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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가장 오래된 귀환의 이야기 - 오디세이아 [도서]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의 방랑과 2800년 동안 되풀이된 인간의 모험과 귀환

by 박지영 에디터
2026.08.14 13:02

가장 오래된 귀환의 이야기 - 오디세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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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그리스·로마 신화 만화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어린이가 있을까. 필자는 고전문학 대부분을 만화책으로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러 고전 만화를 읽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면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과정이 좋았다. 외눈박이 거인을 만나고 세이렌의 노래를 견디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어떤 일을 겪어도 돌아갈 곳을 잊지 않는 모습이 특히 멋있게 느껴졌다.

 

사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은 끝난 이후에 다시 시작된다. 10년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그는 고향 이타케로 향하지만 좀처럼 집에 도착하지 못한다. 폭풍에 휩쓸리고,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갇히며,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죽음에 빠뜨리는 세이렌과 마주한다. 동료들은 하나둘 목숨을 잃고 결국 오디세우스만 홀로 남아 전쟁에 걸린 시간만큼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돌아가는 길에서 시작된 이야기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와 함께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 서사시다. 두 작품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두고는 지금도 여러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기원전 8세기 무렵 오랜 구전 과정을 거쳐 현재와 비슷한 형태를 갖춘 것으로 본다. 이 배경을 알고 나니 <오디세이아>가 오랫동안 여러 모습으로 다시 쓰인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애초에 많은 사람의 입을 거쳐 전해지면서 끊임없이 달라진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 안에 담긴 감정도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디세우스는 낯선 세계를 두려워하고, 유혹 앞에서 흔들리며, 자신의 실수로 더 큰 위기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만은 놓지 않는다. 아마 신과 괴물이 등장하는,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래된 영웅담을 읽으면서도 그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는 이유다.

 

<오디세이아>는 이야기의 순서도 흥미롭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는 장면부터 사건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대신, 그의 귀환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작한다. 초반에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나선 아들 텔레마코스가 중심에 놓이고, 오디세우스는 5권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폴리페모스와 키르케, 세이렌을 만난 유명한 모험도 그가 파이아케스인들에게 지나온 일을 들려주는 회상 속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모험을 겪는 영웅인 동시에 자신의 모험을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꾼이 된다. 그의 말에는 진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장과 변명, 자랑도 뒤섞여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심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점이 재미있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무기는 뛰어난 무력이 아니라 위기를 빠져나오는 지략과 말솜씨라는 사실도 이 과정에서 드러난다.

 

 

 

기억 속 사람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작품 후반부에서는 ‘누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는가’가 중요해진다. 어렵게 이타케에 도착했지만,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다. 늙은 거지로 모습을 바꾼 채 궁전에 들어가 자신이 없는 동안 무엇이 달라졌는지 살피고 누구를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충직한 개 아르고스는 노인으로 변장해 남루해진 주인을 한눈에 알아본 뒤 숨을 거둔다.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는 그의 몸에 남은 흉터로 정체를 알아채지만 아내 페넬로페는 눈앞의 남자를 바로 남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0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었던 사람인 데다,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기도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녀가 그를 의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페넬로페는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침대의 비밀로 오디세우스를 시험한다.

 

오디세우스가 직접 만든 부부의 침대는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으로 삼고 있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그래서 페넬로페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 침대를 밖으로 옮기라고 하자 오디세우스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반응했고, 그제야 페넬로페는 눈앞의 남자가 정말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고향에 도착해 있었지만, 페넬로페가 그를 알아보는 순간에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귀환은 고향 땅을 다시 밟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몸에 남은 흉터와 함께 만든 침대, 두 사람이 나눈 기억이 그가 누구인지를 증명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야 끝나는 귀환이라는 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20년을 기다리는 사람들


 

