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하나로 시작된 전쟁
페터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을 처음 봤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력한 세 여신이 인간 파리스 앞에 서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 하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인간의 판정 같은 게 애초에 필요 없을 텐데, 그림 속 신들은 인간에게 자신을 평가받는 자리에 서 있다. 그것도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저마다 파리스에게 은밀히 조건을 내걸었다고 전해진다. 헤라는 부와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와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진 여신은 그 앙금을 트로이 전쟁 내내 거두지 않는다. 신들 사이의 이 자존심 싸움 하나가 결국 오디세우스의 10년 방랑으로, 한 인간의 삶 전체를 20년째 떠돌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피터르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루벤스가 그린 몸도 인상적이다. 신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하고 육감적인,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몸으로 그려져 있다. 초월적인 위엄보다는 심사를 기다리는 순간의 긴장과 자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왜 이렇게까지 인간적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실 『오디세이아』 에 이미 나와 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책 속 신들의 회의 장면에서 제우스는 이렇게 투덜댄다.
"인간들은 신들을 향해 끊임없이 원망의 탄식을 쏟아놓는구나! 마치 자기들이 당하는 불행이 모두 우리 신들 때문인 것처럼 말이야! 저 바보 같은 인간들은 자신 이 저지른 실수와 못된 짓들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 p.190
자기들이 저지른 실수와 못된 짓 때문에 불행에 빠진다는 걸 모른 채, 그 불행을 죄다 신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이 대사가 재미있는 건, 제우스가 세상을 굽어보는 심판자가 아니라 마치 부하 직원에게 뒷담화당한 상사처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고신조차 인간의 오해와 원망 앞에서는 감정이 상한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운명을 설계하는 초월자라기보다, 인간 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확대판에 가깝다. 질투하고, 편애하고, 화를 내고, 억울해하고, 뒤끝을 남긴다.
오디세우스가 10년째 바다 위를 떠도는 이유도 이 '뒤끝' 때문이다. 눈이 먼 폴리페모스의 동굴을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배 위에서 굳이 자기 이름을 밝히며 그를 조롱한다.
"네 눈은 제아무리 포세이돈이라고 해도 낫게 할 수 없다!" - p.65
신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쐐기를 박는 이 한마디가 결국 포세이돈을 완전히 등 돌리게 만든다. 포세이돈은 오만한 인간에게 저주로서 앙갚음을 행한다.
다시, 그림 앞에서
신들이 이렇게까지 인간적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신화란 애초에 인간을 위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자연재해, 억울한 불운,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감당하려고 인간은 자신을 닮은 신들을 만들어냈다. 질투하고 자존심을 세우고 오래 마음에 담아두는 신들의 모습은,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루벤스의 그림을 다시 떠올린다. 사과 하나를 두고 갈라섰던 세 여신, 그리고 그 심판 하나로 시작된 오디세우스의 긴 여정. 얽힌 관계 속 태어난 이야기가,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당도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