령 비둘기, 피, 시체 같은 단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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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의 배경은 동물들이 범람하게 된 도시다. 벽 틈 사이를 긁어대는 쥐, 인간을 물어뜯는 여우, 창문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가는 비둘기들. 이 디스토피아적인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동물들을 인간이 가만둘 리 없다. 인간은 도로를 폐쇄하고 스스로 격리하며, 동물들을 죽이고 불태운다. 소수의 인간은 그 통제와 학살에 브레이크를 걸어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에 잠식된 군중에 의해 철저히 묵살된다.

     

    시위에 참여한 알렉스는 이럴 순 없다고 외친다. 반면 그의 엄마 낸시는 알렉스의 행동이 위험하다며 집 안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자고 만류한다. 한편 제이미는 동물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려 애쓰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사는 리사는 제이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당장 오늘 '우리'의 생존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리사가 긋는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동물은 없다.

     

    동물을 살처분하는 업무를 맡은 사이는 떨어져 지내는 딸을 만나기 위해 더 빠르고 확실하게 동물들을 없애려 든다. 그래야만 이 모든 일이 끝나고, 다시 딸과 함께 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듯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맹목적인 욕망이 이기적인 욕심으로 변질되는 순간, 삶의 중심은 무너지고 세계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만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한계



    극이 전개되는 내내 리사는 낙관적인 태도를 고수한다. 도시가 격리되고, 동물들이 타죽고, 공원이 망가지는 상황 속에서도 리사는 회사에 출근하고 간식의 날을 챙긴다. 언젠가 이 사태는 '끝'을 맞이할 것이며, 인간의 놀라운 힘으로 고난을 극복한 뒤에는 다시 평범했던 나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연극은 이러한 낙관을 비웃듯, 미래를 긍정하던 인물이 변화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안전과 지시를 우선하던 낸시는 불을 지펴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자 하고, 동물들을 외면한 리사는 끝에 가서 그들에게 제 살을 나눠준다. 이를 통해 <인간동물들>은 스스로 멸종을 자초하는 인간의 비극을 그리면서도, 그 끝에 피어나는 자유 의지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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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과 같은 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연극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한계가 있다. 그건 바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아무리 비인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결국 인간의 사고방식으로 회귀하고 마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이 작품은 '블링크'라는 극적 장치를 활용한다.

     

    블링크란 시적 언어로 이루어진 장면이다. 두 인물 간의 일상적인 대화를 중심으로 이어지던 연극의 매끄러운 흐름은 중간에 개입하는 블링크로 인해 파편화된다. 조명은 어두워지고, 무대에 선 인물들은 맥락 없는 단어를 툭툭 내뱉거나 코러스처럼 발화하며 극 중 '인물'의 껍데기를 벗어던진다. 인간의 논리가 해체되고 마치 비인간 존재가 무대 위를 부유하는 듯한 그 낯선 순간은 비인간을 다루는 연극이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언제까지고 지금 같을 수 없다는 걸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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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서 구체적인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재난이 전 세계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의 세계는 알게 모르게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직시하기보다 당장의 오늘, 나의 욕망에만 집중하며 최악의 미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과 동물, 비인간 존재들은 늘 인간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오류다. 더 이상 낙관을 기대할 수 없는 날, 인간이 사라진 세계가 도래한다면 그 절망 앞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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