<오디세이아>는 그가 없는 20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도는 동안 이타케에서도 또 다른 싸움이 이어진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가 트로이로 떠날 당시 갓난아이였다.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란 그는 왕궁을 차지한 구혼자들 앞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다 오디세우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직접 길을 떠나고,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여정을 거치며 텔레마코스는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오디세우스가 가족에게 돌아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면,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 길에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페넬로페 역시 가만히 앉아 남편만 기다린 인물은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돌아오지 않자 수많은 구혼자가 왕궁에 머물며 재산을 축내고 결혼을 강요한다.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완성한 뒤 새 남편을 고르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낮에 짠 천의 실을 밤마다 몰래 풀며 선택의 순간을 미룬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꾀를 내어 위기를 벗어나는 동안, 페넬로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왕궁과 가족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이 감동적인 것도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불사의 요정 칼립소가 제안한 영원한 생명과 젊음을 거절하고 집으로 향한다. 페넬로페는 돌아온다는 보장조차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아들과 왕궁을 지킨다. 서로 다른 곳에서 20년을 견딘 두 사람이 마침내 같은 자리에 도착한 것이다. 후대의 작가들은 원작에서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페넬로피아드>에서 페넬로페와 열두 하녀의 목소리로 사건을 다시 바라봤고, 매들린 밀러의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항해에 잠시 등장했던 마녀 키르케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웠다. 익숙한 영웅담을 다른 인물의 자리에서 읽으면 이전에는 지나쳤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작품을 오늘 다시 읽는 재미도 여기에 있다.

 

 

 

바다에서 우주까지 이어진 오디세이


 

<오디세이아>는 이후 여정을 다룬 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어 ‘오디세이’라는 말은 작품의 제목은 '길고 파란만장한 여행'을 가리키는 표현이 되었다. 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고대인에게 바다가 지녔던 미지의 감각을 우주로 옮겼 코언 형제의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는 대공황기의 미국 남부를 떠도는 탈옥수들의 여정에 <오디세이아>의 여러 장면을 겹쳐놓았다. 지난 8월 5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오디세이>가 국내 개봉했다. 맷 데이먼이 오디세우스를 맡았으며,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해 신화 속 항해를 큰 화면으로 옮겼다. 수천 년 전 이야기가 오늘날의 영화로 다시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디세이아>가 여전히 많은 창작자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처음 접한 뒤 책으로 돌아와 인물들의 선택과 기다림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오디세이>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오디세이아―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은 호메로스의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그대로 옮긴 번역본은 아니다. 오스트리아의 청소년 문학 작가 아우구스테 레히너가 원작을 현대 독자가 읽기 쉬운 산문으로 다시 썼고, 이를 김은애가 우리말로 옮겼다. 레히너는 철학과 역사를 공부한 뒤 고대와 중세의 신화와 영웅 설화를 청소년 독자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일리아스>와 <아이네이스>를 비롯해 <니벨룽의 노래>, <파르치팔의 모험> 등도 다시 썼다. 복잡한 고전을 짧게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배경과 인물의 감정을 풀어내 독자가 이야기에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호메로스의 원작은 오디세우스의 귀환이 가까워진 시점에서 시작해 텔레마코스의 여정과 오디세우스의 회상을 오간다.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지만, 신과 영웅의 이름부터 낯선 독자에게는 사건의 순서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레히너는 트로이 전쟁의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 일행이 겪은 일을 대체로 시간순으로 배치했다. 운문 서사시의 반복적인 표현은 산문으로 풀고, 장면과 인물의 감정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책에 실린 인물 소개와 관계도도 수많은 신과 영웅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준다.

 

 

어린 시절에는 온갖 위기를 이겨내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오디세우스가 그저 멋있었다. 다시 책을 읽어보니 그는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람이었다. 뛰어난 지략으로 동료들을 구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다 더 큰 위험을 불러오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고향에 돌아와서는 잔혹한 복수를 벌인다.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오디세우스가 오랜 시간 사랑받은 이유는 완벽해서가 아닐 것이다. 그는 여러 번 실수하고 때로는 자신이 만든 문제 때문에 더 멀리 돌아간다. 하지만 눈앞의 편안함을 선택하는 대신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계속 떠올리며 칼립소가 영원한 젊음과 생명을 약속했을 때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면 그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죽지 않는 영웅으로 남는 것보다 언젠가는 죽을 인간으로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편을 택한 것이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익숙한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뜻하지 않은 일 때문에 방향을 잃는다. 잘못된 선택으로 예상보다 멀리 돌아갈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고 길을 고쳐 잡는다. 모든 귀환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일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긴 시간을 지나 달라진 모습으로 다시 자기 삶에 도착하는 것, 어린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오디세이아>의 이야기가 지금도 계속 읽히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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